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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540
한자 崔壽峸
영어음역 Choe Suseong
이칭/별칭 가진(可鎭),원정(猿亭),북해거사(北海居士),경호산인(鏡湖散人)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비
아버지 최세효(崔世孝)
어머니 최철관(崔哲寬)의 딸
출신지 강릉
성별
생년 1487년(성종 18)연표보기
몰년 1521년(중종 16)연표보기
본관 강릉
추증 영의정
제향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2920-16[교동 238-3번지] 향현사(鄕賢祠)지도보기|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동 병산서원(屛山書院)

[정의]

조선 중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강릉. 자는 가진(可鎭), 호는 원정(猿亭)·북해거사(北海居士)·경호산인(鏡湖散人).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이다.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증조는 최치운(崔致雲), 조부는 최응현(崔應賢), 아버지는 생원 최세효(崔世孝)이고, 어머니는 철원최씨 승지 최철관(崔哲寬)의 딸이다.

[활동사항]

조광조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에게서 수학(受學)하였다. 조광조최수성을 현량과(賢良科)에 천거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519년 조광조 일파에 대한 훈구파의 견제로 기묘사화가 일어났는데, 최수성은 이미 기묘사화로 사림에게 화가 미칠 것을 예상하였다고 한다.

기묘사화로 세도를 잡은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 훈구세력에 대해 안처겸(安處謙)·안처근 부자 등이 역모를 시도하였는데, 이 사실이 훈구세력들에게 알려지면서 다수의 사림파들이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신사무옥(辛巳誣獄)’이 일어났다. 평소 남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최수성 역시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심문을 받았다.

학문 뿐 아니라 시서화에도 뛰어났다. 10세에 이미 문장이 대성하여 시를 지으면 음률이 이백(李白)·두보(杜甫)에 못지않았고, 글을 지으면 문체가 유종원(柳宗元)·한유(韓愈)에 못지않았다고 한다. 필법에 있어서는 왕희지의 글씨에 견줄 만 했고, 화법에 있어서도 고개지(顧愷之)의 묘수에 못지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시문(詩文)·서화(書畵)·음률·수학 등에 모두 능하였기에 세상 사람들이 그를 ‘사절(四絶)’이라 불렀다. 기묘사림 가운데 한 사람인 김정(金淨)은 일찍이 최수성의 시를 사랑하여 영원히 이름을 남길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학문적, 정치적으로도 최수성과 대립하였던 남곤최수성의 그림의 품격을 흠모하여 “천금의 보물은 얻을 수 있지만, 8첩의 그림은 얻기 어렵다.”고 하였다.

특히 기묘사화가 발발하여 동지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난 이후에는 술과 시·서화, 음악 등을 일삼으며 명산을 유람하였다. 가는 곳마다 소나무로 거문고를 만들어 타다가 끝나면 버리고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살지 않았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540년(중종 35)에 최수성은 신원(伸寃)되어 문정공(文正公)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1545년(인종 1)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강릉 향현사에 배향되었다. 또 1737년(영조 13)에는 최수성이 살았던 충청도 보은 병산서원에 기묘명현인 병암(屛菴) 구수복(具壽福)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와 함께 향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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