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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457
한자 溟州國
영어음역 Myeongjuguk Stat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창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관련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의]

신라 하대 강릉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있었던 독자적인 세력.

[개설]

김주원(金周元)명주군왕(溟州郡王)의 봉작(封爵)과 식읍(食邑)을 기반으로 하였던 일종의 제후국(諸侯國)이다.

김주원은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襄陽]·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平海]·울진(蔚珍) 등을 떼어서 식읍으로 주었다. 이것은 김주원이 왕위의 포기에 대한 대가라는 정치적 배려에 의한 이성봉작(異姓封爵)이다. 이로써 김주원계는 명주를 중심으로 토착화하여 반독립적 세력을 형성하였다.

[형성]

김주원계는 ‘명주군왕’의 봉작과 함께 사여된 식읍을 경제적 기반으로 장원(莊園)을 형성하고, 명주성(溟州城)을 쌓아 ‘장안(長安)’이라는 수도형태의 치소(治所)를 마련하고, 명주국이라는 독자적 국호(國號)를 가지며 786년부터 822년(헌덕왕 14)까지 4대 37년 동안에 걸쳐 신라 국내 하나의 소국(小國)을 이루었다.

명주국은 가신집단(家臣集團)으로써 독립된 통치구조를 구성하고, 친족세력을 군사적 기반으로 하여 신라의 북방수비와 일본의 동해안 일대의 침공을 대비하면서 아울러 당시 발해와 일본의 동해 연안 항로를 이용한 통교를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와 같이 명주국은 명주를 중심으로 하는 특정 지역에 대한 독립된 지배구조를 가지고 소국으로서 존재한 특수한 통치구조였다.

따라서 명주국은 신라 하대(下代) 초기 원성왕계가 취한 황제국체제(皇帝國體制)의 봉작제인 ‘명주군왕’의 작호(爵號)를 가짐으로써 신라 중앙정부와는 별도의 독립된 통치체제를 보유하였고, 하나의 지방정부로서 독자적인 국호를 가진 ‘국가 안의 국가’인 제후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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