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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성화 5년 강릉대도호부 입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962
한자 上院寺成化五年江陵大都護府立案
영어의미역 Official Certificate of Sangwonsa Temple Issued by the Gangneung Daedohobu in the 5th Seonghwa Year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관련인물 신미(信眉)|홍지(弘智)
발급자 강릉대도호부
수급자 상원사
발급일시 1469년(예종 1) 윤2월 9일연표보기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처 주소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 6가 168-6번지]

[정의]

1469년(예종 1) 강릉대도호부에서 상원사에 발급한 문서(文書).

[개설]

입안(立案)은 개인의 청원(請願)에 따라 특정 사안, 즉 토지·노비 등의 매매(賣買)·양도(讓渡)·소송(訴訟)의 판결, 특전(特典)의 인정 등을 관청에서 확인하여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발급해 준 공증문서(公證文書)이다.

[제작발급경위]

세조대 원찰로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상원사는 각종 경제적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1467년(세조 13)에 세조상원사에 거주하고 있었던 신미(信眉)에게 진황된 지 오래된 산산제언(蒜山堤堰)을 사급(賜給)하였다. 산산제언은 현 강원도 강릉시 신석동 서쪽 섬석천에 있던 저수지로, 그 위치는 강원도 강릉시 박월동 흐린냇물 아래쪽이라 짐작된다. 상원사에 대한 특혜는 전지(田地)에 국한되지 않고, 각종 잡역(雜役)과 요역(徭役), 사원 소유의 염분세(鹽盆稅)를 면제해 주기도 하였다.

1469년(예종 1)에 상원사의 도사승(都事僧)인 홍지(弘智)가 소지(所志)를 올려 “절에서 올린 염분세(鹽盆稅)와 전지잡역(田地雜役)을 감제(減除)하라고 하신 전지(傳旨)를 상고(相考)”하여 입안을 발급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호조에서 산산제언(蒜山堤堰)을 상원사에 제급(題給)하되, 동사(同寺)의 제잡역(諸雜役)과 염분세(鹽盆稅) 등을 감제(減除)하라는 관문을 강원도관찰사에게 하달함에 따라 입안(立案)을 발급하였다.

[구성과 형태]

크기는 79.4×70.5㎝이고, 사방 7.5㎝의 "강릉대도호부사인(江陵大都護府使印)" 9개가 찍혀 있다.

[내용]

강릉대도호부에 속한 산산제언(蒜山堤堰)을 상원사에 제급(題給)하고 아울러 제잡역(諸雜役)과 염분세(鹽盆稅)를 감제(減除)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서의 끝 부분에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와 판관(判官)의 서압(署押)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 사원 경제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천** 예국고성을 이렇게 복원하자.
http://blog.naver.com/cdsdcc/220205929950
2014.12.16
천** 강릉대도호부의 역사를 시민들이 긍정적으로 말 할수있게 그 정보자료를 배부하여 시민교육을 시행하여야 한다. 18올림픽 세계시민들에게 설명하여 줄수있는 자료를 말한다. 그것이 임영고을을 설명하기보다 긍정적이 못된다면 당연히 임영관을 임영관으로 다시 복귀하여야 할것이다. 천리안은 예국고성을 복원하여 월화정과 연계하여 18올림픽 때 세계시민들께 보이자고 제언하였다
  • 답변
  • 디지털강릉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은 학계에서 정리되는대로 바로 수정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12.16
천** 강릉대도호부의 긍정적인 역사이야기는 하기 궁한것은 나의 무식함 때문겠지만 임영고을 이야기를 말할 수없는 미래의 강릉사람들을 아쉬워한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이며 과거를 단절한 역사는 폭력의 승리자만 써가는 군주론적 발상이다. 백성을 의식하지 않는 세상은 언제인가 백성의 저항을 면치못하고 멸망한다는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것이다. 2014.12.16
천** 후한서 권85 동이열전75 삼국지 권30 위서오환선비동이전 권30.
이 문서들은 AD-1세기를 막 시작하던 시절의 정보들이다 그중에 선별하여 살피면 강릉사람들이 대륙에서부터 연.제.조의 난을 피하여 한반도로 밀려오며 단단대령을 넘어 와서 임영고을 사람들이 예국을 건설하여 무천제를 지내던 정보가 많이 나온다. 그 이야기는 할 수 있다.
2014.12.16
천** 고종칙령제98호{1896년) 전국 23부 제도가 문제가 많아 곧 8도제도로 교정하였었다
과연 15세기에 강릉대도호부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어떻게 설명 할것인지 필자도 설명하기 어렵다.
무식한척 그대로 살아야하나? 임영이란 우리고을의 이름이었으며 누구도 이의를 하지않던 이름으로 사람들이 살기좋아 대륙에 소문나서 선비 신선들이 찾아오던 옛이름이었다.
2014.12.16
천** 강릉임영관을 강릉대도호부관아로 명칭을 바꾸었다. 강릉시민들이 강릉대도호부의 정서에 관하여 그 정보를 밀착하여 설명 할 수 있어야 한다. 명칭만 바꾸고 그 정보를 모르거나 긍정적으로 많이 알려주지 못하면 그것은 무식주의의 소치를 말하는 문맹주의시대의 일제강점기를 방불한다. 과연 강릉대도호부의 격에 맞는 이름이었는가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2014.12.16
천** 고종황제 칙령 제98호{1896년-개국504년} 강릉부 9개군{강릉군, 울진군, 평해군, 삼척군, 고성군, 간성군, 통천군, 흡곡군, 양양군)중 강릉군 21개면의 인구가 남정 11,088명 여정 17,452명 합계 28,540명 조선조 최초의 인구통계(임영지 동호누인편)는 21개면의 남녀인구가 세세히 적혀있다. 1469년대의 강릉도호부의 인구는 얼마일까? 2014.12.16
천** 상원사가 박월동에가지 와서 직접세로 염분세를 시행하였다면 불교의 타락을 자처하는 꼴이 된다.
즉 15세기 조선조 그 시절에는 칠성암자를 통하여 시행하였으며 박월동 일대에는 칠성암자이외에
전래되는 사찰은 없었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것이다. 전피아들은 굴산사를 사실사로 조작하기 위하여 무한한 노력을 할것이나 그것이 민족문화를 말살시키는 행위임을 모른다.
2014.12.16
천** 상원사가 박월동 달래산(마늘산)에까지 염분세와 잡역을 시행하였다면 역사적으로 설명이 되지않는다. 다만 칠성암이 상원사의 말사임으로 시행되었다면 순기능적으로 설명이 될수 있다. 조작된 굴산사 발굴현장을 오대산 말사로 잡아매려는 의도라면 역사조작의 연속선에서 용납 될수없는 민족적 재앙을 설계하는 모습일것이다. 범일선사는 칠성암같은 암자에서 정진한 고승이시다. 201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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