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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454
한자 溟州
영어의미역 Myeongju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강원도 강릉시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정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잡지|계간지
창간인 송치훈
발행인 송치훈
판형 국판
창간연도/일시 1957년연표보기
발행처 명주사
발행처 주소 강릉시 성남동 55
소장처 장정룡
소장처 주소 강원도 강릉시 죽헌길 7[지변동 123] 강릉원주대학교 국문과

[정의]

1957년 강릉에서 창간되었던 계간 문화계몽지.

[개설]

종합문화지로서 향토논단과 문학지의 성격을 공유한 잡지로, 시사적인 내용과 역사자료도 소개하고 있다. 명주(강릉)에서 송치훈(宋治勳)에 의해 주도되고, 1960년과 1967년에 명주군수에 당선된 김남형이 발간에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글을 쓴 작가는 대학 재학생과 전문가들이 망라되어 있다.

작고한 황금찬·박기원 등은 전문작가이고,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퇴임한 후 활동하고 있는 이성교 시인은 「먼 날에 부를 노래」를 썼다. 「우둔」을 쓴 조광해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재학, 시 「한낮」을 쓴 김혜숙은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으로 되어 있다. 격려사를 쓴 박용익(朴容益)[1905~1977]은 자유당 원내총무를 역임한 정치인이다.

[창간경위]

송치훈의 권두언과 박용익의 격려사를 종합하면 당시 유일한 문화계몽지로 향토의 고유한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창간하였다.『명주』의 창간은 7호를 1958년 가을에 낸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한 해 네 차례 낸 계간인 것으로 미루어 1957년으로 볼 수 있다.

[내용]

제6호는 1958년에 126쪽 활판인쇄로 윤명이 관여한 청구출판사에서 발간되었는데, 권두언은 송치훈, 격려사는 박용익·원장길의 글이 실렸다. 논단에는 윤승룡·김옥준·김원래·박주원·동계·윤병로·변선모·황오성·황병연·이덕희 등의 글이 실렸다. 좌담은 조평재·안나영·김원래·홍순길·박기원·최성실·최상길이 참여하였다.

강릉문화 관련 내용은 김흥남의 「율곡선생의 유적에 대하여」, 경호의 「범일국사」, 이준호의 「율곡과 고향」, 김규환의 「모산봉」, 정병조의 「강릉고성유력」 등이 들어 있다. 시에는 박기원·황금찬·이우종·이성교·김남형·이제하·이림주·김혜숙·청람·권오환 등의 작품이 실렸고, 수필은 최돈영·조현옥·심상렬·황동화·권혁춘·김용식·송치훈·조광해·주병덕·하재호·채국병 등의 글이 실리고, 창작은 김장수의 「먼 후일을 위한 적선」이 들어 있고 향토소식과 편집후기로 구성되어 있다.

[변천]

1950년대 강릉의 지식인들이 모여서 프린트본으로 책자를 발간하였으며, 지역문화의 발전과 지방정치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자는 5호까지 프린트본으로 나오고 6호부터 인쇄본으로 나왔으며, 언제 종간되었는 지는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최초의 문화계몽지의 성격을 지녀 많은 인재를 발굴하여 소개하고, 강릉 지역의 향토자료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 문화지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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