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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구군도창의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650
한자 關東九郡都倡義所
영어의미역 Headquarters of the Gwandong Righteous Army
이칭/별칭 관동의진(關東義陣)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부대
설립연도/일시 1896년 1월 30일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896년 10월 5일연표보기
설립자 민용호
대표 민용호
관련인물 전영석|이영찬|심홍택|이병채|민동식|강우서|이우열|이명렬|최용각

[정의]

강릉에 설치되어 있었던 지방 관청인 강릉부(江陵府) 관할지역의 의병부대.

[설립목적]

일제에게 당한 치욕을 갚고 동해안 일대의 일본인을 섬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설립경위]

창의대장 민용호가 강릉의진과 합진(合陣)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단순한 의병에서 출발하여 1896년 1월 30일에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창설하고 2월 15일에는 관동구군도창의부대로 개편하여 항쟁의지를 새롭게 가다듬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군비를 조달하고 의병을 모집했으며 일본군과 전투를 했다.

[활동사항]

강릉을 중심으로 고성, 통천에서 활동하였다. 원산에서의 일본군과의 격전, 대관령 아래 보현산성에서의 일본군과의 전투, 함흥부 점령 등 고종 황제로부터 의병해산령이 내려질 때까지 일본군과 끊임없이 전투를 벌였다.

[조직]

원산을 향해 강릉을 떠날 때의 군세는 포수와 창수를 포함하여 총병력이 2,380명이었다. 1896년 1월 30일 조직된 관동구군도창의소의 편제는 의병대장, 좌군장(左軍將), 전군장(前軍將), 우군장(右軍將), 후군장(後軍將) 등으로 구성되었다. 다음 달인 2월 15일에 관동구군도창의부대(關東九郡都倡義部隊)로 개편하고 창의대장, 중군장, 좌군장, 우군장, 강릉유진장(江陵留陣將), 강릉수성장(江陵守城將), 삼척중군장, 양양유진장, 양양수성장, 간성유진장 등으로 재편했다.

[의의]

관동구군도창의부대는 강릉에서 뿐만 아니라 북으로는 함흥, 남으로는 경상도에서까지 활동하였다. 우리나라의 대일(對日) 의병항쟁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버티면서 싸웠으며,강릉향교의 유림이 중심이 되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2.06 2011 한자 최종 검토 '關東九郡都倡儀所 ->'關東九郡都倡義所
2011.12.06 2011 한자 최종 검토 강릉유진장(江陵留陳將) ->강릉유진장(江陵留陣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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