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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동리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688
한자 方洞里遺蹟
영어음역 Bangdong-ri Yujeok
영어의미역 Archeological Site in Bangdong-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과학산업단지 조성부지내지도보기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지현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주거지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산 90임 외 16필지

[정의]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위치]

방동리 유적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산 90임 외 16필지에 해당하며, 강릉 과학일반지방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하여 형질이 변경되는 지역으로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7°48′, 동경 128°51′에 위치하고 있다. 동 지역은 강릉에서 주문진 방향으로 7번국도를 따라 약 3~4㎞ 정도를 가다보면, 우측으로 강릉 현대 아산병원으로 들어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곡간평야인 방골이 펼쳐져 있는데, 유적은 이 곡간평야의 주변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발굴조사 경위]

강릉시에서는 지난 1991년 동해안 지역의 성장 거점도시 육성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의한 자립경제 구축과 수도권 집중 억제를 위한 지방 분산정책, 전통적인 문화도시로서의 문화, 교육 잠재력과 과학기술을 접목하여 경제발전의 상승효과와 지역균형개발을 도모하기 위하여 강릉과학일반지방산업단지 조성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에 앞서 1995년에 사업지구 내에 분포하고 있는 문화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대규모의 청동기시대 유적이 확인되었다. 2003년~2004년 사이에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시굴 및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결과]

방동리 유적의 발굴조사에서는 총 3개 지구(A, B, C)에서 주거지 47기, 원형 구덩유구 26기, 고분 2기와 토기가마 3기, 그리고 강원 지역에서 최초로 환호 2기가 조사되어 총 80여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또한 유구 내부에서 덧띠토기를 비롯한 민무늬토기와 홈자귀, 반달 돌칼 등 각종 석기류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특히 C지구에서 확인된 27기의 주거지들은 중복관계(6~8호, 15~17호)로 볼 때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이는 환호를 기준으로 환호 설치 이전의 기시, 환호취락 단계, 환호 폐기 이후의 단계 등으로도 시기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출토유물상으로는 변화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환호를 둘러싼 방동리 C지구의 취락 유적의 존속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방동리 유적 발굴조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C지구에서 강원 지역 최초로 환호 2기와 토기가마 3기가 조사되었다는 점이다. 환호는 등고선 방향을 따라 동-서로 호상을 이루면서 조성되었다. 2기의 환호 중 1기 내부에서 화강암제 할석들이 전면에 깔려 있는 구조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내부에서는 덧띠토기를 비롯한 민무늬토기들과 반달돌칼편, 홈자귀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가마는 C지구의 북쪽에서 남-북 방향으로 3기가 조사되었으며, 원형에 가까운 평면형태로 축조되었다. 토기의 소성방법은 소성 과정에서 바닥면과 토기가 부착되지 않도록 민무늬토기편을 깔고 그 위에 토기를 올려놓은 구조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토기가마의 형태는 실요로 판단되며, 노천요→실요→등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초기가마 형태로 토기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어진다.

[형태]

47기의 주거지 중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청동기시대 주거지 41기, 삼국시대 주거지 6기로 구분된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이고, 장축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도록 축조하였다. 주거지의 규모는 4m 내외의 소형 주거지에서부터 15.8m의 주거지 크기가 다양하다.

[출토유물]

출토된 유물은 주로 청동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덧띠토기와 민무늬토기호, 주머니호, 검은간토기[흑도장경호]등이 출토되고 있으며, 석기로는 홈자귀, 반달돌칼, 석부, 석창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방동리 유적은 강원 영동지방에서 최초로 확인된 덧띠토기 유적으로 그 동안 청동기시대 전기 및 중기에 해당하는 유적은 상대적으로 많이 조사되었지만 청동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대규모의 유적이 확인된 것은 강원 영동지방에서 처음이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의 문화발전 및 후기 문화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으며, 특히 주거지를 둘러싼 환호와 토기가마가 조사되어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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