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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강릉지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248
한자 新幹會江陵支會
영어의미역 New Trunk Society, Gangneung Branch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류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단체
설립연도/일시 1927년 12월 3일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31년 5월연표보기
설립자 이원재(李元載)

[정의]

1927년 12월 3일에 결성된 항일단체인 신간회의 강릉 지역 지회.

[개설]

1926년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정우회에서 비타협적인 민족주의와 통일전선을 구축하자는 제안을 발표함으로써 국내의 민족해방통일전선이 구체화되었다. 그 결과 1927년 12월 국내 민족유일당운동의 좌우합작 모임으로서 신간회가 창립되었으며, 강릉을 비롯하여 각 지방에 지회가 설립되었다.

[설립목적]

신간회는 1927년 2월 ‘민족 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제휴하여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이다. 신간회는 민족적·정치적·경제적 예속의 탈피,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 쟁취, 청소년·여성의 평형운동 지원, 파벌주의·족보주의의 배격, 동양척식회사 반대, 근검절약운동 전개 등을 활동목표로 삼아 전국에 지회와 분회를 조직하였으며, 이 일환으로 설립된 단체가 신간회 강릉지회이다.

[설립경위]

이한봉(李漢鳳)·최두집(崔斗集)·임병철(林秉轍)·정윤시(鄭允時)·이상각(李相珏)·이윤식(李允植)·김유경(金游卿)·함덕호(咸德鎬)·최경규(崔景圭)·함종철(咸鐘喆) 등이 신간회 강릉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1927년 10월 5일 신간회 강릉지회를 조직하기 위한 준비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최준(崔準)·전성묵(全星黙)·최선재(崔善在)·송세호(宋世浩)·조근환(曺槿煥)·장동균(張東均)·이상각(李相珏) 등 7인의 준비위원이 선출되었다. 이들의 2개월 동안의 활동에 힘입어 1927년 12월 3일 60여 명의 회원이 모인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었으며 중앙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때 송세호의 개회사에 이어 임진호(任鎭鎬)의 신간회 설립취지 설명이 있었고, 계속하여 임진호와 송세호를 각각 의장과 부의장으로 하는 임시 집행부를 구성한 뒤 회관과 예산에 대한 토의를 하였다. 이날 각처에서 온 축전과 전문이 70통에 이르렀고, 이것을 정윤시 회원이 낭독하였다. 특히 양양지회와 삼척군 청년동맹에서 참가한 내빈이 열렬한 축사를 하였고 본부에서도 임원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교통 관계로 참가하지 못했다.

[변천]

신간회 강릉지회는 1930년 12월 20일에 전체대회 대의원을 선출하였고, 1930년 12월 28일에는 이승만(李承萬)을 비롯한 8명의 신간회 강릉지회의 집행위원을 선출하였다. 이러한 조직개편은 당시 신간회 중앙회의 위원장제의 도입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집행위원장에 이원재, 집행위원에 이상각·정윤시·최선재·이승만·강재선·정인화·박영대·함재홍·최종필·최돈호·서광훈·김유경 등 12명이었으며, 집행위원후보에는 이창연·심연옥·전광현·최은순·김진석·강익선 등 6명이었다. 또한 검사위원으로는 이한봉·최준·박영석·최도제 등 4명이었다. 이후 신간회 중앙회의 해소론(解消論)에 영향을 받아 1931년 5월에 해체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신간회 강릉지회는 조선인에 대한 착취기관의 철폐, 일본인의 조선 이민 반대, 타협적 정치운동 배격, 조선인 본위 교육제도 실시, 사회과학과 사상연구의 자유 보장, 식민지 교육정책 반대 등을 목적으로 노동운동, 농민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을 지도하였다.

[활동사항]

신간회 강릉지회는 1927년 12월 11일에 간사회의 결정사항으로 당시 "재만동포(在滿同胞) 만주에서 구축당함"이란 기사의 보도와 관련하여 항의단을 강릉경찰서장에게 파견하여 그 왜곡적인 성향에 항의하였다. 1928년 2월 13일에는 신간회 강릉지회 총무회를 개최하여 신간회 전국대회 금지규정 7건에 대한 항의를 결의하기도 하였다. 이후 해체되기까지 강릉 지역의 독립운동을 선도하였다.

[조직]

신간회 강릉지회 창립 당시의 임원조직은 다음과 같다. 회장에 이원재(李元載), 부회장에 이한봉(李漢鳳), 간사에 방훈(方薰)·송세호·임진호(任震鎬)·김재진(金在軫)·정윤시(鄭允時)·조근환·최선재·이상각·김종상(金鍾祥)·정호태(鄭鎬泰)·전성묵, 최준·조승환(曺昇煥)·장동균·강창희(姜昌熙)·이응룡(李應龍)·김봉진(金鳳振)·한성제(韓聖提)·이윤식(李允植) 등으로 조직되었다. 그리고 서무부, 재무부, 문화부, 조사연구부, 출판부, 선전부, 특별부 등 7개 부서를 두고 각각 총무간사, 상무간사, 간사를 두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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