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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청년 동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5106
한자 江陵靑年同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11월 19일 - 강릉 청년 동맹 설립
성격 청년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강릉군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청년 단체.

[설립 목적]

강릉 청년 동맹은 1920년대 강릉 지역 청년 운동이 분산적·파벌적·분국적(分的局) 양상을 띠자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통일된 청년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변천]

강릉 청년 운동을 주도하였던 강릉 청년회의 조직과 활동이 유명무실해지자 1927년 11월 19일 강릉 청년회를 해체하고 김재진(金在軫) 등 강릉 청년회 소속 회원과 여타 청년 단체 회원들이 연합하여 강릉 청년 동맹을 결성하였다.

1927년 11월 19일 오후 4시 강릉군 강릉면 금정(錦町)[현 강릉시 금학동] 소재 불교 포교당에서 사복 경찰의 엄중한 경계 하에 최준(崔準)의 개회사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참석 인원은 40여 명 정도였다. 창립총회에서 임시 집행부 선거를 실시하였는데, 임시 의장에는 임진호(任震鎬), 서기 최준, 사찰(司察) 김재진 등이 선출되었다. 창립총회를 통해 결성된 강릉 청년 동맹은 면 청년회를 설치하고, 20여 명 이상을 기준으로 세포 단체를 지부 조직으로 전환하였으며, 청년 회관은 조선 일보 강릉 지국[전 의숭 강습소(義崇 講習所)]으로 정하였다.

창립 당시 집행 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집행 위원장 김재진, 동 후보 조근환(曺瑾煥)[2대 집행 위원장 역임], 위원 이상각(李相珏)·김종상(金鍾祥)·김성묵(金星默)·전갑봉(全甲鳳)·김남숙(金南淑)·박영대(朴榮大)·권순덕(權純德)·최헌길(崔獻吉)·이상운(李相雲)·최성근(崔成根)·최돈광(崔燉侊)·정수호(鄭守鎬), 검사 위원장 정윤시(鄭允時)[3대 집행 위원장 역임], 후보 이인종(李麟鍾)·한기룡(韓基龍)·홍순원(洪淳元) 등이 선출되었다.

강릉 청년 동맹의 조직은 집행부를 두고 면 단위로 지부 조직을 두도록 하였다. 또 집행부는 위원장, 위원장 후보[부위원 역할로 추정], 서무 재정부, 문화 선전부, 연락 조직부, 체육부, 소년부, 여자부 등으로 조직되었다. 강릉 청년 동맹의 해체 시기는 관련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강릉 청년 동맹은 강릉 지역 남녀 청년을 대상으로 민족 해방 운동과 관련된 신문 기고 활동 등과 같은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강릉 지역 출신 재외 유학생들이 방학 중 귀향하면 토론회 개최를 지원하였으며, 강원도 청년 동맹 총연합 대회 개최 등과 같이 강원도 조직과의 연계를 통해 활동 영역을 확장하였다. 또 농민 조직의 사회 운동, 소년들의 체육 활동 등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특히 강릉 청년 동맹에 가담하였던 상당수 인원들이 신간회 강릉 지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에 일제는 이들의 사회 활동을 수시로 단속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 예로 1928년 5월경 강릉 경찰서강릉 청년 동맹 집행부를 비롯한 5명의 간부를 연행하여 취조하였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 후반 강릉 지역 청년 단체의 활동상, 조직 확대 과정, 역할과 기능 등을 통해 1920년대 후반 민족 해방 운동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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