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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5134
한자 決凝
이칭/별칭 혜일(慧日),원융((圓融)),원융 국사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964년 - 결응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976년 - 결응 출가
활동 시기/일시 991년 - 결응 승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016년 - 결응 부석사 무량수전 중창
활동 시기/일시 1041년 - 결응 정종의 왕사가 됨
활동 시기/일시 1047년 - 결응 국사로 봉해짐
몰년 시기/일시 1053년 - 결응 사망
출생지 강원도 강릉시
활동지 강원도 강릉시
활동지 경상북도 영주시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국사

[정의]

고려 초기 명주[지금의 강릉] 출신의 고승.

[개설]

자는 혜일(慧日), 법명은 결응(決凝). 성은 김씨, 증조할아버지는 명주 호족 김영길(金英吉)이고 할아버지는 김선희(金善熙)로 장보(章保)·기연(器璉)·굉홍(宏洪)의 관직을 지냈다. 아버지는 김광률(金光律)로 금곡경(金穀卿)을 지냈다. 어머니는 강릉 군부인(江陵郡夫人) 방씨(方氏)로 내의령(內議令) 강명(康明)의 딸이다.

[활동 사항]

결응[964~1053]은 976년(문종 7) 용흥사(龍興寺)에서 출가하여 복흥사(福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대장경을 열람하면서 선종에 입문하였다. 991년(성종 10) 28살의 나이에 선불장(選佛場) 승시(僧試)에 합격하여 대덕(大德)의 법계를 받았으며, 구산사(龜山寺)에 있을 때 미륵보살이 현몽하여 “내 품속에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해요 하나는 달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크게 깨닫고 자(字)를 혜일이라 하였다.

1016년(현종 7)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현종 초에 수좌(首座)가 되었고, 정종 초에 승통(僧統)이 되었으며 1041년 봉은사(奉恩寺)에서 정종의 왕사(王師)가 되었다. 1043년 문덕전(文德殿)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하였으며 1042년에 부석사에 다시 와 머물렀다. 이때 의상의 덕을 사모하여 대장경을 인출하고 부석사와 안국사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1047년(문종 1)에 봉은사에서 국사(國師)로 봉해졌으며, 말년에 상재(桑梓)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고향에 절을 창건하였는데, 「부석사 원융 국사비문」에 전하는 절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옥돌로 얽은 것과 같은 푸른 삼림으로 둘러싸인 법당 벽에는 불·보살을 그렸으며, 만월(滿月)과 같은 거룩하신 불상이 연꽃으로 조각된 좌대 위에 엄연하게 앉아 있었다.”

문종은 ‘화암안국사(華嚴安國寺)’라는 사액을 내려주었다. 이 화암안국사는 현재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안곡동(安谷洞) 전 774번지 소재 안국사 터로 확인되었다. 결응은 부석사에서 향년 90세, 승랍 78세로 1053년에 입적하였다. 결응의 제자로는 관증(觀證)·해수(海秀)·해원(海元)·연윤(聯胤) 등 1,438명에 달하였다.

[상훈과 추모]

문종으로부터 원융(圓融)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부석사 원융 국사비는 현재 부석사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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