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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5135
한자 喚仙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 모안이굼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원소재지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 모안이굼
성격 정자
양식 누정 건축

[정의]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 모안이굼에 있던 조선 시대의 정자.

[개설]

환선정(喚仙亭)은 16세기 후반경 권협이 지은 건물로 아들 권수경, 손자 권칭(權稱)에게 물려준 누정 건축물이나, 지금은 없어졌고 그 터만 전해지고 있다. 환선정과 관련된 인물 중 대표적인 이는 권칭이다. 권칭안동 권씨로, 강릉 지방의 사족이었으며, 1627년(인조 5) 증광 초시 생원에 입격하였고, 이듬해에는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典籍)에 천거되었으며, 이후 이조 좌랑·병조 좌랑·경상도사·직강 사예를 두루 역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환선정에서 지역 유생 및 문중 인사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

[위치]

환선정강릉시 포남동 모안이굼의 산기슭에 있었다. 경포호의 남쪽에 위치하여 정면으로 경포호경포대가 바라다 보였다.

[변천]

16세기 후반경 권협에 의해 경포호 남쪽 언덕에 건립되었던 정자로 그것이 아들 권수경에게 유산으로 전해졌고, 또 손자 권칭에게 상속되었다. 『증수 임영지』에는 권칭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나 이는 잘못된 기록으로 보인다. 환선정은 초기에는 권협과 권수경의 산장으로 이용되다가 이후 권칭 대에 이르러 소요(逍遙)와 시를 읊고,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1666년경(현종 7) 권수경과 아들 권칭의 묘를 환선정 주변으로 이장한 후 정자는 점차 쇠락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

환선정의 형태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우복 정경세(鄭經世)[1563~1633] 등의 시에 따르면 정자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월출의 광경을 즐겼던 것으로 보아 누마루와 방을 함께 만든 형태의 정자로 추정될 뿐이다. 1614년(광해군 6) 강릉 부사를 지냈던 우복 정경세환선정에 머물며 지은 시 「환선정에 머무르다[宿喚仙亭甲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송간화각출운구(松間畫閣出雲衢)[솔숲 사이 그림 누각 구름 높이 솟았거니]

봉도비선정가호(蓬島飛仙定可呼)[봉래도의 나는 신선 부를 수가 있으리라]

주성야심휘촉퇴(酒醒夜深揮燭退)[술은 깨고 밤 깊기에 촛불 불어 꺼버린 채]

좌간청월만평호(坐看晴月滿平湖)[맑은 달빛 호수 위에 가득한 걸 바라보네]

환선정의 밑으로는 못[池]이 있어 마을 이름인 모안이굼[못 안에 있는 마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주변 경관은 판서 김세렴(金世濂)이 지은 글을 통해 전해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둘레에 화초를 많이 심고 그 공간에서 태평하고 한가롭게 노닐었다. 부사 정경세가 지은 시에 이르기를 ‘그림 같은 환선정이 구름 밖에 솟았으니 봉래산 신선들을 불러도 되겠구나. 밤늦도록 술 마시고 촛불을 물리고 나니, 휘영청 밝은 달이 호수에 넘실대네.’”

[현황]

건립 당시의 환선정은 없어진 상태이며, 정자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만 확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명승지 경포호를 배경으로 한 경포 팔경 중 하나인 환선취적(喚仙吹笛)의 대상이 되었던 누정 건물로 경포대를 비롯한 주변 누정들에 대한 역사성과 지역 문화성을 설명할 수 있는 유적지이며, 또한 17세기 초반 강릉 지방 사족들의 교유 관계, 문화 및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d******* 터에 새로이 정자가 생겨놨어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은 수정증보 사업을 통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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