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초당-인물과 문화유적-선사시대유적과 삼국시대매장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T05013
한자 草堂-人物-文化遺蹟-先史時代遺蹟-三國時代埋藏地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집필자 이상수

[선사시대유적과 삼국시대매장지]

하천과 바다, 호수, 산림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 초당마을 일대는 선사시대부터 정착생활을 영위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 되었던 곳이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까지 이 지역 일대에서 발견되는 선사 및 역사고고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

초당동 신석기시대 유적은 2000년에 경포호의 남쪽 사구지대인 이광로가옥[허난설헌 생가터] 주변 송림 일대에서 신석기시대 융기문 및 빗살무늬 토기편들과 어망추 등이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그 후 2003년 허균·허난설헌 자료관 건립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집자리 4기, 할석유구 5기, 야외노지 4기, 구(溝)유구 1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한 어망추, 석도, 굴지구, 장신구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중 요하·요서 지방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지(之)자문과 서해안식의 점열문, 단사선문 그리고 동북지방의 강상리식의 점열집선문과 홍도, 남해안식의 태선문, 사격자문, 제형집선문이 시문된 빗살무늬토기뿐 아니라 서포항 유적 제3기에서 출토된 점열문이 시문된 주판알 모양의 토제가락바퀴도 출토되었다. 이 유적의 중심 연대는 대략 B.C. 3천 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 형성 이전의 강릉 지역은 예국(濊國)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예국 시기와 관련된 유적들이 강릉 지역 일대에서 많이 조사되었는데, 초당마을에도 이와 관련된 유적들이 최근 발견되었다. 2003년 허균·허난설헌 자료관 건립부지와 2004년 강릉고등학교 교사신축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철기시대 철(凸)자형 주거지 3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중에는 중국 한(漢)나라의 화폐인 오수전(五銖錢)이 있는데, 1990년 안인리 유적에서 출토된 한식토기와 더불어 강릉지역과 서북한지역과의 교역관계를 시사해 주고 있다.

초당동 일대는 선사시대에는 대규모 취락지인 반면 삼국시대에는 최고 지역집단의 매장지였다. 이 지역의 고분은 1971년 공회당 건축 중에 수혈식석곽묘 1기가 발견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93년 현대아파트 신축부지 발굴조사에서 수혈식석곽묘 24기, 석곽옹관묘 4기 등 31기의 고분들이 발굴되었으며 1995년에도 2기가 추가로 조사되었다. 당시 조사된 A-1호분은 원형 봉토를 갖춘 세장방형 석곽묘로 내부에 판석으로 뚜껑돌을 덮은 석관시설을 한 매우 특이한 구조로서 고령 지산동 30호분과 매우 흡사하다. 출토된 중요 유물로는 환두대도, 금동관, 금동과대금구, 은제조익형관식, 금동제귀걸이 등이 있다. 최근에는 주택신축부지에서도 고분이 조사되면서 금동제호접형관모장식이 출토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강원도 교육공무원연수원 부근에는 원형통토분과 파괴되어 내부가 드러난 고분이 남아 있으며, 민가가 들어선 초당 일대에는 수백기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초당동 삼국시대 신라고분군은 강릉지역의 최고 지역집단의 매장지다. 고분의 규모나 구조(특히 큰 봉토를 가진 수혈식석곽묘), 각종 위세품을 비롯한 출토유물을 고려해 볼 때, A.D. 5~6세기경 삼국시대 신라의 중앙으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었던 사실을 잘 반영하며, 더불어 신라의 동해안 진출 상황과 변동을 반영하는 중요유적이라 할 수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