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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252
한자 辛慶晉
영어음역 Sin Gyeongji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94년연표보기
성격 문신
아버지 신응시(辛應時)
어머니 정기(丁琦)의 딸
성별
생년 1554년(명종 9)연표보기
몰년 1619년(광해군 11)연표보기
본관 영월(寧越)
대표관직 대사헌|강릉부사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영월. 자는 용석(用錫), 아호는 명호(冥湖). 신윤형(辛尹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신보상(辛輔商)이고, 아버지는 부제학 신응시(辛應時)로,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어머니는 정기(丁琦)의 딸이다.

[생애]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84년 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예문관 등에서 관직 생활을 한 뒤 1591년 병조 좌랑으로 진주사(陳奏使) 한응인(韓應寅)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임진왜란 때에는 지평으로 왕을 호송하였으며, 평양에서는 체찰사(體察使)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왜란이 끝난 뒤에는 강릉부사·사간·이조참의·성주목사·충주목사를 거쳐 1609년(광해군 1)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1612년 이이첨(李爾瞻)에 의해 사돈인 황혁(黃赫)이 화를 입게 되었는데 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문(文)·무재(武才)를 겸비하였다.

[활동사항]

159년(선조 27) 강릉 부사로 부임하여 강릉 향교(鄕校) 동·서무(東·西廡)와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하였고, 그 앞에 연못을 만들고 하마비(下馬碑)를 세웠다. 그리고 선정을 베풀어 통정대부로 승진되어 돌아갔다.

[저술]

신응시·신경진 부자의 시문집인 『백록유고(白麓遺稿)』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청백리(淸白吏)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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