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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635
한자 朴元東
영어음역 Park Wond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장정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강릉
성별
생년 1873년연표보기
몰년 1949년연표보기
대표경력 강릉향교 전교

[정의]

강릉시 시동 출신의 근대 문인·유학자.

[개설]

박원동(朴元東)의 자는 덕영(德英), 호는 시호(詩湖)로 어려서부터 한학에 힘써 그 학문이 향촌에 으뜸이었다. 벼슬은 종사랑으로 안변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으며 귀향하여 면장을 지냈다. 또한 풍호정을 짓고 시풍을 즐겼다.

[경력]

1933년 7월부터 2년간 강릉향교 직원(直員)으로 재직하였다.

[활동사항]

시호 박원동 선생은 강릉 유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향토지를 정비하여 역사와 문화를 되찾고, 강릉향교의 전통을 되살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강릉향교 재산을 오봉서원, 송담서원, 유천서원의 제향비로 보조하도록 추진하고, 강릉 오죽헌이 친일계 갑부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위기에 봉착하자 일본인 군수 다키자와 마코토[瀧澤誠]를 움직여 강릉고적보존회를 조직하여 보증을 하고,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막게 하였다.

송담서원 다례의식 개정을 주도하고 서원비각을 조성하는 등 유림과 문화계를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1939년에는 충렬공 박제상의 사우인 경양사를 창건하여 일제 강점기하에도 향촌에서 한학의 맥을 이었다.

[저술]

시호 박원동의 문집 『시호문집(詩湖文集)』은 일명 『시호선생총쇄집(詩湖先生叢瑣集)』이라고도 한다. 59세인 1931년 가을 강릉 12향현을 수록한 『강릉향현행록(江陵鄕賢行錄)』을 편집·출판하였고, 12향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였다. 또한 『임영지(臨瀛志)』 속지가 발간된 1786년 이후 1933년까지 147년간 있었던 일을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 구지 말미에 덧붙여 싣는 등 주도적으로 『임영지(臨瀛志)』 증수에 참여하였다. 또한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는 『강릉향교실기』편찬에도 김병환과 함께 강릉고적보존회 일원으로 편찬하였다.

60세인 1932년 9월부터 강릉군수 다키자와 마코토[瀧澤誠], 유림 김병환과 함께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편찬 사업을 1년간 주도하여 1933년 8월에 출간되었으며, 이미 독자적으로 『강릉향현행록(江陵鄕賢行錄)』[강릉향현사, 1931]를 편집·발행하였다. 또한 『오봉서원록』과 『송자대전』 중간 유사를 맡았다.

[의의와 평가]

박원동은 강릉 유림의 중심적 인물로 사회적 활동뿐 아니라 문인으로서 시를 짓고 정자를 복원하였으며, 향토지를 편찬하고, 각종 자료를 발굴하여 향토인물을 선양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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