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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094
한자 江陵掘山寺址石佛坐像
영어음역 Gangneung Gulsansaji Seokbul Jwasang
영어의미역 Seated Stone Buddha Statue of Gulsansaji Archeological Site in Gangneung
이칭/별칭 굴산사지 석불좌상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597 외지도보기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이상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상
제작시기/일시 고려 전기[추정]
제작지역 강원도 강릉시
양식 고려시대 석불양식
재질 화강암
대상구분 비로자나불
수인구분 지권인
자세구분 결가부좌
높이 110㎝|160㎝
소장처 강릉시 구정면
소장처 주소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597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번호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38호
문화재 지정일 1984년 6월 2일연표보기

[정의]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굴산사지에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개설]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사굴산문의 본산으로 알려진 굴산사지에 위치한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다.

[제작경위]

굴산사는 통일 신라 문성왕 9년(847) 구산조사의 한 사람이었던 범일(梵日)이 명주 도독(溟州都督)의 권유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어 석불 좌상의 제작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조각 기법으로 볼 때 굴산사가 창건된 이후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형태]

굴산사지에는 모두 4구의 석불 좌상이 있는데 1936년 대홍수 때 이곳 농경지가 유실되면서 초석 일부가 노출되어 건물터가 확인되기 시작했고 이때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을 비롯한 강릉 굴산사지 승탑,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굴산사지 관련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중에서 2구는 1968년 후에 세워진 굴산암자에 봉안되어 있으며, 1구는 현 굴산암자 동쪽 500m 떨어진 초암에 봉안되어 있던 것을 다시 보호각을 세워 정비하였고, 나머지 1구는 석천(石泉)에 있던 것을 그 주위에 방치된 부도탑재 위에 올려놓아 보호막을 세워 함께 정비하였다. 굴산암자에 봉안된 불상 중 1구는 현 암자 부근에 있으며, 함께 봉안된 1구는 원래 석천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며, 지금 석천에 있는 석불은 산신지 부근에 있던 것을 주민들이 이전하여 석천의 증축 시에 축석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특징]

불상은 얼굴의 마모가 심한데다가 몸 전체에 균열이 있고, 특히 하반신이 많이 파손되어 있어 전체 모습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손 역시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두 손을 가슴까지 올려 왼손을 약간 아래로, 오른손은 약간 위로 하고 있는 모양으로 미루어 지권인(智拳印)의 손 모양[手印]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손 모양은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상이 갖는 수인(手印)이다. 머리에는 마치 소라모양의 머리카락[螺髮]이 굵직굵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사각형의 어깨가 당당한 모습인데, 그 밑으로는 신체의 굴곡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머리 위에는 거의 조각이 없는 자연석과 같은 것이 얹혀 있는데, 원래의 것은 아니고 나중에 올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발견 당시에는 석불 입상으로 알려졌으나 1992년 해체보수 때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으로 밝혀졌다. 평창군 진부면의 월정사 석조 보살 좌상(月精寺 石造菩薩坐像)[보물 139]보다 조금 후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둥글고 긴 안면 골격과 평평한 신체에 추상적인 표현과는 달리 곡선이 많이 사용된 조각 기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인 11세기 자연주의 양식에 속한다.

[의의와 평가]

1984년 6월 8일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3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은 신라 시대에 명주(溟州)라고 불리던 강릉시 구정면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강릉 한송사지 석조 보살 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 보살 좌상과 더불어 같은 지역에서 제작된 고려 시대 불교 조각으로서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