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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056
한자 城郭
영어음역 seonggwak
영어의미역 castle / citadel / castle walls
이칭/별칭 성(城)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김흥술

[정의]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쌓은 방어 시설.

[개설]

성곽은 내성을 뜻하는 성(城)과 외성을 뜻하는 곽(郭)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성(城)은 성벽(城壁) 즉 담장을 말하며, 성곽(城郭)은 성의 둘레 즉 내·외성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된다. 성곽은 인류 역사와 함께 책(柵)의 형태로부터 만들어졌으며, 고대 국가의 성립과 함께 대규모의 산성이 본격적으로 축조되었고 정치, 군사, 경제, 문화의 터전이었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하는 역사의 현장으로서 포괄적 역사문화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3,000여 곳의 성이 있다. 이들 성은 고대국가 형성기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후기까지 부단히 축조되어 왔다. 조선 세종양성지가 ‘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라고 하였듯이 전국토의 요소마다 크고 작은 성곽들이 남아 있다. 이러한 성곽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축조되고 개·수축되었다.

[기원]

우리나라 성곽의 기원은 현재까지 문헌에서 『사기(史記)』「조선전(朝鮮傳)」에 평양성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처음인데, 이는 대체로 기원전 2세기에 해당된다. ‘한(漢)이 위만(衛滿)을 침입해 왔을 때 우거(右渠)가 성을 굳게 지켜 여러 달이 되어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는 기록에서 고조선 말기에 성곽이 있었음이 분명하며 본격적인 성곽전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성곽의 규모와 형태가 어떠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유형]

우리나라의 성곽 유형은 대체로 축성 재료와 구조 형상, 축성 위치와 지형, 축성 목적에 따라 구분되고 있다. 축성 재료와 구조 형상에 따라 목책성·토성·석성·토석혼축성·전축성으로 나눠지고, 축성 위치와 지형에 따라 산성·평지성·평산성으로 구분되며, 축성 목적에 따라서는 군사적인 성과 행정적인 성 또는 도성(都城)·행재성(行在城)·읍성(邑城) 등으로 분류된다.

[강릉지역 성곽의 분류]

1. 지리적 입지에 따른 유형분류

성곽은 일반적으로 지리적 입지에 따라 산성, 평지성, 평산성으로 분류되며, 강릉 지역의 경우 동해안과 접하고 있어 해안성이 나타난다. 하천을 끼고 하천제방을 성벽(城壁)으로 또는 자연해자(自然垓字)로 활용하는 하안성(河岸城)이 있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강릉 지역의 경우 남대천(南大川)의 물줄기가 지금처럼 직선을 이루며 동해로 유입되지 않았던 시기의 예국고성(濊國古城)강릉읍성(江陵邑城)남대천을 이용하여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평지성에 해당된다.

강릉 지역의 성곽은 대체로 남북으로 동해안과 부산-고성 간의 7번국도를 따라서 그리고 서울로 통하는 대관령 도로를 따라서 선형(線形)으로 위치한다.(강릉 지역 성곽의 지리적 입지에 따른 유형 표 참조)

예국고성 또는 강릉읍성을 중심으로 남·북·서로 통하는 도로망과 동해안을 따라 있었던 봉수로, 즉 통신망과 연결되어 성곽이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산성(平山城)은 방내리성(坊內里城), 우계성(羽溪城), 명주성(溟州城)과 같이 대체로 산을 등지고 근거리에 물을 얻을 수 있는 조건으로 방어와 읍치(邑治)의 개념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조건을 갖추었다.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의 도성이 산성과 연결되어 축조된 것과 같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산성은 산세를 이용하여 축조되었다. 대공산성(大公山城)으로 불리는 보현산성(普賢山城)은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포곡식으로 산정에 축조된 산성이다. 강릉 지역 산성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생각되며, 강릉의 서쪽 관문 대관령에 위치한 거점성이다. 보현산성의 남동 방향 약 7㎞ 지점에 제왕산성(帝王山城)이 있고, 동쪽으로 칠봉산성(七峰山城)이 각각 위치하고 있다. 이들 산성은 서울로 통하는 교통로를 중심으로 쌍방 연락이 가능했던 산성이다.

제왕산성(帝王山城)제왕산의 산세를 이용한 테뫼식 산성으로 작은 계곡을 포함하고 있으며 입지상 보현산성과 칠봉산성을 연결하는 기지나 초소의 역할을 하기에 유리한 조건에 있다.

칠봉산성(七峰山城)대관령삽당령에서 오는 도로가 잘 보이고 북서쪽으로 보현천과 오봉천이 합류하여 돌아가는 칠봉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이들 산성은 대부분 석축성으로 축조되었다.

해안성인 삼한산성(三韓山城)·고려성(高麗城)·괘방산성(掛榜山城)은 고려시대에 빈번했던 동여진과 왜의 동해안 침구에 대비하기 위하여 해안에 축조된 것이다. 삼한산성은 동해에서 강릉으로 오는 길목이며, 동해안에서 들어오는 외적을 막기에 적합한 곳이다. 현재 이 성의 서쪽으로 동해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사면이 도로로 싸여 있는데 교통의 요지에 입지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괘방산성(掛榜山城)은 정동진에서 안인에 이르는 해안 능선을 따라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현재 성곽이 있는 산을 넘으면 동해고속도로가 보이고 모전리를 지나 강릉 시내까지 넓은 평지가 이어진다.

고려성(高麗城)은 삼한산성을 지나 안인으로 오는 중간에 해안으로 돌출된 구릉에 위치한 해안 초소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곳에 있다.

2. 기능에 따른 유형분류

성곽은 기능상으로 산성·읍성(도성)·장성(長城)·창성(倉城)·옹성(甕城) 등으로 분류되며, 중복도에 따라 내성·중성·외성으로 구별한다. 따라서 강릉 지역의 성곽도 그와 같은 기능에 따라 읍치성(邑治城)·산성·원창성(垣倉城)으로 분류된다.

강릉읍성·예국고성·명주성·우계성·방내리성의 경우 읍치성으로 파악된다. 역대 지리지들이 보여 주는 건치연혁조의 기록을 보면 강릉 지역 성곽 중 ‘고(古)’자가 붙은 읍성 성격의 성곽들이 있다. 강릉 지역에 알려진 가장 오랜 예국고성을 비롯하여 이 지역 토호의 근거성이었던 명주성과, 옛날 강릉의 속현이었던 우계·연곡 지역 고성(古城)은 모두 이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성곽 분류에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성곽 축조시기를 판단함에 있어 그 시원을 단언하기보다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부단히 이용하기 위하여 부가 축조, 보수 등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강릉 지역의 읍치성들은 그 축조시기를 부족국가시대, 삼국시대로 판단되며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읍치지로 활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고려 현종 대부터 출몰하기 시작한 동여진의 침구는 동해안 일대에 연해읍성의 축조로 대비하였다. 조선시대에도 남부지방에 비해 관심이 낮았지만 강릉읍성도 이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된다.

3. 축조방법에 따른 유형분류

성곽은 축조 방법상 내탁(內托)과 내외협축(內外夾築) 방식이 있다. 산지로 지형이 험한 곳은 전자이고, 낮은 지역은 대개 후자이다. 이를 세분하면 판축(版築)·삭토(削土)·섬돌쌓기·고임돌쌓기·전축(甎築)·난층(亂層)쌓기 등 시기와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방법이 사용되어 왔다.

성곽 축조 방법은 개별 성곽에 있어서 명확하게 어느 한 방법으로 적용하여 판단할 수는 없다. 성곽 축조에는 가능한 방법들이 위치에 따라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게 또는 복합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산성은 보통 산꼭대기의 중턱에서 산을 한 바퀴 둘러서 쌓는 테뫼형, 산정과 계곡을 포용하도록 외벽을 쌓는 포곡식(包谷式)으로 축성되었다. 성벽은 산정의 7부 능선쯤에서 시작하여 산의 좌우에서 사행(蛇行)하며 내려와 산기슭에서 합치하거나 주봉(主峰)에 대응하는 다음 봉우리로 꺾여 골짜기를 향하도록 축조되었다. 성내에는 반드시 계곡을 포함하고 있으며 산정을 포함하지 않기도 한다. 계곡을 포함하는 것은 성에서 농성할 때 최소한의 물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고, 계곡 부근을 감도는 지역에 성문을 만들어 숨기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함정과 같은 역할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는 한 방법이었다. 강릉 지역의 산성 중에 이와 같은 대표적인 것이 보현산성(普賢山城)과 금강산성(金剛山城)이다.

[연구성과]

성곽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한 시점부터 부단히 축조해 온 역사의 산물로서, 각 시대의 역사와 문화상을 밝혀주는 데 매우 중요한 역사 유적이다. 그러나 선사유적이나 고분유적에 비해 성곽유적은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조사·연구가 거의 없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단편적 연구와 개설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최근에는 그 동안 고려·조선시대의 읍성과 관련한 연구와 함께 충남 지역에 현존하는 성곽유적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남해안의 성지(城址)에 대해 고고학적 분석을 시도한 연구가 나왔으며, 임진왜란 시의 산성 수축과 지리지의 성곽 관련 기록의 연구 등이 나왔다. 더불어 국방론이나 특정 성곽에 관한 연구를 비롯한 단편적 논문과 성곽유적을 조사한 보고서류의 연구들이 나왔으며, 건축이나 도시공학 측면에서 연구한 성곽 관련 연구들도 있다.

[현황]

신라·백제 문화권의 성곽에 대한 활발한 연구 성과에 비해, 강원도 지역의 경우는 강릉 지역 성곽에 대한 연구와 조선전기 강원 지역의 성곽 연구와 몇 건의 성곽 조사 보고서가 있으며 그 연구 성과는 빈약한 실정이다. 한반도의 중부 동해안 지역에 위치한 강릉 지역의 경우 약 20여 개소의 성곽이 역사적 연결성을 가지고 산재해 있다. 현재 강릉 지역에 남아 있는 성곽의 대부분은 고대에 축조된 것으로 이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조사 및 연구가 부족하며, 각 성곽에 대한 연혁과 규모 등을 밝혀주는 자세한 문헌 자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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