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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415
한자 江陵鶴山-
영어의미역 Song of Odokttegi in Gangneung Haksa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집필자 김영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8년 5월 18일연표보기 - 강릉학산오독떼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강릉학산오독떼기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
성격 민요|향토민요
토리 메나리토리
출현음 미-솔-라-도-레-미
기능구분 노동요|농요
형식구분 선입후제창
박자구조 불규칙박자
문화재 지정번호 강원도 무형문화재
홈페이지 강릉 학산 오독떼기보존회(http://www.haksanod.co.kr/main/main.php)

[정의]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전승되는 향토 민요.

[개설]

강릉학산오독떼기는 강원도 강릉 지방에서 논김을 맬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의 하나로, 남쪽으로는 동해시의 망상·옥계부터 북쪽으로는 양양군 남부 지역까지 분포되어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논농사 소리가 불리지만, 어느 지역이든 논매는 소리가 가장 다채롭고, 음악적으로도 세련되어 있다. 이는 논매는 작업에 다수의 인원이 참여할 뿐 아니라, 초벌[애벌] 논매기로 시작하여 대부분 세 차례 논을 매어야 하기 때문에 각 작업과정에 따라 소리가 발달된 것이다.

강릉학산오독떼기는 1988년 5월 18일 강릉 학산마을에 전승되는 논농사 소리를 강원도의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하면서, 논매는 소리인 「오독떼기」를 그 명칭으로 삼게 된 것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강릉학산오독떼기에는 논매는 소리인 「오독떼기」 이외에도 논매는 소리로 「꺾음 오독떼기」와 「잡가」·「사리랑」·「담성가」 등이 포함되며, 모찌기 소리, 모내기 소리, 벼베기 소리, 타작 소리 등 일체의 논농사와 관련된 농요가 포함되어 있다.

2011년 현재 이 종목의 예능보유자는 5인으로 이상욱, 윤흥용, 최삼영, 정완화, 손병선이며, 강릉학산오독떼기의 보존과 전승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유래]

「오독떼기」의 유래와 관련하여 “옛날 신라 때는 화랑(花郞) 무리들이 강릉 근방을 순력(巡歷)하면서 풍류도(風流道)를 닦았다고 하는데, 그 당시 국선(國仙)들이 부르던 노래가 곡조만 살아서 내려왔다.”는 견해가 있다. 아울러 『삼국사기(三國史記)』「악지(樂志)」에 하서군(河西郡) 음악으로 소개된 「덕사내(德思內)」를 「오독떼기」와 관련지어 해석하려는 김선풍(金善豊)의 견해가 학계에 소개된 바 있으나,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강릉 지방 농요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 세조 12년의 실록에 보인다. 세조는 특히 농요를 좋아하여 농요를 잘하는 사람을 선발하여 궁중에서 노래를 듣기도 하였는데, 1466년(세조 12) 윤3월에 동해안지방을 순행(巡幸)하던 중, 14일 밤을 연곡(連谷)에서 머물면서 ‘농가(農歌)’를 잘 부르는 사람을 모아 장막 안에서 노래하게 하였다. 노래를 잘 한 사람으로 하여금 임금의 수레를 따르게 하였고, 이튿날은 임금의 행차가 구산(丘山)에 머물렀다 한다. 이런 점으로 보아 당시에 이미 강릉 지역의 농요가 음악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이를 만큼 세련되었으며, 임금 앞에서 불려질 만큼 농민들의 음악적인 기량도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학산 마을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옛날 어느 원님이 이 고을에 왔을 때, 왕(王)고개를 넘다가 「오독떼기」를 듣고 어찌나 좋던지 향청(鄕廳)으로 불러서 노래를 시켰다고 한다. 왕고개구정면 소재지에서 학산리로 넘어가는 길목이므로, 당시 원님이 들었다는 「오독떼기」는 냇골[內谷], 즉 학산(鶴山)과 여찬리(余贊里) 부근의 농민들이 부른 노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릉 지방에서는 지역적인 특징에 따라 「오독떼기」를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냇골[內谷] 오독떼기」[내곡동, 학산리 지역], 「수남(水南) 오독떼기」[남대천 남쪽인 박월동, 어단리, 금광리 지역], 「하평(下坪) 오독떼기」[사천의 하평 지역] 등이 그것이다.

학산은 냇골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현 내곡동 보다 학산이 ‘물이 더 세고, 소리가 세다’고 한다. 이 「학산 오독떼기」를 「냇골 오독떼기」 또는 「자진 오독떼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하평 오독떼기」에 비하여 노래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명칭]

‘오독떼기’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째로 옛 신라 때 화랑의 무리들이 부르던 노래가 곡조만 살아서 전하는 것이란 설이 있으며, 둘째로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독(五瀆)을 ‘떼기[開拓]’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셋째로는 ‘오’는 신성하고 고귀하다는 뜻이고, ‘들떼기’는 들판을 개간한다는 뜻에서 생겼다는 설이 있으며, 넷째로 다섯 번을 꺾어 부르기 때문에 오독떼기라 했다는 설과 다섯 곡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곡떼기’라 하던 것이 오독떼기로 정착했다는 설 등이 있다.

[구성]

강릉학산오독떼기는 불규칙한 리듬으로 노래하는데, 사설은 4음보로 구성된 4구가 모여 한 절을 이룬다.

① 이슬 아침/ 만난 동무 (석)/ 석양천에/ 이별일세//

② 강릉이라/ 남대천에 (빨)/ 빨래 방치/ 둥실 떴네//

강릉학산오독떼기는 그 가창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즉 메기는 사람이 앞의 두 구(句)를 독창으로 메긴 다음 셋째 구의 첫 글자를 띄우듯이 내어 주면 뒷소리꾼들이 제창으로 제3·4구를 달아서 노래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소리를 잘하는 선소리꾼이 있어 주로 메기는 소리를 담당하지만, 강릉학산오독떼기는 선소리꾼이 따로 없고, 서로 돌아가며 메기는 소리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한 논에서 강릉학산오독떼기 한 절을 노래하면 다른 논의 일꾼들이 그 소리에 이어서 다른 절을 노래해서, 학산 들의 여름날 오후는 강릉학산오독떼기 소리로 메아리쳤다고도 한다.

강릉학산오독떼기의 가사 한 절은 불과 16자 정도의 짧은 것이지만, 이 한 절을 노래하는 데는 약 1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는 한 글자를 길게 늘여서 화려한 꾸밈음[裝飾音]을 넣어 부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강릉학산오독떼기를 부를 때는 고음으로 장쾌하게 뻗는 것이 특징인데, 이처럼 높은 소리로 길게 뻗어 노래하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든다. 따라서 현지에서는 오래 전부터 “「오독떼기」는 엉덩이와 똥꾸로 뀐다”는 속언(俗言)이 전하기도 한다.

강릉학산오독떼기는 규칙적인 박자나 리듬을 갖지 않고, 한 절이 다섯 악구로 나뉜다. 「오독떼기」의 음계(音階)도 대부분의 강원도 향토민요처럼 메나리토리로 구성되었다. 즉 상행 시에는 미-라-도-레-미의 4음 음계, 하행 시에는 미-레-도-라-솔-미의 5음 음계이며, 솔은 주로 경과적으로 사용되고, 레는 도의 장식음처럼 쓰인다.

「오독떼기」를 부르다가, 음악적인 변화를 주고자 할 때는 「꺾음 오독떼기」를 부른다. 「오독떼기」의 변주곡인 「꺾음 오독떼기」는 「오독떼기」를 ‘꺽어 부른다’는 의미인데, 「오독떼기」의 제3악구의 앞부분을 3소박의 비교적 규칙적인 박자로 노래하고, 특히 이 부분의 고음을 가성(假聲)[속소리]으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오독떼기」에서는 가성을 전혀 쓰지 않고, 아무리 높은 음이라도 통성(通聲)으로 질러 내는데 비하여, 「꺾음 오독떼기」에서는 다소 규칙적인 리듬이 쓰이고, 고음에 가성을 사용하여 음악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꺾음 오독떼기」는 「오독떼기」를 다 부르고 나서 이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오독떼기」를 부르는 중간에 섞어 부르는 노래이다. 이 점은 불규칙한 리듬에 속도가 느린 「오독떼기」에서 가창자들이 음악적인 다양성(多樣性)을 추구한 결과이며, 강릉학산오독떼기가 지니는 음악적 우수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꺾음 오독떼기」의 리듬구조나 음계는 「오독떼기」와 대체적으로 같다.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5호 강릉학산오독떼기로 지정된 농요는 한 해 논농사의 과정에서 부르는 일체의 현지 농요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작업 순서에 맞추어 모내기 소리인 「자진아라리」, 논매기 소리인 「오독떼기」·「꺾음 오독떼기」·「잡가(오동동)」·「사리랑」·「담성가」·「싸대」, 벼 베기소리인 「불림소리」, 타작소리인 「마댕이소리」 등으로 구성되었다.

[가사]

「오독떼기」

갈적에 보니 심으던 나무가 올적에 보니 노목이 되었네

강릉 남대천 큰아기 방망이 소리 어깨춤이 절로 난다

강릉 월정 오대산 물이 놋거리 청심대 안고나 도네

강릉이라 경포대는 관동팔경 제일일세

강릉이라 남대천 물 빨래 방치 둥실 떴네

괄세 말아 괄세 말라 농부라고 괄세 마라

남문을 열고 북문을 치니 대명산천이 밝아오네

남문을 열고 파래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오네

널로하여 병든 몸이 인삼 녹용 소용 있나

님 찾아 가세 님 찾아 가세 뽕대 밑으로 임 찾어 가세

달은 밝고 명랑한데 강릉 경포대 달맞이 가세

마누라보고 정 들였더니 행실을 보니 정 떨어지네

말을 타고 꽃밭에 드니 말 발굽에 향내 난다

맨드라미 봉선화는 동원 뜰에 붉었구나

머리 좋고 실한 처녀 줄뽕낭게 걸어 앉네

모시 적삼 젖혀 들고 연적 같은 젖을 주오

모학산에 자란 처녀 한양 낭군 찾아 가네

못 다 맨 짐을 다 매다가 권봉색을 잃고 가네

바다 같은 요 논자리 배뱅뱅 돌려라 돈짝이다

바다 같은 이 논빼미 장기쪽이 다 되였네

살자하니 고생이요 죽자하니 청춘이요

삼척에 오십천물에 빠진 빨래 망치 도동실 동실 떳네

삼척이라 오십천 물에 빨래 방축이 둥실 떳네

서경천이 되었으니 「오독떼기」 하여 보세

선들 선들 부는 바람 모습조차 처랑하다

세월 네월 가지 마라 청춘 호걸 다 늙는다

술맛이 좋구 딸 둔 집에 아침 저녁 놀러 가세

아세네 해당화에 꽃이 진다고 설워를 마라

앞뜰에는 「오독떼기」 뒤뜰에는 잡가로다

양근 지평 썩 나서니 경기 바람 완연하네

양양 낙산 의상대 끝에 고기 낚는 저 어부야

양양이라 의상대 끝에 고기 낚는 저 소녀야

여러 일꾼 목마른데 술을 먹고 쉬여 하세

여주 이천 돌배나무 꽃이 피어 만발했네

여주 이천 자차벼는 입추진장 하고지고

연줄 가네 연줄 가네 해달 속에 연줄 가네

오늘 날엔 이 논에서 내일 날에 저 논으로

오늘 해도 건주 갔네 골골마다 정자 졌네

올해도 풍년 내년도 풍년 세세연연 풍년일세

요질 매고 조질 매고 임에 받질 마주 매세

월정리라 오대산 물은 정심대로 돌아든다

이 논 뺨에 모를 심어 결실 후에 봉제후접빈객하세

이 논 뺨에 모를 심어 장립이 훨훨 영화로다

이들 저들 얼른 매고 우리 동네 질을 먹세

이슬 아침 만난 동무 석양천에 이별일세

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 보고 웃지 마라

이팔청춘 젊은 몸이 호호백발 늙어 가네

저녁을 먹고 썩 나서니 월편에서 손뼉을 치네

줄뼝 들뼝 내 따줄게 백년해로 날과하세

지여를 가네 지여 가네 점심 참이 지여 가네

차문주가하처재요 목동요지행화촌야

처녀 총각 놀던 방에 계자 수건 걸렸네

팔도라 돌아들어 간데 쪽쪽 내집일세

풍년일세 풍년일세 세세연연이 풍년일세

해 넘어 가네 해 넘어 가네 용수골에 해 넘어 가네

해 넘어 간다 해 넘어 가네 용산말기로 넘어를 간다

해 넘어 간다 해 넘어 간다 용수머리로 해 넘어 간다

해는 지고 저문 날에 어린 선비 울고 가네

해는 지고 저문 날에 어린 아이 울고 간다

해는 지고 저문 날에 옥창앵두가 붉어 간다

해는 지고 저문 날이오 동해에 해는 어데가요

[「꺾음오독떼기」]

간데 쪽쪽 정들여 놓고 이별 잦어 못살겠네

강릉이라 남대천에 빨래방치 둥실 떴네

방실방실 웃는 님을 못다 보고 해 넘어간다

여주 이천 돌배나무 배꽃이 피어서 만발했네

해는 지고 저문 날에 어린 선비 울고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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