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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구비전승-민담과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T01010
한자 渭村里-口碑傳承-民譚傳說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집필자 김기설

[민담과 전설]

이렇게 유서 깊은 마을 위촌리에 여러 가지 민담과 전설이 없을 리가 없다. 민담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추리 호랑이”다.

옛날에 아전이 한 사람 있었는데, 글을 잘했다. 고을 원님이 그 사실을 알고 “저녁 때 글을 좀 짓다가 가라.”고 지시했다. 아전이 저녁에 남아 글을 짓다가, 한 부분을 완성하고 보니 글의 기상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밤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나섰는데 그만 호랑이에게 물려가고 말았다. 그가 지은 글의 내용이 개구리를 두고 “초로봉사 한불비(草路逢蛇 恨不飛)”라고 했으니 곧 풀길에 뱀을 만나니 날지 못하는 것이 한이라는 뜻이었다. 글의 내용대로 된 것이다.

우추리에는 김상적의 묘자리가 남아 있는데 그곳에도 이야기가 얽혀 있다. 예전 우추리 병아래 초상이 났는데 지관이 묏자리를 잡아준 후 삼우(三虞)날에 “상주가 좀 늦게 잘 테니 깨우지 말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지관의 말을 따라서, 상주가 피곤할 것이라 생각하고 삼우날에 상주를 깨우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상주가 계속 잠을 자니 삼우제를 지낼 수가 없었다. 손님들이 몰려오자 할 수 없이 상주를 깨웠는데 상주는 “날 좀 더 내버려두세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깨우던 사람이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으니 상주는 이렇게 대답했다. “새벽녘에 꿈을 꾸는데 어떤 노인이 구슬 한 바가지를 들고 와서 하나 둘씩 주는데 열아홉 개를 받고서 그만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 집안 후손들이 대소과 급제를 많이 해서 꿈대로 이뤄졌다. 만약 상주를 깨우지 말고 더 두었으면 경사가 더 많이 생겼을 것이라는 말이 전한다.

한편 우추리 위랫말에는 효자문이 서 있는데 이동규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아버지는 풍수지리를 볼 줄 알았는데 하루는 친구 집에 가서 묏자리를 잡아주었다. 그 집 하인의 묏자리가 있는 뒤가 좋은 자리라서 정해주었더니, 하인이 자기 아버지의 묏자리 뒤에 다시 묘를 썼다고 앙심을 품고 이동규 씨의 아버지를 청해서 독을 먹여 죽였다. 아버지가 죽으니 아들이 상복을 입고 17년이 지나도록 벗지 않은 채로 원수를 갚기 위해 찾아다녔다. 17년 만에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찾아 원수를 갚았는데, 당시 원님이 상황을 조사하다 보니 이동규는 총각일 때 상주가 되어 나이가 많도록 계속 상복을 입고 있었다. 원님이 중신을 서서 이동규를 장가 들이고 효자정문을 내리도록 청하였는데 그 정문이 아직도 우추리 길가에 있다.

묏자리에 관한 이야기는 또 있다. 우추리 진거리에 있는 묘는 위촌리에 오신 분(강릉최씨)의 7세손의 묏자리다. 최씨 네 묘는 다른 곳이었고 이 자리에는 원래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의 묘가 있었다. 이씨 집안에서 이 묘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한 후 이장하러 가는데, 한참 가는데 중간에 아이가 하나 나오더니 상여 앞에서 까불까불 하며 “내가 소리를 메길까요?”라고 말하며 소리를 했다. 소리 내용이 “백대천손지지를 놔두고, 백대멸망지지로 간다,”고 했다. 좋은 자리를 놔두고, 나쁜 자리로 간다는 뜻이었다. 지나가던 최씨 네 아들이 그 소리를 듣고 그 자리가 명당일 것 같은 생각에 그 길로 자신의 조상을 그 자리에 모셨다. 그 이후 자손들이 모두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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