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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010
한자 金縝
영어음역 Kim Ji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김광(金光)
출신지 강릉
성별
생년 1071년(문종 25)연표보기
몰년 1126년(인종 4)연표보기
본관 강릉
대표관직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정의]

고려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생원(生員) 김효안(金孝安)의 손자이며 참봉(參奉) 김광(金光)의 아들이다.

[생애]

1071년(문종 25) 명주에서 태어났으며 1126년 이자겸(李資謙)척준경(拓俊京)의 반란 때 궁궐에서 불에 타 죽었다.

[활동사항]

과거에 급제한 후에 영광군(靈光郡)의 군수(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당시 안무사(按撫使) 최위(崔渭)는 자신만이 충직하고 청렴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 대해 인색한 평가를 내리곤 하였는데, 그러한 그마저 김진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하였다.

그 후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충주목부사(忠州牧副使)를 지냈는데 이곳에서도 영광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사를 잘 돌보았다. 내직으로 들어와 비서소감(秘書少監)에 임명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을 지냈다. 이듬해에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어 두 차례에 걸쳐 요(遼)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119년(예종 14)에는 호부시랑(戶部侍郞)과 동북면병마부사(東北面兵馬副使)를 지냈다.

인종(仁宗) 초에는 국자감 대사성(國子監 大司成)·어사대부 좌산기상시(御史大夫 左山騎常侍)를 역임하였다. 1125년(인종 3)에는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를 지냈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척준경이 난을 일으켰을 때 궁궐에서 수직하고 있던 김진은 궁궐이 불타고 있는 것을 보고 탄식하면서, “내 평생 정직하게 살고자 하여 권세가들의 압력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이자겸이나 척준경과의 사이가 좋지 않으니 성문 밖에 나가면 반드시 살해당할 것이다. 그러니 적에게 죽는 것보다 자결하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고 시종을 시켜 문을 잠그고 불에 타 죽으니 향년 56세였다.

[상훈과 추모]

이자겸의 난이 평정된 후 그의 절개를 기려 열직(烈直)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아들과 사위의 직급을 각각 올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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