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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002
한자 金周元
영어음역 Kim Juwo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창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귀족
아버지 김유정
어머니 연화부인
성별
몰년 미상
본관 강릉
대표관직 재상|명주군왕
봉작 시기/일시 786년연표보기

[정의]

통일 신라 시대 왕족이며 강릉김씨의시조.

[개설]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식읍으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김주원의 후손들은 강릉도호부(江陵都護府)를 관향(貫鄕)으로 삼았으며, 김주원강릉김씨(江陵金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김주원계(金周元系)는 이 지역의 토지를 보유하고, 주민을 지배하면서 조세(租稅)와 공부(貢賦)·역역(力役)의 수취로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그리하여 김주원의 후손들은 이 지역에 장원(莊園)을 형성하여 실질적으로 오늘날 영동 지방 일대를 통괄하며 신라 하대에 반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 지방세력인 호족(豪族)으로 성장하였다.

[가계]

아버지는 각간(角干) 유정(惟靖·維正·無月郞)이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둘째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의 5세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태종무열왕의 셋째아들인 김문왕(金文王)의 5세손이라고 한다. 아들은 명원군왕 김종기(金宗基), 김헌창(金憲昌)이고, 손자는 명원공 김정여(金貞茹)이며, 증손자는 김양이다.

[활동 사항]

777년(혜공왕 13)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며, 혜공왕(惠恭王)이 살해되고 선덕왕(宣德王)이 즉위한 780년에 퇴임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주원은 당대의 실력자로서 여러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상재(上宰)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는데, 이재(二宰)인 김경신이 비상수단을 써서 왕궁을 점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김주원김경신과의 왕위계승전에서 패배한 뒤 원성왕 일파에게 위협을 느껴 중앙에서 계속 거주하지 못하고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退去)하였다.

명주에는 원래 김주원의 장원(莊園)이 있었고, 또 김주원과 연결된 친족세력이 있던 곳이다. 김주원은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하여지고 아울러 강릉 등 인근지역을 식읍으로 하여 중앙과 대립하는 지방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김주원의 자손들 가운데는 그가 명주 지방으로 퇴거한 뒤에도 김헌창(金憲昌)처럼 계속 중앙에 남아 활약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뒤에 명주도독(溟州都督)은 대대로 김주원의 후손에 의해 세습되었는데, 이들은 신라 말까지 반독립적인 지방 호족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후삼국 시대 명주 지방의 대표적인 호족이었던 김순식(金順式)[뒤에 王順式]도 그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강릉김씨의 가계를 이루어 굴산사(掘山寺)의 사굴산파(闍掘山派)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김순식의 가문은 새로운 왕조인 고려에 귀의하여 공을 세움으로써 강력한 호족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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