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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산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179
한자 帝王山城
영어음역 Jewangsanseong
영어의미역 Jewangsan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지도보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흥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산성
건립시기/연도 고려시대
높이 1.5~2m
길이 400m
둘레 400m
면적 11,273㎡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소유자 국유

[정의]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의 해발 840.6m의 제왕산 정상에 있는 고대 석축 산성.

[명칭유래]

제왕산성(帝王山城)은 고려말 우왕(禑王)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피난을 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우왕은 왕씨가 아닌 신돈(辛旽)의 아들 신우(辛隅)로 몰리어 쫓기는 신세였으며 강릉으로 옮긴 후 한 달도 못되어 공양왕(恭讓王)이 보낸 서균형(徐均衡)에게 죽었으므로 성곽 축조의 역사를 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건립경위]

제왕산성에 대한 옛 기록은 없으나 근래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능항봉(凌項峰) 국유림에 있고, 강릉의 서남 약 4리 정선군 경계의 높은 봉에 있는 석성으로 주위 약 9백간(間)으로 붕괴되었으며, 일반에 고려시대 우왕, 창왕이 개성에서 도망하여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고 쓰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고 민간에 전하는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강릉의 역사변천과 문화』에서는 ‘왕산면 왕산리제왕산에 있는 석성으로서 약 3㎞의 둘레로 되어 있으나 많이 붕괴되고 그 형태는 완연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성은 고려말 우왕의 피화지로서 남쪽에 상원산(上元山)으로부터 일어나서 노인봉, 옥녀봉, 화앙봉이 있고 제왕산 기슭엔 포은사(圃隱祠)가 있다.’고 하였다. 또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는 ‘대관령 정상에서 동으로 제왕산 능선과 왕산면 곰자리골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석성으로 일명 성골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고려말 최영 장군이 주둔하였다 하나 근거는 없고 성골을 중심으로 계곡을 포함하는 석성이다. 4㎞ 정도의 흔적이 있고 곳곳에 부서진 기와편만 널려 있다’고 하였다. 『임영지(臨瀛志)』에는 ‘왕산면 제왕산에 있는 석성으로서 약 3㎞ 둘레로 되어 있으며 많이 붕괴되었으나 그 형태는 완연히 알아볼 수 있다. 이 성지는 고려말에 우왕이 피화한 곳으로 남쪽 상원산에서부터 일어나서 노인봉, 옥녀봉, 화앙봉이 있다.’고 하여 위의 1962년의 자료와 같은 내용이다.

[위치]

제왕산성제왕산 정상인 능선부와 남사면에 발달된 두 개의 작은 골짜기의 위쪽에 축조되었다. 성 내부의 정상부는 북쪽과 동쪽을 조망하기에 적합하다.

[형태]

제왕산성은 다양한 사암으로 축조된 성이었으나 현재 거의 붕괴되어 극히 일부분에서만 1.5~2m 높이의 성벽이 남아 있다. 총길이는 약 400m 정도이며 성벽이 남아있는 부분은 200m 정도이다. 제왕산의 정상부 좁은 곳에 축성되어 능선을 따라 서남부에서 동북으로 약 200m 정도이며 폭이 가장 넓은 곳이 30m를 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성벽이 평평한 기반암 위에 석재로만 축조되었으나 능선 중앙에 일부 토석혼축의 부분도 관찰된다. 붕괴된 성벽 주위와 성내에는 기와편들이 산재하며, 고려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편도 발견된다. 성의 중간 부분 북쪽으로 좁고 긴 평탄지가 약간 확인되며 건물이 배치될 만한 공간은 거의 없으나, 남서쪽 성벽부근 능선부에는 작은 건물지도 보인다.

[의의와 평가]

제왕산성은 현재 자세한 문헌 자료는 없지만, 강릉으로 통하는 교통 요지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로서 정찰 및 연락 등 방어 초소 역할에 사용된 성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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