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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진이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293
한자 注文津-說話
영어의미역 Tale of Jini in Jumunji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장정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 등장인물 진이|연곡현감
관련지명 주문진
모티프 유형 관탈민녀형

[정의]

조선시대 주문진에 살았던 진이가 억울하게 죽었으나 성황신이 되어 해원한 설화.

[개설]

주문진에는 진이서낭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강릉부사 내외와 진이,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의 화상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마을에 전해오는 설화를 근거로 작성된 것인데, 억울하게 죽은 진이를 위해 정경세가 서낭당을 짓게 해준 은덕을 기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채록/수집상황]

「주문진 진이 설화」는 1975년 12월 24일 김선풍(金善豊)이 주문6리에 사는 하수조[남.65]씨로부터 처음 조사하였다. 이후 장정룡(張正龍)은 1990년 10월 10일 주문진읍 교항리 박월몽[남.58]으로부터 이와 유사한 내용을 수집하였다. 전자는 ‘진이(眞伊)’로, 후자는 ‘진녀(津女)’로 조사하였다. 고종연곡면 퇴곡리에 있던 우복사(愚伏祠)가 철폐되자 주문진 주민들은 주문진 진이 성황당에 정경세 강릉부사 내외의 화상을 모시고 있으며, 지금도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내용]

조선시대 연곡현감이 미색을 좋아하여 해초를 뜯는 진이를 보고 불렀으나 불응하였다. 현감이 진이의 부친을 괴롭히자 부친은 진이를 삭발한 후 뒷방에 가두었다. 얼마 후 진이는 아기를 낳고 자살을 하였는데, 어민들이 풍파 피해를 입자 흉조라며 진이의 원혼을 달래기로 하였다. 포구에서 아낙네들이 쌀을 모아 제단을 만들었는데, 강릉부사 정경세가 초도 순시 차 주문진에 와서 보고 성황당을 짓게 하였다. 50년 전에 정경세의 사당을 현재의 여성황당으로 옮겼다.

[모티브 분석]

관탈민녀형(官奪民女形) 설화의 전형이다. 연곡현감의 폭행에 맞선 진이의 죽음은 결국 마을의 흉조와 연관되고, 이를 해결한 정경세 강릉부사의 현명한 처결로 마을을 지키는 신으로 믿게 된 해원(解寃) 풀이라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주문진 어민들에게 서낭신은 자신들을 험한 바다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주문진 진이는 억울한 죽음을 뛰어넘는 신화적 환생을 통해 어민들의 불굴의 정신사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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