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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신앙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613
한자 五臺山信仰
영어음역 Odaesan sinang
영어의미역 Odaesan Worship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김흥삼

[정의]

산악숭배와 문수신앙·밀교가 융합된 신앙.

[개설]

중국의 산악신앙은 웅장하고 신비한 자태를 보여주는 산악에 신이 거주한다고 생각해 신성시 여긴 데에서 출발하였다. 그 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후 산악을 여러 불보살(佛菩薩)의 본지(本地)나 시현(示顯)의 영험한 장소로 숭배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즉, 중국의 자연 위에 새로운 신앙형태인 중국적 산악불교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며 융성하였던 것이 바로 오대산신앙이다.

[역사와 변천]

중국의 오대산신앙은 “동북방의 청량산(淸凉山)에 문수보살(文殊菩薩)이 1만의 권속(眷屬)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한다.”(『육십화엄경(六十華嚴經)』「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와 “내가 멸도(滅度)한 후 섬부주(贍部州)의 동북방에 나라가 있어 대진국(大振國)이라 이름한다. 그 국토 중에 오정(五頂)이라고 하는 산이 있고, 문수사리동자(文殊舍利童子)가 유행거주(遊行居住)하면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설법할 것이다.”(『문수사리법보장다라니경(文殊舍利法寶藏陀羅尼經)』)에 의거해 성립된 신앙이다.

이와 같이 경전에 나타난 청량산과 오정산을 이 경전이 처음으로 중국에서 번역된 동진(東晋) 이후 요건에 적합한 중국 산서성(山西省)의 오대산으로 비정(比定)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많은 순례자들이 오대산을 참배하는 과정에서 문수의 화현(化現)을 접하고 신이(神異)를 목격한 영험담(靈驗談)이 늘어나자 이 산이 문수진신(文殊眞身)의 상주처(常住處)라고 믿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화엄종(華嚴宗)을 비롯한 불교의 여러 종파도 오대산에 절을 짓고 많은 고승들이 오대산을 중심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오대산신앙은 당대(唐代)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번창하였다. 먼저 밀교의 대덕(大德)인 불공(不空)은 안사(安史)의 난 이후 오대산을 전국 불교의 중심지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당 왕조가 요구하는 호국도량(護國道場)으로 갖추었다. 또 화엄의 징관(澄觀)은 문수보살이 오대산에 머무른다는 지금까지의 신앙에다가 문수보살의 특성인 지혜를 결부시켰다. 즉 금강계 만다라의 오방불(五方佛) 개념을 도입하여 오대산신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신라인들은 일찍부터 산악에 신인(神人)이 거처한다고 생각하여 숭배하는 습속을 가졌다. 이와 같은 산악숭배가 불교화한 가장 두드러진 예가 오대산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오대산을 진성(眞聖)이 거주하는 곳으로 생각한 최초의 인물은 자장(慈藏)이다. 그는 중국 오대산의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 석상(石像) 앞에서 7일 동안 기도하여 감응을 받고 문수로부터 사구게(四句偈)와 부처의 유품을 전수받았다. 또 신라의 동북방 명주 경계(境界) 오대산에 일만의 문수가 상주하니 가서 참배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문수현신(文殊現身)의 부촉에 의해 자장은 중국에서 귀국한 해인 선덕여왕 12년(643)에 바로 강원도 오대산을 순례하였다고 한다.

이후 보천(寶川)이 오대산에 들어와 수행생활을 하다 임종 때에 이르러 뒷날 산중에서 나라를 위하여 도움이 될만한 방안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오대산은 곧 백두산(白頭山)의 큰 줄기로 각 대(臺)는 진신(眞身)이 상주하는 곳이다. 청(靑)은 동대(東臺)의 북각(北角) 아래와 북대(北臺)의 남쪽 기슭 끝에 있다. 그곳에는 마땅히 관음방(觀音房)을 두어 원상관음(圓像觀音)과 푸른 바탕에 일만(一萬) 관음상(觀音像)을 그려 봉안(奉安)하고 복전(福田) 오원(五員)을 두고 낮에는 『팔권금경(八卷金經)』과 『인왕반야(仁王盤若)』·천수주(千手呪)를 읽게 하고 밤에는 관음예참(觀音禮懺)을 염(念)하게 하여 그곳을 원통사(圓通社)라 이름하라.

적(赤)은 남대(南臺)의 남면(南面)에 있다. 그곳에는 지장방(地藏房)을 두어 원상지장(圓像地藏)과 붉은 바탕에 팔대보살(八大菩薩)을 수반(首班)으로 1만 지장상(地藏像)을 그려 봉안하고 복전 5원을 두어 낮에는 『지장경(地藏經)』과 『금강반야(金剛盤若)』를 읽게 하고 밤에는 점찰예참(占察禮懺)을 염하게 하여 금강사(金剛社)라 이름하라.

백색방(白色方)인 서대(西臺)의 남쪽에는 미타방(彌陁房)을 두어 원상무량수(圓像無量壽)와 흰 바탕에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수반으로 1만의 대세지(大勢至)를 그려 봉안하고 복전 5원을 두어 낮에는 『팔권법화(八卷法華)』를 읽게 하고 밤이면 미타예참(彌陁禮懺)을 염하게 하여 수정사(水精社)라 이름하라.

흑색지(黑色地)인 북대(北臺)의 남쪽에는 나한당(羅漢堂)을 두어 원상석가(圓像釋迦)와 검은 바탕에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수반으로 오백나한(五百羅漢)을 그려 봉안하고 복전 5원을 두어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과 『열반경(涅槃經)』을 읽게 하고 밤에는 열반예참(涅槃禮懺)을 염케 하여 백련사(白蓮社)라 이름하라.

황색처(黃色處)인 중대(中臺)의 진여원(眞如院) 가운데는 이상분수부동(泥像文殊不動)을 모시고 후벽(後壁)에는 누런 바탕에 비로자나(毗盧遮那)를 수반으로 삼십육화형(三十六化形)을 그려 봉안하고 복전 5원을 두어 낮에는 『화엄경(華嚴經)』과 『육백반야(六百般若)』를 읽게 하고 밤에는 문수예참(文殊禮懺)을 염하게 하여 화엄사(華嚴社)라 이름하라.

보천암(寶川庵)을 개창하여 화장사(華藏寺)로 하고 원상비로자나삼존(圓像毗盧遮那三尊)과 대장경(大藏經)을 봉안하고 복전 5원을 두어 낮에는 『장문장경(長門藏經)』을 읽게 하고, 밤에는 화엄신중(華嚴神衆)을 염하게 하고 해마다 100일동안 화엄회(華嚴會)를 열게 하여 법륜사(法輪社)라 이름하라. 이 화장사(華藏寺)로 오대사(五臺社)의 본사(本寺)를 삼아 굳게 호지(護持)하고 정행복전(淨行福田)을 명하여 길이 향화(香火)를 받들게 하면 국왕이 장수하고 백성이 안태(安泰)하고 문무가 화평하고 백곡이 풍요할 것이다.

또 하원문수갑사(下院文殊岬寺)를 더해 사(社)의 도회(都會)로 삼고 복전 7원이 밤낮으로 화엄신중예참(華嚴神衆禮懺)을 행하게 하고 위에 말한 37원의 재료의비(齋料衣費)는 하서부(河西府) 도내(道內) 팔주(八州)의 세금으로 사사(四事)의 자금에 충당케 하라. 이리하기를 대대로 군왕이 잊지 않고 준행(遵行)하면 다행이겠다.”

이 방안은 오대산 각 봉우리에 대한 신앙형태와 수행실천이 관련된 것이다. 당시에 관음·지장·미타·석가·나한신앙과 화엄·문수신앙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신앙은 각각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불상과 소의경전(所依經典)·신앙의례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신앙의례를 실천 지도할 다섯 사람의 소임(所任)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 다섯 가지의 신행(信行)은 본사(本寺)인 화장사(華藏寺)에 화엄회(華嚴會)를 개설하였으므로 결국 화엄신앙에 의해 통섭(統攝)되었다. 그러므로 오대산의 신앙결사를 화엄만다라적인 조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만다라적인 오대산신앙의 형태는 이미 보천 오대산에 처음 왔을 때도 있었다. 즉 오대산 각 대에 관음·미타·지장·석가·문수 등의 불보살(佛菩薩)이 상주·설법하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여러 불보살이 많은 권속을 거느리고 각기 오대에 상주한다는 것은 오대산이 진성이 거주하는 성지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밀교의 만다라적 세계관을 신라화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오대산신앙의 중심이 되는 중대의 부처를 밀교의 대일여래로 하지 않고 화엄의 비로자나로 한 것도 두 신앙이 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라의 오대산신앙은 화엄의 입장에서 신라인의 토속신앙을 포섭하고 밀교적으로 재정립시킨 신라적 신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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