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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085
한자 惺所覆瓿藁
영어의미역 Selected Poems by Seongso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한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문집
관련인물 허균
저자 허균
편자 이사성
저술연도/일시 1611년연표보기
권수 8권
책수 1책
판종 필사본
소장처 규장각
소장처 주소 서울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 56-1]

[정의]

성소 허균(許筠)의 시문집.

[개설]

허균의 호인 성소가 지은 부부고라는 뜻으로 ‘부부’는 장독 뚜껑을 덮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책을 겸손하게 표현한 말이다.

[서지적 상황]

국립도서관본, 규장각본, 홍문관본, 연세대학본, 고 박종화본 등 필사본이 있다.

[편찬/발간경위]

허균[1569~1618]의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혹은 성소(惺所)라 했다.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세 번째 아들이다. 악록(岳麓) 허성(許筬), 하곡(荷谷) 허봉(許篈),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등과 더불어 허씨 5문장가로 이름 높았다. 선조27년(1594년)에 등과하였고, 광해군 10년(1618년) 50살의 나이에 모반의 혐의로 처형되었다.

사실 역적이라 하여 처형을 당했기 때문에 허균의 문집이 세상에 전해지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천우신조라 할까 허균은 자신이 처형되기 직전에 사위 이사성(李士星)의 집에 자신의 문집을 미리 보냈는데 이로 인하여 그의 문집은 오늘날에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이 문집 서문엔 중국인 이정기(李廷機)의 서문이 실려 있다. 그 연유는 이러하다. 전에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주지번(朱之蕃)이 교산의 전집을 보여 달라고 청한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광해군 5년(1613년)에 문집 1부를 주지번에게 보내면서 “해내 대방가의 일언으로써 책머리를 장식하고 싶다”고 부탁을 하였다. 그래서 당시 중국의 명사였던 이정기가 서문을 짓게 되었다.

[구성]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부부고 사부(覆瓿藁 四部)』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정기가 서문에 그렇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4부란 이 책의 구성이 시부(詩部), 부부(賦部), 문부(文部), 설부(說部) 등 4부로 구성되어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부부고 사부』는 모두 26편이며, 『한정록』은 부록으로 붙여 있다.

[형태서지상의특징]

그의 문집은 역적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간행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외손의 집에 비장된 채 수백 년 세월을 흘러 내려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그마저도 온전히 보전하기가 힘들어 「병려문(騈儷文)」, 「갑진명주고(甲辰溟州藁)」, 「서관행록(西關行錄)」, 「계축남유초(癸丑南遊草)」, 「을병조천록(乙丙朝天錄)」 등은 현재 이름만 전하고 내용은 산실되어 버렸다.

[내용]

시부는 총 2권이다. 시가 지어진 경로에 따라 편목을 묶어 연대순으로 편찬했다. 교산이 처음 중국에 사신 행차를 가면서 지은 것으로 「정유조천록(丁酉朝天錄)」, 「막부잡록(幕府雜錄)」, 「무술서행록(戊戌西行錄)」, 「좌막록(佐幕錄)」, 「남궁고(南宮藁)」, 「남정일록(南征日錄)」, 「임인서행록(壬寅西行錄)」, 「기성고(騎省藁)」, 「태복고(太僕藁)」, 「풍악기행(楓岳紀行)」, 「명주잡저(溟州雜著)」, 「요산록(遼山錄)」 등이 제1권에 실려 있고, 제2권에는 「광록고(光祿藁)」, 「진주고(眞珠藁)」, 「태관고(太官藁)」, 「추관록(秋官錄)」, 「병한잡술(病閑雜述)」, 「궁사(宮詞)」, 「화사영시(和思潁詩)」, 「속몽시(續夢詩)」, 「화백시(和白詩)」 등이 실려 있고 그 말미에 부록으로 「교산억기시(蛟山臆記詩)」가 있다. 「명주잡저(溟州雜著)」에 보면 당시에 명주에 큰 풍년이 들어 4개 월 여를 머무는 동안 잔치에 초대받아 다니느라 심신이 지쳤는데, 겨우 46편을 얻는데 그치고 말았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내용은 찾을 길 없다.

부부는 제3권이다. 9편의 부(賦)와 2편의 사(辭)가 실려 있다.

문부는 제4권부터 제21권까지 총18권이다. 제4권과 제5권은 21편의 서(序)를 모았다. 제6권과 제7권은 24편의 기(記)를 모았다. 「애일당기(愛日堂記)」에 보면 교산이란 호의 유래가 지명에서 유래했음을 보여준다. 애일당은 예전에 외조부가 지어 거처하던 곳이었는데, 임진년 가을에 어머니를 모시고 왜적을 피해 북으로부터 배를 타고 교산에 닿아 애일당을 청소한 뒤 그곳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교산은 애일당이 있는 곳, 즉 강릉시 사천면 근처의 지명으로 판단된다. 교산이 나오는 「지사촌(至沙村)」이란 시도 제1권에 실려 있다. 같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行至沙村忽解顔(행지사촌홀해안) 사촌에 당도하자 홀연 안색이 풀려

蛟山如待主人還(교산여대주인환) 기다렸다는 듯이 교산은 주인을 맞네

紅亭獨上天連海(홍정독상천연해) 홍정에 홀로 올라 하늘과 닿은 바다를 보니

我在蓬萊縹緲間(아재봉래표묘간) 내 있는 봉래산이 표묘하구나

제8권에는 허균의 한문전(傳) 5편이 실려 있다. 「엄처사전」, 「손곡산인전」, 「장산인전」, 「남궁선생전」, 「장생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제9권과 제10권에는 22편의 서(書)가 실려 있다. 제11권에는 「호민론(豪民論)」을 비롯한 12편의 논이 있다. 제12권은 3편의 설, 2편의 변, 1편의 해 그리고 4편의 잡문이 실려 있다. 제13권은 17편의 제발(題跋)과 16편의 독으로 묶었다. ‘제발’이란 발문으로 쓴 것이며, ‘독’은 오늘날의 독후감과 같은 개념이다.

제14권에는 잠(箴) 3편, 명(銘) 4편, 송(頌) 2편, 찬(贊) 6편이 실려 있다. 이중 「성옹송(惺翁頌)」은 스스로를 기리는 노래다. 이 노래에서 허균은 어리석기 짝이 없고 무식하지만 아니 무식하다 못해 고루하고 미련스럽지만, 온 세상이 다 가는 길을 성옹만은 따르지 않고 또 남들이 고생으로 여기는 것을 성옹만은 달갑게 여긴다고 하면서 스스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기에 이에 송(訟)을 짓는다고 하였다.

제15권에는 뢰 2편, 애사 1편, 제문 10편, 행장 1편이 실려 있다. 제16권에는 비 3편, 신도비 1편, 갈 2편이 실려 있다. 제17권에는 묘표 2편, 묘지 9편이 실려 있다. 제18권과 제19권에는 기행과 잡기 1편이 실려 있다. 제20권과 제21권에는 척독, 즉 편지글이 실려 있다.

설부는 제22부부터 제26부까지다. 제22권, 제23권, 제24권은 『성옹지소록』이 상·중·하로 나누어 실려 있다. 광해군 2년(1610년) 전라도 함열로 유배되었을 때 쓴 것이다. 제25권 역시 함열로 유배 갔었을 때 지은 것으로 『성수시화』라 하고, 이 책에서 우리나라 800년 간의 시 96수에 대해 평설을 했다. 제26권 역시 함열로 유배 갔었을 때 지은 것으로 『도문대작』이라 하고, 이 책에서 팔도의 진미와 온갖 특산품을 소개, 품평하고 있다.

부록으로 엮은 『한정록』에는 고금의 책들을 모아 ‘은둔, 고일, 한적, 퇴휴, 유흥, 아치, 숭검, 임탄, 광회, 유사, 명훈, 정업, 현상, 청공, 섭생, 치농(隱遁, 高逸, 閑寂, 退休, 遊興, 雅致, 崇儉, 任誕, 曠懷, 幽事, 明訓, 靜業, 玄賞, 淸供, 攝生, 治農)’ 등 16종으로 구분하여 엮었다. 치농을 통하여, 농업에 대한 허균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허균은 이 부분을 엮기 위해 북경으로 사행을 갔을 때 가재를 털어 서적 4천여 권을 구입했다고 하니 이런 점에서 허균의 실용정신을 엿볼 수 있겠다. 이런 정신이 「호민론」과 「홍길동전」까지 이어진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2.16 2011 한자 최종 검토 성소 허균(許均)의 시문집, 허봉(許葑), 「병려문(騈儢文)」 ->성소 허균(許筠)의 시문집.허봉(許篈), 「병려문(騈儷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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