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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613
한자 崔致雲
영어음역 Choe Chiun
이칭/별칭 백경(伯卿),경호(鏡湖),조은(釣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최안린(崔安麟)
어머니 전인구(全仁具)의 딸
아내 함화(咸華)의 딸
출신지 강릉
성별
생년 1390년(공양왕 2)연표보기
몰년 1440년(세종 22)연표보기
본관 강릉
제향 강릉시 교동 향현사(鄕賢祠)
대표관직 이조참판

[정의]

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강릉(江陵).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생원 최안린(崔安麟)이고, 어머니는 정선전씨 낭장(郞將) 전인구(全仁具)의 딸이다.

[생애]

최치운은 1408년(태종 8) 19세 때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417년(태종 17) 27세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 정자(承政院正字, 종7품)를 시작으로 저작(著作, 정8품), 박사(博士, 정7품), 부교리(副敎理, 정6품), 집현전 수찬(修撰, 정6품), 전농시 주부(典農寺主簿), 교리, 공조·예조·이조 참판, 예문관 제학(종2품) 등을 거쳐 세자(후일의 문종)의 학문을 가르치는 우빈객(右賓客, 정2품)에 임명되었다.

[활동사항]

1411년(태종 11)에 화재로 강릉향교가 전소되자 강릉대도호부 판관(判官) 이맹상(李孟常), 흡곡현령 김지(金輊)를 비롯한 제생(諸生)들과 함께 향교 중건을 서명한 공장(供狀)을 조정에 올려 1413년(태종 13)에 중건하였다.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서는 주로 승문원·집현전 등에서 근무하였다. 승문원은 명(明)과의 사대(事大)와 일본·여진과의 교린(交隣)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였고, 명과의 외교 문서에 쓰이는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최치운은 외교 문서 관장의 적임자로 논의될 정도로 중국 이문에도 정통하였다

1433년에는 평안도절제사 최윤덕(崔潤德)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 야인 이만주(李滿住)를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1439년(세종 21)과 1440년에는 계품사(啓禀使)로 명나라에 가서 여진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등 모두 5차례에 걸쳐 사신으로 명나라를 왕래하여 외교적 공적을 쌓았다.

[저술]

『무원록(無寃錄)』을 주석하고 『상례고정편(喪禮考正篇)』을 저술하였다.

[묘소]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 위치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향현사(鄕賢祠)에서 제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2.21 2011 한자 최종 검토 『무원록(無寃錄)』을 주석하고 -><서명>『무원록(無寃錄)』</서명>을 주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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