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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강릉문화대전 > 강릉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전통시대 > 고대

  • 동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지금의 함경남도와 강원 동북부 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동예 지역은 처음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는데, 서기전 108년 한(漢)나라의 침략으로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나라가 원산·안변 일대를 중심으로 임둔군을 설치하자 동예의 북부 지역이 그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서기전 82년 임둔군이 폐해졌고, 서기전 75년에는 현도군이 고구려족의 저항에 의해 군치(郡治)가 흥경(興京)...

  • 사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시대 영랑(永郞)·술랑(述郞)·남랑(南郞)·안상(安詳) 등 네 국선(國仙).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서 진흥왕대에 제정된 화랑도(花郞徒)는 15~18세 사이의 청소년으로 조직되어 보통 3년 정도 수련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 진흥왕 37년에는 “도의(道義)로써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겼으며, 산천을 찾아 노닐고 즐겨 멀리 이르지...

  • 하서주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시대에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신라시대 지방의 다섯 고을에 설치한 오주서(五州誓)의 하나로, 672년(문무왕 12)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되었다. 오주서는 청주서(菁州誓)[지금의 진주], 완산주서(完山州誓)[지금의 전주], 한산주서(漢山州誓)[지금의 廣州], 우수주서(牛首州誓)[지금의 춘천], 하서주서(河西州誓)[지금의 강릉]의 다섯 부대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 철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강릉의 옛 지명. 강릉 지방은 본래 예(濊)의 옛 땅이었다는 이른바 ‘강릉예국설(江陵濊國說)’에 대한 최초의 사료(史料)는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를 인용한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 제4, 지리2]의 기록이다. 강릉만을 국한하여 예국으로 인식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B.C. 1세기경에서 A.D. 3세기경의 강릉 지역에는 거수(渠帥)를 지배자로 하는 소규모의 군장사회...

  • 예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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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1915년에 ‘예국토성지(濊國土城址)’라고도 불리는 강릉토성지(江陵土城址)가 발굴조사되었는데, 총연장 2,800m, 누(壘)는 0.5~12m이다. 이곳에서 빗살무늬토기편과 민무늬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예국토성지’는 조선시대에 폐기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예국의 소군장(小君長)인 후(侯)가 거처하는 성읍(城邑)으로 추정되고...

  • 니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의 북방 경계가 되는 하천. 신라는 니하(泥河)를 경계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경계를 이루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발해와 경계를 이루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신당서(新唐書)』에 니하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니하의 위치에 대한 논란은 두 기록의 니하를 같은 지역으로 볼 것인가 또는 다른 지역으로 볼 것인가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는 니하의 위...

  • 하서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강릉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명주(溟州)[현재의 강릉]는 본시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인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라고 하여 이 지역이 고구려의 지명으로 하서량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이 지역은 한(漢) 무제(武帝)가 고조선을 소멸시킨 후에는 임둔(臨屯)에, 그리고 그 후에는 동부도위(東部都尉)에 속하였다. 그 뒤 다시 독립...

  • 하서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삼국통일 직후에 완성된 9주(九州)의 하나로 지금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지방에 해당된다. 주치(州治)는 지금의 강릉(江陵)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지방행정제도를 9주·5소경(小京)으로 새롭게 편성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아래에는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管 : 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

  • 하서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강원도 강릉 지역에 배치되었던 신라시대의 지방군대조직인 육정(六停)의 하나. 육정(六停)은 신라시대 각 지방의 주(州)에 배치하였던 6개의 군단(軍團)을 말한다. 육정 중에서 제일 먼저 설치한 군단은 대당(大幢)으로, 544년(진흥왕 5)에 편성하여 경주 부근에 배치하였으며, 옷깃의 색깔은 자백(紫白)이었다. 다음으로 552년에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 지방에 배치했던 상주정(上州停...

  • 하서주만보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통일신라시대에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만보당(萬步幢)은 통일신라시대 구주(九州)에 조직적으로 배치된 부대로, 주마다 각기 두 개씩 있었다. 하서주만보당(河西州萬步幢)은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되었다. 만보당은 각기 금(衿)의 빛깔이 달랐는데, 사벌주(沙伐州)는 청황(靑黃)·청자(靑紫), 삽량주(歃良州)는 적청(赤靑)·적백(赤白), 청주(菁州)는 적황(赤黃)·적록(赤綠)...

  • 하서변수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통일신라시대 동북쪽 국경지대인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하서변수당은 통일신라시대 변경을 지키던 삼변수당(三邊守幢)의 하나이다. 삼변수당은 690년(신문왕 10)에 한산변(漢山邊)[지금의 廣州 지방]·우수변(牛首邊)[지금의 春川 지방]·하서변(河西邊)[지금의 강릉 지방]의 세 곳에 설치하였다. 하서변수당은 신라의 동북쪽 국경지대인 하서주(河西州) 관내 요새지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 하서주궁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강릉에 설치하였던 신라시대의 군부대. 활을 쏘는 부대로 한산주궁척(漢山州弓尺)과 더불어 이른바 이궁(二弓)의 하나이다. 한산주궁척은 경기도 광주(廣州) 지방에 두었고, 하서주궁척은 598년(진평왕 20)에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하였다....

  • 하슬라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에 설치한 주(州)의 이름이다. 하슬라주는 신라의 동북지방의 군사중심지이며 북방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신라는 고구려·백제·가야를 상대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주(州)의 설치와 폐지가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하슬라가 언제 신라에 속하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

  • 명주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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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하대 강릉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있었던 독자적인 세력. 김주원(金周元)이 명주군왕(溟州郡王)의 봉작(封爵)과 식읍(食邑)을 기반으로 하였던 일종의 제후국(諸侯國)이다. 김주원은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하고, 명주·...

  • 김주원의 식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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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이 명주군왕의 봉작(封爵)과 함께 받은 강릉 일대의 수조지(收租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金周元)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고, 김주원은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명주는 김주원의 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는데, 특히 김주원의 아버지인 유...

  • 북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시대 동북쪽 변경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군사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인 658년(무열왕 5)에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 지역이 말갈(靺鞨)과 맞닿아 있어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곳에 설치되었던 북소경(北小京)을 폐지하여 주(州)를 설치하고 도독(都督)을 두어 지키게 하였으며, 실직(悉直)[지금의 삼척]으로 북진을 삼았다고 기록되어...

  • 북빈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강릉 지역의 옛 명칭. 신라의 국가 발전과정에서 동북방면으로 진출하여, 지금의 강릉 지역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512년(지증왕 13)에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하였으며, 639년(선덕여왕 8)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다가, 658년(태종무열왕 5)에 에는 소경을 폐지하고 다시 주를 설치하였다.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전국을 9주로 편제하면서...

  • 북원소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강원도 강릉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특별행정구역. 신라시대에는 지방제도로서 주군제도와는 별도로 특수행정구역으로 왕경을 모방한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주군이 군정적 거점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소경은 주로 정치적·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성격이 강하였으며 주군을 견제·감시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의 지방통치조직은 삼국통일에 따른 영토의 확대로 개편·확대...

  • 북해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주의 간문역에서 천정군(泉井郡)[함경도 덕원]까지의 신라 교통로.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함경도 지역과 한반도 동남해안 지역을 잇는 교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라 초기의 교통로는 울산 지역을 거쳐 해로로 가거나 낙동강을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신라는 내륙 교통로를 확보하고 이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56년(아달라왕 3)에 오늘날 문경 새재인 계립령(雞...

  • 오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북해통·염지통·동해통·해남통·북요통 등 5개의 신라시대 주요도로. 신라는 통일 이후 지방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하여 9주의 주치(州治)나 소경(小京)으로 통하는 5개의 간선도로인 오통(五通)을 두었다. 오통 가운데 북해통(北海通)은 북소경(北小京)[강릉]과 북진(北鎭)[삼척] 등과 같은 이름에서 보면 동해안을 따라서 북상하여 명주(溟州) 치소(治所)를...

  • 원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시대의 청소년 수련단체. 화랑의 전신. 원시 공동체사회 이후 신라에는 연령별 청소년 단체가 있었다. 촌락 또는 씨족 단위로 조직된 이 단체를 통해 청소년들은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익히고 예절과 무술을 연마하였다. 신라가 주변의 소국들을 차례로 정복해 마침내 6세기 전반 무렵 경상도 일원을 차지하는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문물 제도를 정비하게 되자,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