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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유원춘도영동영서대소사민윤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6248
한자 御製諭原春道嶺東嶺西大小士民綸音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783년연표보기 - 「어제유원춘도영동영서대소사민윤음」 작성
소장처 청풍 카페 - 강원도 강릉시 죽헌길 140[죽헌동 145-1]지도보기
성격 교지
관련 인물 정조
발급자 정조
수급자 원춘도영동영서대소사민(原春道嶺東嶺西大小士民)

[정의]

1783년 강원도 영동과 영서의 사민에게 내린 정조의 교지.

[개설]

1783년(정조 7) 10월 23일에 정조가 원춘도(原春道)[강원도의 조선 정조 때 이름. 1791년에 다시 강원도로 환원됨] 영동과 영서의 대소 사민(大小士民)[양반과 평민]에게 내린 윤음으로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는 도민들에게 각종 세금을 경감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어제유원춘도영동영서대소사민윤음(御製諭原春道嶺東嶺西大小士民綸音)」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인 권계학(權啓學)[1716~1788]에게 발급된 것으로, 내지에는 규장각 검교가 왕명으로 전 찰방(前察訪) 권계학에게 이 윤음 한 건을 하사한다는 내사기(內賜記)가 적혀 있고, 맨 뒷장 이면에는 윤음을 받고 성은에 크게 감격한다는 권계학의 발문이 자필로 적혀 있다.

[형태]

세로 30.5㎝, 가로 20.5㎝ 크기이다. 첩장본(帖裝本)[두루마리식으로 길게 이은 종이를 옆으로 적당한 폭으로 병풍처럼 접고, 그 앞과 뒤에 따로 표지를 붙이는 책 장정법]이다.

[구성/내용]

정조는 윤음에서 먼저 전례 없는 흉년을 당한 강원도민들에게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불쌍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옷깃을 적시며 밤마다 어탑(御榻)을 서성이면서 날을 세우곤 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표시하였다. 이어 기병과 보병의 포(布)와 전(錢), 군보와 잡색보의 미(米)·포·전, 노공(奴貢)으로 바치는 미·포·전, 계집종의 역가(役價) 등 각항의 상남할 것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바는, 영동은 수량 전체를 탕감해 주고 영서는 지차읍(之次邑)의 우심면(尤甚面) 등에 대해 절반을 탕감해 주도록 하였다. 또한 전지(田地)에서 나오는 대동미(大同米)와 대동포(大同布)는, 영동은 수량 전체를 탕감해 주고 영서는 지차읍의 우심면에 대해 1/3을 탕감해 주도록 하였다. 바다에서 나오는 어세(漁稅), 염세(鹽稅), 선세(船稅)에 대해 영동은 내년까지 납부를 연기해 주고, 영서는 선세의 절반에 대해 납부를 연기해 주도록 하였다. 내의원에 바치는 영동의 공삼(貢蔘)은 내년 몫을 일체 탕감하되, 그중에 관에서 지급한 상정원가(詳定元價)는 각 해당 고을에 덜어서 남겨 두어서 진휼할 재원에 보태도록 하고, 영서는 지차읍의 우심읍에 대해 1/4을 탕감해 주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어제유원춘도영동영서대소사민윤음」은 한글 언해본이 같이 실려 있어 18세기 후반의 귀중한 국어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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