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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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대천 옆 연화봉의 반석 위에 있는 월화정의 김무월랑과 연화부인에 관련된 전설. 월화정은 신라 명주군왕의 부모인 김무월랑(金無月朗)의 ‘월(月)’자와 박연화부인(朴蓮花夫人)의 ‘화(花)’자를 따서 명명한 정자이다. 이 정자는 1933년 강원도지사 이범익으로부터 하천부지 점용허가를 받아 공사비 3,730원을 모금하고 강릉 임영관 건물 일부를 옮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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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의 능향(陵享)을 봉전(奉奠)하는 능향전의 창건기문. 강릉김씨대종회 회장이며 국회의원인 김문기가 능향전 창건을 기념하여 그 의미와 경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담아 지었다. 능향전의 개념, 김주원의 분봉과 그 후손의 동향, 능향의 문제점과 능향전의 필요성, 능향전 창건의 의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주군왕인 김주원이 강릉에 온 지 1205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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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이 지은 별연사의 고적에 대한 기록. 「별연사 고적기」는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7에 수록되어 있다. 강릉에 있는 별연사에 전승되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여기에는 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의 어머니인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의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허균이 기록한 이 글은 서술 전개상 다섯 개의 문단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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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양어지 전설」을 바탕으로 한 황순원(黃順元)의 소설. 경주의 서생과 강릉의 처녀가 양어지에서 사랑을 나누다 헤어졌으나 잉어가 편지를 전달해주어 결혼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에서는 강릉 경포마을에 사는 은영이가 꿈속에 잉어가 되어 나에게 잡혔다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은 결혼 날짜를 잡은 은영이가 새 생활로 접어들기 전에 잉어처럼 헌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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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평왕 때 강릉 남대천 남쪽 연화봉 밑 서출지라는 연못에 대한 전설. 강릉 연화봉 밑에 살았던 연화 아가씨와 무월랑이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무월랑이 경주로 되돌아가서 헤어졌을 때, 잉어가 대신 편지를 전해주었다고 하여 서출지라 한다. 서출지는 경주에도 있었으나, 강릉에서는 「명주가」의 배경지인 양어지(養魚池)를 다른 말로 서출지라 하였다. 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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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을 중심으로 후손들의 명단과 행적을 기록한 문집. 강릉김씨 본관의 근원과 보배로운 책자라는 뜻으로 『명원보감(溟源寶鑑)』이라 하였다. 동성으로 관향이 다른 동성이관(同姓異貫)은 경주김씨를 위시하여 84개 성씨이고, 동원이성(同源異姓)은 강릉왕씨 등 5개 성씨이다. 강릉을 관향으로 하고 있는 강릉김씨 문중에서 시조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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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재실 관련 사항과 김시습(金時習)의 저술 등을 묶어서 편찬한 문중의 자료집. 강릉김씨는 신라 명주군왕 이래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씨족으로 시조인 김주원(金周元)과 관련된 재실 상량문을 비롯하여 중수기, 신도비문과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 등 관련내용을 모아서 강릉김씨대종회에서 편찬한 문집이다. 『명원산고』의 서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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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江陵金氏) 왕족과 분파의 사료와 시조 김주원(金周元) 관련 사적을 정리한 책. 김연희(金演禧)의 서문에 의하면 1천여 년의 역사 사료를 모아 선조들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 책은 김봉기(金鳳起)가 편찬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어 상권에는 왕족도, 분파도와 역사, 본기 등을 싣고 하권에는 구체적인 명주군왕(溟州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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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다양한 자원들을 토대로 하여 구축된 테마별 문화관광 콘텐츠 및 프로그램의 향유 루트이다. 강릉 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관광지라 할 수 있다. 강릉 지방의 테마 문화 관광은 수려한 자연경관, 유구한 역사와 문화재, 선조들의 숨결과 삶의 지혜와 멋과 맛, 그리고 뛰어난 강릉의 예술성 등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강릉이 지닌 수려한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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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김주원이 787년에 당시 북빈경(北濱京)이었던 강릉으로 옮겨 명주 지역 9군(郡) 25현(縣)을 관장하는 명주군왕에 책봉된 이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세습하면서 형성되었다. 김주원은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이며,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6세손이다. 785년 선덕왕이 죽고 후사가 없자 신하들은 무열왕계의 직계인 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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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88-11번지에 위치한 강릉김씨 종친들의 모임.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유덕(遺德)을 흠모하고 종친의 친목을 도모한다. 1565년(명종 20)에 숙간공 김첨경(金添慶)[1525~1583]이 명주군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 능소 앞에 재실을 지어 종중회의 장소로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재실 전체가 소실되자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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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 박혁거세(朴爀居世)의 후손인 박순(朴純)이 1200년대에 강릉에 정착한 이후 누대에 걸쳐 세거한 박씨. 박씨는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40여 개의 본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중 박혁거세의 4세손 파사왕의 후손인 박순이 1200년대 강릉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대대를 이어 강릉 지역에 살면서 대성(大姓)을 이루었으며, 『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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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읍성은 근대 이전 고려와 조선시대에 강릉 지역의 치소(治所)가 위치했던 행정중심지에 조성되었던 성곽을 말하며, 관아 유적은 강릉읍성 내에 존재했던 치민을 위한 시설물을 일컫는다. -읍성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 강릉읍성과 관아 유적 강릉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부의 동해안에 위치하며, 서·남·북으로 고도 약300~1,0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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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경주최씨상계세보』에 의하면 강릉최씨 시조 최필달은 경주최씨 시조 최치원(崔致遠)의 후예로 전해지나 정확히 고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필달은 고려 초기에 경주최씨에서 분적(分籍)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최필달은 고려 초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삼한벽상개국찬화공신(三重大匡三韓壁上開國贊化功臣)이 되었으며, 영첨의좌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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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함혁(咸赫)은 당나라에서 병부상서평장사(兵部尙書平章事)를 지냈는데 신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한 인물이다. 『경주이씨세보(慶州李氏世譜)』에 의하면, 진한(辰韓) 초기 알평(謁平)이 경주 표암봉(瓢岩峰) 밑에서 구봉(鳩峰) 함혁(咸赫)과 함께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함혁은 이후 양근자사(楊根刺史)가 되어 양평군 고읍면 용천리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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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김주원의 부하였던 곽길은 최대내(崔大奈)·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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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1리와 금산2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강릉김씨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 금산리(金山里)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조선 중종 대 김광헌(金光軒)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建金里)[갱금]라 하던 것이 1916년 장안동(長安洞), 제동(堤洞), 구동(鷗洞), 성하(城下)를 합하여 금산리라 했다. 금산리에는 강릉 최씨 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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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신라 종실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시랑평장사(侍郞平章事) 김상기(金上琦)의 아들이며, 문하시중(門下侍中) 김인존(金仁存)의 동생이다. 1104년(숙종 9)에 밀진사(密進使)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1109년(예종 4)에는 좌승선지이부사(左承宣知吏部事)를 지냈다. 1112년에는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1117년(예종 12)에는 대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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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이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그의 아들 김추(金錘)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1392년(태조 1)에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352년(공민왕 1)에 공을 세워 찬화공신(贊化功臣)으로서 명주부원군(溟州府院君)에 책봉되었다. 관직은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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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자는 중여(仲輿), 호는 정봉(鼎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24세손으로 고조는 현령(縣令)을 지낸 김윤귀(金允貴), 증조는 증통훈대부좌통례(贈通訓大夫左通禮) 생원(生員) 김필양(金匹陽), 조는 헌납을 지낸 김지(金墀)이다. 1487년(성종 19)에 증통훈대부군자감정(贈通訓大夫軍資監正) 생원공(生員公) 김반석(金盤石)과 진사 최유남(崔洧南)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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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 김주원의 후손으로 부친은 낭장(郞將) 김광복(金光輻)이고, 모친은 삼척심씨 군수(郡守) 심희전(沈希佺)의 딸이다. 1539년(중종 34) 초시(初試)에 뽑혔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부모를 봉양하였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김담의 나이 70세에 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받았다. 아버지가 병이 났을 때는 변을 맛보기도 하였고, 아침저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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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등가(登可), 호는 반곡(盤谷). 진사출신으로 전객령(典客令) 김천(金蕆)의 5대손으로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현령인 김윤귀(金允貴)이며, 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고 어머니는 강릉왕씨(江陵王氏)로 현감 왕갱(王䡖)의 딸이다. 김대(金臺)는 명주군왕인 김주원의 21대 후손으로 생몰연대는 알 수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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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대(金臺)의 무덤 앞에 세운 비. 1831년(순조 31)에 세웠다가 비문의 자획이 마모되어 1985년에 다시 세웠다. 12대 손인 김병혁(金秉爀)이 지었고, 17대 손인 김수남(金壽南)이 글씨를 썼다.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탑동에 있다. 비석은 전체높이 183㎝, 비신 130㎝, 폭 43㎝이다. 비의 제목은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행통훈대부 사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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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김덕장(金德璋)은 명주군왕 김주원의 후손으로 1550년(명종 5년)에 강릉에서 태어났다. 무공랑행평강훈도(務功郞行平康訓導)였던 김덕장은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이 병석에 들었을 때는 단 한 번도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고, 아버지가 위독했을 때 손가락을 끊어 생피를 올리기도 했다. 부친상을 당했을 때는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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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임경(任卿). 김주원의 후손이며, 5대조는 김윤신(金潤身), 고조는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김세달(金世達), 증조는 예빈시직장(禮賓寺直長) 김광언(金光彦), 할아버지는 군자주부(軍資主簿) 김수(金鐩), 아버지는 공조참의 김몽호(金夢虎),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참의(參議) 장호(張昊)의 딸이다. 부인은 간재(艮齋) 최연(崔演)의 후손인 최유성(崔有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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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득의(金得毅)[1595~1653]의 묘비. 김득의는 강릉김씨로 자는 임경(任卿)이다. 김주원의 후손이며, 5대조는 괴당(槐堂) 김윤신(金潤身)이다. 김득의의 묘비는 1818년(순조 18)에 세워졌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김득의의 묘 앞에 있다. 안인 대동마을에서 영동화력발전소 사원 사택을 지나자마자 우측 야트막한 산에 있다.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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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숙무(叔武), 호는 지봉(芝峰). 김주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수(金鐩)이다. 1582년(선조 1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09년(광해군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공조좌랑, 호조좌랑, 정언, 공조참의, 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써서 세상에 이름이 났다.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서 정경세(鄭經世)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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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지봉(芝峰) 김몽호(金夢虎)[1557~1637]의 가계 및 행적을 기록한 묘비. 김몽호는 본관이 강릉이고 김주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수(金鐩)이다. 1582년(선조 1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09년(광해군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김몽호의 손자인 김시혁(金始爀)과 김시형(金始炯)이 세웠다. 김몽호의 묘가 대관령 넘어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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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며, 첨의평리(僉義評理) 김여흥(金予興)의 아들이다. 김상기의 아들은 문신이자 학자인 김인존(金仁存)이다. 1070년(문종 24) 좌우보궐(左右補闕)을 거쳐, 1084년(선종 1) 이부시랑(吏部侍郞)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를 겸한 뒤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다.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 최사문(崔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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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峰), 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무반 계통의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이고, 어머니는 선사장씨(仙槎張氏)이다. 김시습은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는데, 생지지질(生知之質)이 있었다 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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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귀족이자 대신.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9대손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 할아버지는 김종기(金宗基), 아버지는 파진찬 김정여(金貞茹)이다. 딸은 문성왕의 왕비이다. 828년(흥덕왕 3)에 고성군태수(固城郡太守)가 되고 이어 중원소경(中原小京) 대윤(大尹), 무주도독(武州都督)을 역임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을 남겨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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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진사 김광헌(金光軒)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현감 최세번(崔世蕃)의 딸이다. 김열(金說)의 아버지 김광헌은 1519년(중종 14)에 진사에 올랐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겪고 난 후에 과거에 뜻을 버렸다. 김열(金說) 또한 과거에 나아가지 않고 형제들과 더불어 오직 글 읽기에만 힘썼다. 아무리 춥고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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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인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의 묘비. 김열은 1506년(중종 원년)에 출생하였으며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金周元)의 25세손으로 진사 김광헌(金光軒)의 장자이다. 관직은 평강훈도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세칭 임영처사(臨瀛處士)로서 강릉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1812년(순조 12)에 6세손 김처진(金處鎭), 김국명(金國嗚), 8세손 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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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신라의 귀족 각간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며, 시중(侍中) 김인존(金仁存)의 아들이다. 형제인 김영석(金永錫), 김영관(金永寬)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다. 1151년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었고 1156년(의종 10)에 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이 되었다. 1162년(의종 16)에는 추밀원부사 수사공(樞密院副使 守司空)이 되어 등극사(登極使)로 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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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덕수(德叟), 호는 괴당(槐堂).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부친은 김여명(金汝明)이고, 모친은 김지(金輊)의 딸이다.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6년(성종 7)에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사록(司祿), 전적(典籍), 주부(主簿), 경상도사(慶尙都事)를 거쳐 전중감찰(殿中監察)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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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인(金訒)의 묘지석(墓誌石). 김인[1516~1571]의 자는 대인(大仁)이다. 본관은 강릉이며 김주원의 후손이다. 증조는 증통정대부 예조참의 행봉정대부 사간원헌납(贈通政大夫 禮曹參議 行奉正大夫 司諫院獻納)을 지낸 김대(金臺), 할아버지는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행봉정대부 종부시첨정(贈嘉善大夫 吏曹參判 行奉正大夫 宗簿寺僉正)을 지낸 김세훈(金世勳),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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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처후(處厚), 호는 문성(文成), 초명은 김연(金緣).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9세손으로 시랑평장사(侍郞平章事) 김상기(金上琦)의 아들이다. 김인존의 아들은 김영석(金永錫), 김영윤(金永胤), 김영관(金永寬)으로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에 임명된 후 선종·헌종·숙종의 삼대에 걸쳐 벼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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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지(金輊)이며 어머니는 전공총랑을 역임한 고첨(高瞻)의 딸이다. 형은 김자갱(金子䃘)이며 아우는 김자현(金子鉉)이다. 1444년(세종 26)에 식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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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왕족. 태종무열왕의 8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 아버지는 소판(蘇判) 김종기(金宗基)이다. 김장여(金璋如)와 형제간이고, 아들은 김양(金陽)이다. 관등은 파진찬(波珍湌)에 이르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양전(金陽傳)에 의하면 김주원·김종기·김정여가 대대로 장상(將相)이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그도 시중(侍中)을 비롯한 관직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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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재상.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7대 손이며, 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이고, 아우는 김헌창(金憲昌)이다. 아들은 김정여(金貞茹)·김장여(金璋如)이며, 손자로는 김양(金陽)과 김흔(金昕)이 있다. 관등은 소판(蘇判)의 관등으로서 집사부(執事部)의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김주원은 신라 하대에 무열왕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785년 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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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왕족이며 강릉김씨의시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식읍으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김주원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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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의 신도비. 1960년에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인 김주원의 묘역 입구에 김주원의 37대 후손인 김진만(金振晩)이 건립하였다. 신도비의 규모는 높이 317㎝, 비신 180㎝, 두께 36.5㎝, 폭 69㎝이다. 비문의 글씨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李承晩)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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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이 명주군왕의 봉작(封爵)과 함께 받은 강릉 일대의 수조지(收租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金周元)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고, 김주원은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명주는 김주원의 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는데, 특히 김주원의 아버지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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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생원(生員) 김효안(金孝安)의 손자이며 참봉(參奉) 김광(金光)의 아들이다. 1071년(문종 25) 명주에서 태어났으며 1126년 이자겸(李資謙)과 척준경(拓俊京)의 반란 때 궁궐에서 불에 타 죽었다. 과거에 급제한 후에 영광군(靈光郡)의 군수(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당시 안무사(按撫使) 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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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명절날·조상의 생일 등에 지내는 제사. 절사(節祀) 또는 차사(茶祀)라고도 하며 아침에 올리는 제사이다. 현재는 설과 추석에 가장 많이 지내고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 대보름·한식·단오·칠석·중양절·동지 등에 지내기도 한다. 조상에게 달·계절·해가 바뀌고 새로 찾아옴을 고하고 절식(節食)과 절찬(節饌)을 올리는 의례이다. 강릉 지역에서는 성씨별로 유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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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강릉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있었던 독자적인 세력. 김주원(金周元)이 명주군왕(溟州郡王)의 봉작(封爵)과 식읍(食邑)을 기반으로 하였던 일종의 제후국(諸侯國)이다. 김주원은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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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김씨 후손들이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의 능소에서 시조 군왕의 얼을 기리고 선양하는 행사. 신라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시중 겸 병부령인 김주원(金周元)은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쟁탈전에 패하여 785년 어머니의 고향인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영동 지방의 9주를 다스리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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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묘. 신라 태종무열왕 5대 손으로 알려진 김주원이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封)해졌기 때문에 왕릉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왕(宣德王)이 후사(後嗣)없이 죽자, 신하들은 왕족 중에 김주원을 택하여 왕위에 추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침 경주에 내린 큰 비로 강을 건너지 못해 김주원은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되었다. 신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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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명주동에서 교동에 이르는 도로. 명주로는 명주동에서 시작하는 도로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명주는 통일 신라 때 지방 행정 조직인 9주 5소경(九州五小京) 가운데 9주의 하나로 강릉 김씨(江陵金氏) 시조인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장원(莊園)이 있었다. 명주로는 옛 강릉 대도호부의 읍성 안이었던 명주동 지역과 교 1동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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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신라 하대에 쌓은 것으로 추측되는 성. 신라 하대에 원성왕과의 왕위계승 다툼에서 실패한 김주원(金周元)이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한 이후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에 있다. 명주성(溟州城)은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의 북쪽 구릉(122m)을 정점으로 그 남사면의 2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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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의 귀족. 아버지는 사인(思仁)이고, 아들은 김주원(金周元)이다. 부인은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朴氏)이다. 774년(경덕왕 3) 정월에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이 되었는데, 745년 정월 아버지 사인이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된 직후인 5월에 천재지이(天災地異)를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였다. 무월랑은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지방의 세력가인 박씨와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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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 본동마을과 성산면 보광리 삼왕 사이에 있는 골짜기. 무일(舞日)은 예전에 강릉김씨들이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의 잃어버린 묘(명주군왕릉)를 찾으러 다니다가, 이곳 숲에 와서 능을 찾게 되자 기뻐서 춤을 추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무일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곤신봉 줄기가 동쪽으로 내려오는 넓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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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박영은 최대나(崔大奈)·함신(咸信)·곽길(郭吉)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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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梵日)은 사굴산문(闍堀山門)의 본산인 굴산사(屈山寺)를 창건한 신라시대 선승(禪僧), 굴산사지(屈山寺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있었던 굴산사(崛山寺)의 옛 절터.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는 굴산사지가 있다. 창건연대와 연혁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범일이 입당구법(入唐求法)한 후 귀국하여 851년(문성왕 13) 명주도독 김공(金公)의 청을 받아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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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법정리. 동쪽으로는 관음리와 위촌리 및 사천면 사기막리,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와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으로는 어흘리, 북쪽으로는 사천면 사기막리에 접해 있다. 신라 때에 낭원 대사가 세운 보현사(普賢寺)의 ‘보’ 자를 따고 마을이 빛을 내는 곳이란 뜻에서 ‘보광’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보광리(普光里)는 본래 강릉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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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종형 부도. 1828년(순조 28)에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청간사가 건립되면서 절터는 훼손되었다. 조선 명종 이후 김주원의 묘역이 확장되면서 부도만 남고 사찰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설에는 김주원 능의 수호사찰이었다고 한다. 이 부도는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김주원 능 입구의 청간사(淸簡祠) 담장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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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기 고려 초기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 신라 하대 불교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선종의 유행이다. 선종은 불교 경전(經典)에 의하여 학파를 구별하는 교종(敎宗)과는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여 문자에 의거하지 않고 선(禪)을 통하여 불성(佛性)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종은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중앙집권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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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앞에 있는 마을. 명주군왕(溟州郡王)인 김주원(金周元)과 그의 아들 두 분이 이곳에 있어 ‘삼왕(三王)’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처음에 ‘삼왕동(三王洞)’이라 하였지만 ‘왕(王)’자를 지명에 사용하지 못한다 하여 ‘왕’자와 음이 같은 ‘왕(旺)’자를 썼다. 삼왕동 사람들은 보광리[보겡이] 삼왕이라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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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강릉에 거주 해 온 성씨와 관련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를 통해 그 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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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마을. 성하촌에 있는 명주성은 신라 때 명주군왕인 김주원(金周元)이 성을 쌓고 정무를 보았다고 한다. 명주의 도읍지가 명주성(溟州城)인데 이곳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여 장안(長安)이라고도 한다. 명주는 신라의 9주 5소경(九州五小京) 가운데 하나로 남쪽으로는 울진, 북쪽으로는 고성, 통천, 서쪽으로는 평창, 영월 지역까지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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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金周元)을 모신 사당. 여말선초에는 흥복암(興福庵)이라 하였으나 17세기에 숭의재라 하였다. 숭의재(崇義齋) 안에는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의 5대조인 태종무열왕의 위패를 봉안한 숭열전이 있다. 오래 전부터 종묘를 세워 태종무열왕에 대한 향화(香火)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훼철된 후 강릉김씨 자손들의 숭조 정신에 입각하여 김진만(金振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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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 전사청인 숭의재와 태종무열왕을 추모하기 위한 숭렬전(崇烈殿)의 창건과 중수의 내용이 담긴 기문. 1818년 유학 김성일(金聲鎰)과 진사 김학무(金學娬)가 쓴 「사촌재사중수기(沙村齋舍重修記)」, 1823년 후손 김계급(金啓汲)이 쓴 「재방중수기(齋房重修記)」, 1871년 교삼(敎三) 김병락(金秉洛)과 김연학(金演翯)이 쓴 「재사중수기(齋舍重修記)」, 1885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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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강원도 강릉시의 역사. 강릉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선사 유적지를 통해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선사 유적지는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송림리, 사천면 가둔리·판교리, 강동면 안인리·하시동리, 강릉시 토성지와 지변동·교동·안현동, 옥계면 금진리 등 대부분 바닷가 호수변이나 하천 유역의 낮은 구릉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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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에 전하는 「명주가」 배경설화의 주인공. 연화부인은 강릉김씨 시조로 명주군왕이 된 김주원(金周元)의 어머니 박씨로 전해지고 있다. 연화부인과 관련된 이어척소(鯉魚尺素) 설화는 아름다운 만남으로 전한다. 신라 왕족 김주원의 강릉 이주 문제와 함께 강릉 출신 연화부인과 경주의 서생 김무월랑의 결연(結緣)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설화가 전한다. 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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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있었던 예국시대의 고대 성곽. 예국고성(濊國古城)은 강릉이 동예의 중심이었던 고대에 축조되었던 성곽으로 추정하며 명칭은 고대 부족국가의 명칭 ‘예(濊)’ 또는 ‘동예(東濊)’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강릉(江陵)은 본시 예(濊)의 고도(古都)로 철국(鐵國) 혹은 예국(蘂國)이라고도 하였으며 고구려의 하서량(何西良)이었다가 후에 신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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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호족. 본관은 강릉. 본래의 성(姓)은 김씨(金氏)로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6세손이며, 진골 출신인 김선희(金善希)의 아들이다. 태조 왕건의 14비(妃)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이 왕예(王乂)의 딸이다. 명주군왕 김주원이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계승전에서 패배하고 강릉으로 퇴거한 이래, 그의 후손들은 강릉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일대에 강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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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부인(蓮花夫人)과 무월랑(無月郞)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연못 구지(舊址)에 있는 누각.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강릉에서 벼슬을 하던 무월랑은 연화(蓮花)라는 아가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무월랑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연화 아가씨를 보고 말하기를 “만일 그대와 전생에 인연이 있다면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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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와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넓은 지역. 작은 무일[小舞日]은 곤신봉에서 내려온 산줄기들의 모양새가 마치 춤을 추듯 이어져 있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큰 무일의 서쪽에 해당한다. 사천면 사기막리에서 성산면 보광리 삼왕에 있는 명주군왕릉[신라 원성왕 때 명주군왕을 지낸 김주원의 능]으로 다녔던 길이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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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토성. 장안성은 강동초등학교의 북쪽 구릉(70m)에 발달된 소곡지를 둘러쌓은 것으로 전면에는 군선강 하류의 충적지가 발달되어 있다. 명주성(溟州城)과 같이 석축부 위에 얇은 토층이 덮여 있다. 성벽의 높이는 3m, 상·하부의 폭은 각각 2m, 5m이며 성주는 약 600m이다. 남벽 중앙부의 절단된 부분에는 문의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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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지역에서 곡신(穀神)으로 추앙받아 온 여성신격. 강원도 강릉시 대성황사에서 모셔온 12명의 신위 중 하나이다. 초당리부인(草堂里夫人)은 충청도 출신으로 강릉 초당 지역에 시집온 뒤 이 지역 사람들에게 벼농사 짓는 방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인물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초당리부인신으로 신격화하여 대성황사에 신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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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마을에 살았던 역사 인물로 먼저 김충각(金忠慤)[1578~1650]을 거론할 말하다. 김충각은 명주군왕 김주원의 후손으로, 참판 김덕장의 아들이다. 호는 초정(草亭)이고, 조선 선조 때 경포 초당마을에 살면서 벼슬은 사헌부감찰직장을 지냈다. 우복(愚伏) 정경세 선생과 평소 예학을 강론하였으며, 절의와 덕행이 매우 높았다. 생전에 경포호수 부근에 경호당(鏡湖堂)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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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주민이 거주하는 일정 규모의 집단. 인간이 생활하기 위하여 지표공간을 점거해서 거주하는 집단을 취락(聚落)이라고 한다. 취락의 규모가 큰 것을 도시(urban settlement)라 하고, 작은 것을 촌락(rural settlement)이라고 한다. 도시와 촌락을 나누는 인구의 기준도 국가마다 다르다. 국제적 기준은 2,000명이다. 한국은 이 수치의 10배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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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최대나(崔大奈)는 곽길(郭吉)·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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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함신은 최대나(崔大奈)·곽길(郭吉)·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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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고려초 사회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세력. 신라말 진골귀족 내부 정쟁으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독자적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지방으로 낙향한 진골귀족이나 6두품 계통, 지방의 토착세력인 촌주, 해상 세력, 지방군사 세력에서 기원하고 있다. 이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스스로 장군이나 성주를 자처하였다. 호족은 대토지를 지배하고 있고, 사병(私兵)을 중심으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