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200
한자 江陵船橋莊
영어음역 Gangneung Seongyojang
영어의미역 Seongyojang House of Gangneung
이칭/별칭 배다리,선교장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운정동 431번지]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재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7년 4월 20일연표보기 - 강릉 선교장,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강릉 선교장,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
건립시기/일시 1815년(순조 15)연표보기 - 강릉:강릉 선교장 열화당 건립
건립시기/일시 1816년(순조 16) - 강릉:강릉 선교장 활래정 건립
성격 고가옥
관련인물 이내번(李乃蕃)|이후(李垕)|이근우(李根宇)
정면칸수 안채 5칸
측면칸수 안채 2칸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운정동 431번지]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정의]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운정동 431번지]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상류 주택.

[명칭유래]

경포호가 현재와 같지 않고 그 둘레가 12㎞였을 때 배를 타고 건너다녔다고 하여 '배다리[船橋]'라는 택호를 가지고 있다.

정자인 '활래정(活來亭)'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 중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집자한 것으로, ‘맑은 물은 근원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건립경위]

이내번(李乃蕃)[1703~1781]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하여 대대로 후손들이 거처하였는데, 열화당(悅話堂)·안채·동별당(東別堂)·활래정 등 모두 4채가 있다. 가장 오래된 안채 주옥(住屋)은 당초에 주거를 정한 때의 건물이라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위치]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운정동 431번지]에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상류 주택으로 풍수지리설에서도 길지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오죽헌 동쪽 1.5㎞, 초당 서북쪽 2㎞ 지점에 위치한다.

[변천]

사랑채인 열화당은 1815년(순조 15)에 오은거사(鰲隱居士) 이후(李垕)가 건립한 것이다. 활래정은 그 이듬해 세운 것을 증손인 이근우(李根宇)가 현재의 건물로 중건하였고, 동별당은 약 50년 전에 새로 건립한 건물이다.

[형태]

처음부터 계획 하에 건축되기 보다는 생활하면서 점차 증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통일감과 짜임새는 조금 결여되었으나 다른 상류 주택에서 볼 수 없는 인간미가 넘치는 활달한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안채는 전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 양식의 건축물로서 우측에 동별당, 서측에 서별당과 이어져 있다. 우물마루 대청이 중앙에 있고 좌측에 건넌방, 우측에 안방이 있다.

안방은 주인 여자가 거처하는 공간으로 뒤쪽에 골방과 반침이 있다. 골방은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장소로서 평상을 두고 은밀하게 사용하였고 며느리가 생활하는 건넌방은 장지문에 의해 나뉘어져 있으며 뒤쪽 방에 살림도구를 넣어두는 반침이 있다. 안방과 대청의 앞에는 툇마루가 깔려 있어 통행을 편리하게 하며 건넌방의 측면에는 평난간이 설치된 툇마루가 있어 서별당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여느 상류 주택과 같이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던 공간이었므로 안채의 부엌 공간을 크게 하고 있다. 안채는 이 집안에서 처음 건축된 곳으로 집의 규모에 비하여 소박하며 민가적인 풍취를 나타내고 있다.

화강석 두겁대 쌓기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을 두었으며 방은 미닫이 용자살+여닫이 두 짝 세살문의 겹문이고 마루의 전면에는 궁판이 있는 세살 네 짝 분합문을 달았다. 안채 전면에는 바닥이 마루로 된 반빗간이 3칸 있으며 안방 살림을 돕는 사람을 위한 방 2칸이 ‘ㄱ’자로 이어서 있다.

열화당은 선교장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1815년(순조 15)에 건립된 전면 4칸, 측면 2칸의 누마루가 있는 팔작기와지붕 양식의 사랑채 건축물이다. 7개의 석조 계단을 올라가야 되는 높은 위치에 자리잡아 위엄을 나타내고 있으며, 대청과 누마루로 된 작은 대청 사이의 방들은 ‘ㄴ’자로 배치되어 있다.

열화당의 가장 큰 특징은 외부 공간이 창호로 둘러싸여 한국의 전통 건축 외부 창호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과, 대청에 있는 T자형 대들보가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며, 목재가 나타낼 수 있는 질감과 구조는 타 재료가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형상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특히 여름철 들어열개를 이용하여 문짝을 서까래에 걸쳐 통풍을 할 때면 자연과의 조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동별당은 경농[1877~1938]이 건립하였으며 안채와 연결된 별당이다. 화강석 장대석 네겁대 쌓기 기단 위에 방형의 초석을 둔 겹처마 팔작기와지붕 형식의 구조물이다. 안채에 이어서 반침이 있는 방이 있고 이어서 대청, 방이 있다. 우측 방의 전면에 지금은 방이 한 칸 더 있으나 원래는 다락이 있었다고 한다. 대청 앞과 뒤에는 우물마루의 툇마루가 있어 방과 대청의 연결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 안채에 가까운 별당으로서 방문객들과 분리하여 가족들과의 단란을 위하여 건축하였다. 대청은 전면에 네 짝 분합문이 달려 있고 처마의 서까래 사이를 회바르기로 마감하지 않고 판재를 다듬어 멋을 내고 있다.

행랑채는 남·녀의 출입대문이 솟을대문과 평대문으로 각각 열화당과 안채 앞에 있으며 곳간, 마구간, 행랑방, 부엌 등이 동별당 앞에서 열화당까지 ‘ㄴ’자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일상용품인 약재, 공구 등의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행랑방의 앞에는 툇마루가 달려 있고 처마의 서까래 사이를 회바르기로 마감하지 않고 판재를 다듬어 멋을 내고 있다.

[현황]

강릉 선교장은 1967년 4월 20일에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후기 상류 주택의 대표적인 자료로서 전통 한옥의 변천 과정과 주택 변화의 흐름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6.25 문화재 용어 변경 중요 민속 문화재 -> 국가민속문화재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