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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생 효자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957
한자 金演生孝子碑
영어음역 Kim Yeonsaeng Hyojabi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Kim Yeonsaeng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비
건립시기/연도 1924년연표보기
관련인물 김연생(金演生)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일명 본동(本洞)]

[정의]

김연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개설]

김연생(金演生)[1859~1921]은 강릉김씨 김병도(金秉鍍)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성심껏 공경하였으며,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 맛있는 나물이나 고기가 생기면 자기의 입에 대는 일이 없이 아버지에게 드렸으며, 혹간 밖에서 별미의 음식을 보게 되면 그것을 나무 잎사귀에 싸서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서는 대변을 핥아 낼 만큼 지성으로 간호하였으며, 부인이 자신을 대신하여 죽었다 하여 재가를 아니 하고 홀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그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1891년(고종 28)에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에 추증되었으며, 부친상을 당하여서는 애통하여 기절하였고 상중에는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드리면서 슬피 울었다. 이러한 효행이 알려져 1910년 향리에서 공의로 관에 알려 포상을 받았다.

김연생의 부인은 당성홍씨이다. 1877년 시어머니가 병환으로 눕자 사우(祠宇)에 기도하고 하늘에 빌면서 쾌유를 빌었으며, 상을 당해서는 무척 애통해 했다. 1877년 남편이 오랜 병환으로 위독해지자 부인은 남편을 대신하겠으니 낫게 하여 달라고 지성으로 하늘에 빌었으며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일러준 시약(試藥)으로 처방하여 남편의 병을 고쳤다.

[건립경위]

1924년 사림의 천거로 향교에서 효행 포상 완문이 내려졌으며, 후손 김자로(金子魯) 등이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위치]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 1리에 있다.

[형태]

효자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단층 와가 맞배지붕이다. 정면은 홍살문이고 나머지 삼면은 벽이 둘러져 있다.

[금석문]

효자각 정면 위에 효열각(孝烈閣)이라 쓴 현액이 있고, 각 안에는 화강석 재질의 비좌와 옥개석 모양의 비두, 그리고 오석 비신이 세워져 있다. 비석 전면에는 ‘孝子通訓大夫司憲府掌令金演生’(효자통훈대부사헌부장령김연생)’ ‘烈婦淑人塘城洪氏之閭’(열부숙인당성홍씨지려)가 각인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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