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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랑 기념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047
한자 薛原郞記念碑
영어음역 Seorwollang Ginyeombi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Seorwoll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박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념비
양식 미상
건립시기/연도 신라 진흥왕
관련인물 설원랑(薛原郞)

[정의]

강원도 강릉시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화랑 설원랑(薛原郞)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개설]

화랑도는 수련 중에 “산천을 찾아 노닐었는데, 먼 곳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遊娛山水 無遠不至)”고 하였다. 산천은 젊은 화랑 무리의 수련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이들은 수련 기간 동안 경주 부근의 남산을 비롯하여 금강산, 지리산 혹은 최근에 알려진 울산군 두동면 천전리 계곡과 같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면서 도의를 연마하였다. 이들이 산수를 노닐 때 가장 많이 찾은 곳은 강원도 동해안 지방이었다.

[건립경위]

혹자는 설원랑(薛原郞)을 후대의 사람들이 만든 가공인물이라 하여 그 실재를 부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악지(樂志)」에 실려 있는 가곡 중 「사내기물악(思內奇物樂)」은 원랑도(原郞徒)가 지은 것이라 한다. 여기서 원랑은 설원랑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영동지방이 화랑도의 발생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설원랑진흥왕 대에 활동하였는데, 당시 신라의 판도는 경주에서 비열홀주[안변]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에 “진흥왕 17년(556)에 “비열홀주를 설치하고, 사찬(沙湌) 성종(成宗)을 그 군주(軍主)로 삼았다.”라는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설원랑이 화랑으로 활약하던 시기에 경주에서 안변까지의 동해안 명승지는 화랑도의 수련장으로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강릉에 첫 화랑기념비가 세워진 것도 화랑도의 순례 코스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위치]

『삼국유사(三國遺事)』 「미륵선화 미시랑 진자사조(彌勒仙花未尸郞眞慈師條)」에는 진흥왕 때 원화제도(源化制度)를 폐지하고 화랑도를 재정하면서 설원랑을 최초의 화랑으로 받들고, 그 비석을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강릉 지역에 첫 화랑의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은 화랑도의 발생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화랑도의 수련방법과 관련해서도 강릉 지역이 화랑도의 순례지로서 널리 알려졌고, 중요한 순례코스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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