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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898
한자 咸傅霖
영어음역 Ham Burim
이칭/별칭 윤물(潤物),난계(蘭溪),정평(定平)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함승경(咸承慶)
아우 함부열(咸傅說)
출신지 강릉
성별
생년 1360년(공민왕 9)연표보기
몰년 1410년(태종 10)연표보기
본관 강릉
상훈 개국공신 3등
대표관직 형조판서

[정의]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 자(字)는 윤물(潤物). 호는 난계(蘭溪). 시호는 정평(定平). 검교중추원학사(檢校中樞院學士) 함승경(咸承慶)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385년(우왕 11) 2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좌정언(左正言)을 지냈다. 1389년(공양왕 즉위년) 우헌납(右獻納)이 되었으나 탄핵을 받고 지춘주사(知春州事)에 좌천되었다가 뒤에 형조정랑이 되었다.

이 때 중방(重房)의 무신들이 문신을 멸시하자 이에 항거하다가 파직되었는데, 1392년에 병조정랑 겸 도평의사사 경력사도사(都評議使司經歷司都事)로 복직하였다. 이 해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예조의랑(禮曹議郞)을 거쳐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상서소윤(尙瑞少尹)을 겸임했고 명성군(溟城君)에 봉해졌다.

1403년(태종 3)에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가 되어 동원군(東原君)으로 개봉(改封)되었고,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 1408년 형조판서에 오르고 병으로 사직했다가, 곧 경기·충청·경상·전라·황해 등 각 도의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 동북면도순문찰리사(東北面都巡問察理使)를 역임했다.

[상훈과 추모]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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