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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736
한자 平生儀禮
영어음역 pyeongsaeng uirye
영어의미역 life cycle ceremony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이한길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의식과 예절.

[개설]

태어날 때 행하는 여러 가지 의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른바 관혼상제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규범을 통칭하여 평생의례라 부른다. 강릉에서 이루어지는 평생의례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현황]

강릉 지방에서 행해지는 평생의례를 출생부터 시작하여 죽음까지 간략하게 살펴본다.

1. 임신과 출산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의례는 집집마다 약간씩 상이한 면은 있지만, 대부분 기자속, 산전속, 산후속, 육아속(祈子俗, 産前俗, 産後俗, 育兒俗)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자속이란 아들 낳기를 바라는 풍속이다. 강릉 지방에서는 광범위하게 이런 풍속이 퍼져 있는데, 이런 풍속이 특정물체로 유형화한 대표적인 실례를 하나 든다면 주문진읍 소돌마을에 있는 아들바위다. 이 바위에 절을 하거나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최근의 상술이 만들어낸 풍속이라 볼 수 있고 전통적 행위로서는 치성(致誠)이 있다. 산이나 혹은 서낭에 가서 치성을 드리면서 아들 혹은 자식 점지를 기원하는 행위 일체를 일컫는 말인데, 부부가 함께 가기도 하지만 강릉 지방에서는 대체로 여인 혼자서 갔다 오는 경우가 많다. 강릉의 주신인 대관령 국사서낭당에 다녀오는 경우도 상당하다. 보통 개인치성이라 하여 혼자 간단한 예물을 장만하여 다녀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무녀와 함께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산전·산후를 즈음하여 삼신할머니를 찾는다. 아이의 명줄은 삼신할머니가 잡고 있다는 생각인데, 이런 측면에서 삼신할머니에 대한 설화들도 과거에는 곧잘 발견이 되었다. 『강릉의 설화』에 보이는 〈삼신할머니〉 설화는 삼신과 두신(홍역) 두 부부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부부간의 갈등으로 홍역이 들고, 이를 삼신이 물리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가 과거에는 강릉 전역에서 채록할 수 있었다.

아이를 출산하면 집집마다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친다. 금줄 사이에는 종이를 길게 잘라 끼우는데, 아들을 낳았을 경우에는 그 사이에 빨간 고추도 넣어 금줄을 친다. 보통 7일간 금줄을 치는데, 심할 경우 3치레라 하여 21일간 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풍속은 지금은 거의 사라졌는데, 이는 의학의 발달로 인하여 산부인과에서 주로 출산을 하기 때문에 집집마다 금줄을 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2. 백일잔치와 생일잔치

아이가 태어나면 100일을 무사히 지내는가가 최초의 관심사이다. 예전에 아이 질병이 많아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많이 사망하는 슬픈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 백일이 되면 아이가 무사히 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잔치를 연다. 이 풍속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예전만큼 크게 하지는 않는다. 강릉 지방에서는 이때 붉은 수수떡을 해주는데, 붉은 색이 의미하는 것처럼 재앙을 쫓고 복이 왔으면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백일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보통 금반지 반 돈을 해주거나 현찰로 대신하기도 한다.

아이가 완전히 살아갈 수 있을지는 첫돌로써 판명한다. 첫돌이 되면 아이가 비로소 걷기 시작하고 빠른 아이들은 말도 제법 응얼거리기도 한다. 첫돌잔치는 아이가 커 가는 과정에 있어 가장 크게 하는 생일잔치일 것이다. 이때 하객은 저마다 선물을 사 갖고 찾아가는데, 예전부터 선호했던 것은 금반지 한 돈이지만, 최근에는 역시 개성적으로 선물을 하기도 하고, 현찰로 하기도 한다. 이날 아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의례는 ‘돌잡이’라 하는 것인데, 돌상 위에 연필, 현찰, 쌀 등등 여러 가지를 놓아두고 아이가 가장 먼저 무엇을 잡는가를 보고 그 아이의 前途를 짐작한다.

인간의 평생의례 중에서 해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것이 생일이다. 생일이 되면 생일상을 차리는데, 반드시 미역국을 끓이는 전통은 아직도 남아 있다. 생일만큼은 다른 어떤 날보다도 잘 먹어야 한다. 근래에 들어와 서양의 영향으로 생일 케이크도 함께 상에 오른다. 아이가 커 청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면서 찾아오는 평생의례로써 환갑이 있다. 환갑이란 육십갑자를 따져보았을 때 자기의 갑자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즉 나이가 61살이 된 것을 의미하는데, 예전에 못 먹고 못 살던 시대에는 환갑이 대단한 의례였지만, 지금은 의약의 발달로 인하여 칠십 살마저도 대단치 않게 여기는 시절이 되었다. 그래도 사회적으로는 환갑과 칠순을 맞이하여 자식들이 부모님을 위하여 잔치를 열어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생기를 보아 그 해 잔치가 좋지 않다는 말이 들리면 잔치를 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이럴 경우 보통은 부모님을 여행을 보내준다.

3. 관례, 계례, 판례

관례는 관혼상제의 4례 중 가장 먼저 행하는 예로서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예의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예의는 거의 행하지 않는다. 관례는 보통 15세에서 20세 사이에 행한다 하는데, 보통 이 나이에 결혼을 하므로, 실제적으로는 결혼하기 전에 행하는 의례이다. 예를 들어 몇 월 며칠에 혼례를 올리기로 날을 잡으면 그 날 전에 조상의 사당에 고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초청하여 “이 아이가 며칠 날 결혼을 하니 오늘 상투를 틀고 관례를 올립니다” 하고 고하고 잔치를 한다. 이때 아이에게 갓이나 도포를 내려주는 빈(賓)은 집안 어른 중에서 복이 많고 자손이 많은 분이 그 역할을 한다. 여자아이는 계례라 하여 역시 관례에 준하여 한다. 계례란 머리를 올리고 비녀를 꽂는다는 뜻이다. 강릉에서는 ‘관례’라는 용어 외에 ‘관대잔치’ 혹은 ‘상관한다’라는 용어도 사용했다.

관례는 농촌에서 조금 변형되어 나타난다. 여름철 호미씻이나 가을철 질먹기 때 마을의 청장년 중에서 일꾼으로 쓸만한 아이가 있으면 정당한 성인의 품값을 얻기 위하여 성인식을 행하였는데, 이를 판례라 하였다. 즉 이날부터 그 아이의 품값은 성인의 품값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오늘날 강릉 지방에서 관례든 판례든 거의 모두가 없어졌다.

4. 전통 혼례와 신식 결혼

혼례는 결혼을 하는 의례이다. 전통 혼례는 초례청을 사이에 두고 집사의 홀기에 따라 신랑신부가 혼례식을 거행하는 방법이나 오늘날 신식 혼례는 예식장을 이용하여 결혼을 한다. 전통 혼례의 절차를 보면 처음에는 의혼(議婚)이라 하여 혼례를 의논하는 단계로 매파[혹은 중신애비]를 보내 상호간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강릉 지방에는 ‘며느리는 낮게 보고 딸은 높게 줘라’는 말이 있는데 각 가문의 사정을 헤아려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의혼은 전통혼례가 아니라도 오늘날 연애결혼이 아닌 중신으로 결혼할 경우 대부분 거치게 된다. 연애결혼일 경우 서로가 자기집안에 중신애비와 매파 노릇을 한다.

의혼이 성사되면 납채를 한다. 납채란 신랑집에서 남자의 사주를 적어 신부집으로 보내는 것으로, 신부집은 납채를 받게 되면 택일을 하여 다시 보내는데, 이를 涓吉이라 한다. 이 과정은 오늘날 신식혼례에서도 반드시 행한다.

전통 혼례는 예식 전날 함진아비가 함을 지고 상객과 같이 신부집으로 향한다. 보통 신랑은 말을 타고 가는데 이를 친영례라고 한다. 혼례식장에 도착하면 나무기러기를 사이에 두고 전안례를 올린다. 전안례가 끝나면 신랑이 천상배를 네 번 한 다음 뒤돌아서고, 마당에 교배상을 차리고 교배례를 올린다. 강릉에서는 신랑집에서 지랄금이라 하여 떡, 과일, 어물, 산자 등의 음식을 장만하여 신부집으로 보내는데, 함진아비와 지랄금 풍속은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신랑이 신부집에서 첫날밤을 지내고, 이튿날 신부와 함께 신랑집으로 돌아가는데, 이를 우귀(于歸)라 한다. 각자 집안 사정에 따라 신부집에서 하룻밤을 머물지 않고 그 날 밤으로 신부를 데리고 우귀하는 경우도 있다. 신부가 갈 때는 가마를 타고 갔다. 이런 풍속은 오늘날 변칙으로 행해지는데, 보통 결혼한 신랑신부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신부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신랑집으로 문안인사를 가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전통 혼례에서 보면 동상례(東床禮)라 하여 신랑매달기가 있다. 이 풍속도 오늘날 강릉의 현대풍속에서는 변형되어 나타나는데, 신부집 마을의 젊은이들이 아닌 오히려 신랑친구들이 신랑을 괴롭힌다. 강릉에서 주로 행해지는 동상례의 변형을 보면, 승용차 트렁크에 신랑을 태우고 달리기, 신랑의 발목에 밧줄을 묶어 차에 매달고 달리기, 송정 바닷가 해송에 밧줄을 묶어 신랑을 매달기, 신랑의 얼굴을 코믹하게 바꾸어 하객들에게 구경시키기 등의 짓궂은 장난을 한다. 그런데 너무 짓궂어 새신랑이 사망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경포호 주변에는 이를 경고하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5. 상례

상례는 평생의례 중에서 가장 복잡하다. 그래서 그 과정을 장의사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릉 지방에서 마을 상여가 나가는 곳을 이제는 찾을 수 없다. 최근의 장례 풍속은 병원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전엔 3일장보다는 5일장이나 7일장을 선호했다. 그 당시는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부고를 하는데도 며칠이 걸렸기 때문에 문상을 받기에는 하루 이틀로는 부족했기에 적어도 5일장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사망과 동시에 몇 분 후면 부고가 휴대폰으로 날아오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장례는 보통 3일장을 한다.

문상하는 풍속도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엔 문상을 가면 위패에 절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하는 것이 당연한 예법이었다. 그러나 외래종교의 유입으로 인해 각 종교에 맞는 문상 풍속이 강릉에도 전해져 지금은 망인의 집안 종교에 따라 문상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에를 들어 기독교라면 절을 하지 않고 옆에 준비해놓은 국화꽃을 한 송이 바친다든지 하는 식이다.

예전엔 산소를 쓰는 것도 당연했지만 최근에는 화장을 하여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는 풍속도 대두되고 있다. 국토는 비좁고 전국토가 산소가 된다면 그에 따른 문제점도 하나둘이 아니기에 정부에서도 이에 관해 화장과 납골당을 정책적으로 권유하고 있는 형편이다.

강릉에서 상례의 풍속도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산업화와 더불어 심하게 변화하고 있다.

6. 차례와 제사

차례는 명절에 조상을 위하는 의례이고 제사는 망자가 사망한 날에 지내는 의례이다. 차례는 설날,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 절기마다 지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설날추석 외에는 잘 지내지 않는다. 차례를 강릉 지역에서는 체사 혹은 차사라고 부르는데, 이는 제사와 차례가 합해진 말로 보인다. 차례를 지낸 후에 조상의 산소에 찾아가 지내는 묘제가 있다.

제사는 크게 나누어 기제와 시제가 있다. 기제는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로 4대에 한하여 받들어 지낸다. 시제는 매년 봄가을에 일정 계파의 후손들이 모두 모여 지낸다.

음식은 차례나 제사나 별반 차이가 없다. 어물은 명태, 열기, 가자미, 문어 등이 많이 쓰이고, 과일, 나물, 탕, 포, 술, 떡, 고기 등 유교식 제물로 상차림을 하나 세부적으로는 가가례라 하듯이 집안마다 차이점이 있다. 제물은 생것으로 사용하지 않고 모두 익혀서 사용한다. 그리고 설날에는 만둣국을, 동지에는 팥죽을 올린다. 유두에도 유두제라 하여 예전엔 햇과일을 올렸다.

차례나 제사의 과정은 유교식 절차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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