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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강릉문화대전 > 강릉향토문화백과 > 삶의 주체(성씨와 인물) > 전통시대인물 > 귀족, 호족

  • 곽거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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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의 문신. 1399년(정종 1)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고, 1414년(태종 14) 문과에 올라 좌랑(佐郞)에 제수(除授)되었다. 1427년(세종 9)에 제천현감(堤川縣監)을 거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를 역임했다. 강릉곽씨의 입향시조이다. 1411년(태종 11)에 화재로 전소된 강릉향교를 중건(重建)하기 위해 강릉유림(江陵儒林) 66인과 함께 계(啓)를 올렸다....

  • 곽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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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김주원의 부하였던 곽길은 최대내(崔大奈)·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

  • 관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전기 호족 김순식(金順式)의 소장(小將). 김순식이 고려 태조에게 귀부함에 따라 928년(태조 11) 정월에 군사 600명을 거느리고 개성에 와서 숙위하였다. 뒤에 김순식이 무리를 거느리고 태조에게 조회하여 왕씨(王氏)의 성을 하사받을 때 관경도 함께 왕씨의 성을 하사받고 대승(大丞)으로 임명되었다....

  • 궁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후고구려[태봉]의 건국자이자 왕.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 또는 제48대 경문왕(景文王) 김응렴(金膺廉)의 아들이라고 한다. 왕비는 강씨부인이고, 아들은 청광보살(淸光菩薩)과 신광보살(神光菩薩)이다. 궁예는 신라 하대 왕의 서자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의 여러 징조가 장차 국가에 해로울 것이라고 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탈출하는 과정에서 유모가 잘못하여 손가락으로 눈을 건드려...

  • 김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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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하대의 귀족이자 대신.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9대손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 할아버지는 김종기(金宗基), 아버지는 파진찬 김정여(金貞茹)이다. 딸은 문성왕의 왕비이다. 828년(흥덕왕 3)에 고성군태수(固城郡太守)가 되고 이어 중원소경(中原小京) 대윤(大尹), 무주도독(武州都督)을 역임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을 남겨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836년 12월...

  • 김유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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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시대의 장군이자 대신. 김유신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는데, 이러한 업적으로 인하여 그와 관련된 신이(神異)한 이야기들이 설화와 구전으로 전승되고 있다. 또한 사후에 신격화(神格化)되어 민간과 무속에서도 산신 또는 서낭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김유신은 강릉 단오제(端午祭)와 관련하여 숭배되고 있다. 대관령산신당(大關嶺山神堂)에서는 김유신을 산신으로 모시고...

  • 김정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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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하대의 왕족. 태종무열왕의 8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 아버지는 소판(蘇判) 김종기(金宗基)이다. 김장여(金璋如)와 형제간이고, 아들은 김양(金陽)이다. 관등은 파진찬(波珍湌)에 이르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양전(金陽傳)에 의하면 김주원·김종기·김정여가 대대로 장상(將相)이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그도 시중(侍中)을 비롯한 관직을 역임하였을 것으...

  • 김종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 하대의 재상.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7대 손이며, 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이고, 아우는 김헌창(金憲昌)이다. 아들은 김정여(金貞茹)·김장여(金璋如)이며, 손자로는 김양(金陽)과 김흔(金昕)이 있다. 관등은 소판(蘇判)의 관등으로서 집사부(執事部)의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김주원은 신라 하대에 무열왕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785년 선덕왕(宣德王)...

  • 김주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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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신라 시대 왕족이며 강릉김씨의시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식읍으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김주원의 후손...

  • 무월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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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신라 시대의 귀족. 아버지는 사인(思仁)이고, 아들은 김주원(金周元)이다. 부인은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朴氏)이다. 774년(경덕왕 3) 정월에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이 되었는데, 745년 정월 아버지 사인이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된 직후인 5월에 천재지이(天災地異)를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였다. 무월랑은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지방의 세력가인 박씨와 혼인을 맺었던...

  • 박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박영은 최대나(崔大奈)·함신(咸信)·곽길(郭吉)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州)[지금의 江...

  • 왕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전기의 호족. 본관은 강릉. 본명은 김장명(金長命). 명주장군(溟州將軍)·지명주군주사(知溟州軍州事)인 김순식(金順式)의 아들이며, 형은 왕수원(王守元)이다. 신라 말기에 명주장군 김순식은 강릉 지역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던 대표적인 호족이었다. 처음 궁예와 결합했던 김순식은 태조 왕건이 즉위한 후, 쉽사리 태조 왕건에게 귀부(歸附)하지 않고 정세를 관망하...

  • 왕순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 말 고려 초의 호족 출신 장군. 본성은 김씨(金氏)라고도 알려졌지만 분명하지는 않고, 왕은 사성(賜姓)이다.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호족 출신인 왕순식은 명주(溟州)[지금의 강릉] 사람으로 신라 말에 스스로 명주장군이라 칭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궁예와 대치하면서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후에도 상당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복종하지 않...

  • 왕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전기의 호족. 본관은 강릉. 본래의 성(姓)은 김씨(金氏)로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6세손이며, 진골 출신인 김선희(金善希)의 아들이다. 태조 왕건의 14비(妃)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이 왕예(王乂)의 딸이다. 명주군왕 김주원이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계승전에서 패배하고 강릉으로 퇴거한 이래, 그의 후손들은 강릉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일대에 강력한 세력기반을...

  • 이사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지증왕 이래 법흥왕·진흥왕 대까지 활약한 대표적인 장군이며, 신라 왕실의 중신이다. 일명 태종(苔宗). 내물왕의 4대손이다. 505년(지증왕 6) 신라에서는 군현제가 실시되어 최초로 실직주(悉直州)[지금의 삼척]가 설치되었는데, 이때 이사부는 실직의 군주(軍主)가 되었다. 그리고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지금의 강릉]의 군주가 되어 우산...

  • 최대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신라 하대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최대나(崔大奈)는 곽길(郭吉)·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州)...

  • 함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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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함신은 최대나(崔大奈)·곽길(郭吉)·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