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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6246
한자 關東賓興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94년연표보기 - 『관동빈흥록』 간행
소장처 청풍당 -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죽헌동]지도보기
성격 과문집
편자 규장각
간행자 강원감영
권책 4권 1책
규격 28.8㎝[세로]|18.5㎝[가로]

[정의]

1793년 정조의 명에 의해 강원도 유생에게 실시한 과거의 모든 과정과 급제한 과문(科文)을 수록한 책.

[개설]

1793년(정조 17) 정조는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沈晉賢)에게 명령을 내려 강원도 내 유생 중에서 시문(詩文)과 경학(經學) 에 능한 사람을 조사해서, 공령생(功令生)과 경공생(經工生)으로 나누어 각각 문예(文藝)와 경전(經典)을 시취(試取)[시험을 보아 인재를 뽑음]하여, 공령생 신재화(申在和) 등 4명의 문과 급제자와 경공생 박사철(朴師徹) 등 3명의 문교관(文敎官)을 배출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관동빈흥록(關東賓興錄)』은 정조의 명에 의해 강원도 유생에게 실시한 과거의 모든 과정과 급제한 과문(科文)을 수록한 책으로, 규장각에서 편집하여 1794년(정조 18) 강원감영에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4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관동빈흥록』 청풍당 소장본은 표지 내지에 "건륭(乾隆) 59년 12월 관동 공령생 오죽헌 후승(後承)으로 의(義) 삼하(三下)를 받은 유학(幼學) 권한인(權漢仁)에게 『관동빈흥록』 한 건을 하사하며 사은(謝恩)은 하지 말라."는 규장각 검교 이만수(李晩秀)의 내사기(內賜記)와 수결이 적혀 있다. 건륭 59년은 1794년을 가리킨다. 본래 오죽헌 청풍당(淸風堂)에 있었으나 지금은 청풍 카페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관동의 유생 선발은 제술(製述)과 강경(講經), 두 가지 방식을 각각 다른 대상에 적용하여 진행되었다. 하나는 과시(科試)를 준비하는 공령생에 대한 시험으로 정조의 명령에 따라 시문을 짓는 방식인 응제(應製)[임금의 특명으로 임시로 치르던 과거]로 발탁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경학(經學)을 공부하는 경공생에 대한 시험으로 십삼경(十三經)[『역경』·『서경』·『시경』·『주례』·『의례』·『예기』·『춘추좌씨전』·『공양전』·『곡량전』·『논어』·『효경』·『이아』·『맹자』]에 대한 정조의 조문(條問)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특기할 점은 오죽헌 주인의 후손에 대한 시험을 별도로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정조의 명을 받은 당시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尹師國)은 여러 고을에 관문(關文)을 보내 공령생과 경공생을 탐문하게 하여 공령생 74명, 경공생 8명, 오죽헌 후손 12명 등의 명단을 조목별로 구분하여 보고하였다. 공령생 1차 시험은 1793년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원주감영에서 진행되었고, 시권(試券)은 서울로 보내져 정조가 직접 채점하여 그 중 40장을 뽑아 강원도 관찰사로 하여금 식량을 주어 상경하도록 지시하였다. 정조의 친시(親試)는 4월 9일 춘당대(春塘臺)에서 거행되어 모두 7명이 합격, 곧바로 전시(殿試)에 나아갈 자격을 얻었고 신재화 등 4명이 급제하였다.

경공생의 선발은 정조가 조문을 작성하여 각 경공생의 거주지에 전달하게 한 후, 경공생의 조대(條對)를 다시 정조에게 전달하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올라온 경공생 명단은 경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경학을 공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조는 다시 강원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각 고을에서 이름난 학자들의 명단을 보고하도록 분부하였고 이에 따라 각 읍에서 초택(抄擇)한 6명을 보고하였다. 이들에게 정조의 조문이 전달되고 이에 대한 조대를 올린 경공생 5명 중 박사철 등 3명에게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제수하였다. 한편 오죽헌 후손 12명에 대해서는 별도로 자리를 설치하여 응시하게 하였는데, 권한복과 권한인 두 사람이 각각 삼하(三下)의 성적으로 입격하였으나 최종 전시에는 모두 합격하지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관동빈흥록』은 경공생을 선발하기 위한 조문과 조대는 유교 경전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각 경전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과 구체적인 질문까지 겸해 당시 유생들의 경전 이해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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