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효자권학필지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4118
한자 孝子權學弼之碑
영어음역 Hyoja Gwon Hakpil Jibi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Gwon Hakpil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각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소유자 안동권씨 종중

[정의]

권학필(權學弼)[1894~196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각.

[개설]

권학필안동권씨이다.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맏형수의 손에서 자랐다. 그는 4형제의 막내로 성장하면서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리 돈독하였다. 11세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애통해 함이 남달랐으며, 형들의 가르침에 따라 상례를 치렀다. 이후 가세가 빈약하여 맏형을 따라 왕산면으로 이주했으며 조경모독(朝耕暮讀)하였다. 가세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맏형을 따라 금광리로 다시 이주하였다. 그러나 형과 형수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자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였다. 상례를 치른 후에도 50여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삭망(朔望) 성묘를 다녔다.

성장하여서는 거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어머니 기일에 즈음하여 3년간 시묘살이를 시작하였다. 시묘살이 처음에는 식수가 불결하였으나 마침 돌 사이로 작은 샘이 솟아났다. 늦은 봄날 산불이 발생하여 묘 인근까지 타오자 엎드려 울었더니 불도 꺼지고 묘소도 온존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또 저녁 무렵 곡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났다가 곡이 끝나면 물러갔다고 한다. 어느 겨울날 폭설이 내려 마을 사람들이 여막이 무너질 것을 염려하여 올라갔더니 여막과 사람이 온전하여 모두 감탄하였다. 3년 시묘가 끝난 후에도 이틀을 더 머물렀는데 밤에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있어 다음날 아침 묘소를 살펴보니 여막의 한구석이 무너져 있었다. 이에 어머니가 자신을 돌려보내려고 하신 뜻임을 알고 시묘살이를 마쳤다.

[형태]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다. 정면은 홍살문이고, 3면은 벽으로 둘러져 있다. 효자각 주위는 방형의 담이 둘려져 있는데 정면에는 시멘트로 난간을 만들었다.

[금석문]

효자각 정면에는 ‘효자각’이라 쓴 현액이 있고, 효자각 안에 효자비가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