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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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김몽상(金夢相), 김몽상의 처 강릉김씨, 김석진(金錫晋), 김석진 처 강릉최씨, 김구(金坵) 등 삼세삼효이열지려각(三世三孝二烈之閭閣)의 중수 사실을 적은 기문. 「안동김씨효열각중수기(安東金氏孝烈閣重修記)」는 강릉시 교2동 안동김씨 삼세삼효이열지각(三世三孝二烈之閣) 안에 있다. 「안동김씨효열각중수기」는 1941년 8세손 김재남(金在南)이 짓고, 김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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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김주원이 787년에 당시 북빈경(北濱京)이었던 강릉으로 옮겨 명주 지역 9군(郡) 25현(縣)을 관장하는 명주군왕에 책봉된 이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세습하면서 형성되었다. 김주원은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이며,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6세손이다. 785년 선덕왕이 죽고 후사가 없자 신하들은 무열왕계의 직계인 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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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전승되는 향토 민요. 「강릉 학산 오독떼기」는 강원도 강릉 지방에서 논김을 맬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의 하나로, 남쪽으로는 동해시의 망상·옥계부터 북쪽으로는 양양군 남부 지역까지 분포되어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논농사 소리가 불리지만, 어느 지역이든 논매는 소리가 가장 다채롭고, 음악적으로도 세련되어 있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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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인위적으로 새로 개척하여 농사를 지으며 사는 마을. 개척대 마을은 평야 지대나 구릉 지대를 개척하여 생긴 마을이다. 개척대 마을은 3단계로 구분되는데 먼저 일제강점기 초기의 개척대 촌락, 해방 이후의 개척촌락,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개척대 촌락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개척된 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와 학산리에 있는데 일제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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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는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회 단위.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대신에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첨례를 보거나 공소예절이 행해지며, 정기적인 신부의 방문을 통해서 성사가 집행된다. 금광리 공소 현판에는 1887년 창립으로 적혀 있어 19세기 말에 벌써 신자들이 이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광리 공소 신자들이 1921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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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행해진 교육의 역사와 현황. 강릉은 유서 깊은 교육의 고장으로서 이미 고려 말경부터 향교가 설립되고 지역 내에 서당과 서원 등 유학 교육 기관이 많았다. 광복 후 정부 수립과 함께 교육 팽창 정책이 실시됨에 따라 강릉 교육은 획기적 발전을 거듭하였다. 1945년 해방 직후의 초등 교육은 일제 식민지 정부에서 물려받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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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속한 면. 강릉시의 중앙부에 있는 면으로서 도시 근교의 농촌 지역이다. 북쪽으로 강남동, 동쪽으로 강동면, 남쪽으로 옥계면과 왕산면, 서쪽으로 성산면에 접한다. 구정면의 ‘구정’은 마을에 거북이가 나온 우물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옛날 이 마을에 효자가 살았는데 효자의 아버지는 병환으로 누워 있었다. 병이 깊은 아버지는 고기를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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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2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성황을 모셔 놓은 당. 금광리 서낭당은 강릉시 구정면 금광2리 1반에 위치해 있다. 금광리 서낭당의 당집은 없으며 서낭목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금광리의 제의는 성황제(城隍祭)라고 하며 성황지신(城隍之神)·토지지신(土地之神)·여역지신(癘疫之神)을 모신다. 제당은 금광리와 박월동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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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성황을 모셔 놓은 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는 설래, 상부락, 어단1리 5반, 어단2리 4반에 각 한 곳씩 4개의 서낭당이 있다. 서낭제는 행정 구역과는 상관없이 과거 자연 마을 단위로 서낭제를 올린다. 설래마을 서낭당은 강릉시 구정면 어단1리 1반 976번지, 상부락마을 서낭당은 강릉시 구정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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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금광리는 강릉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8㎞ 정도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덕현리, 서쪽으로는 학산리, 남쪽으로는 어단리와 언별리, 북쪽으로는 운산동과 접해 있다. 금광리의 명칭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금덩이를 건져 올린 용금정이 있어서 용금정의 ‘금’ 자를 따서 ‘금빛이 나는 고을’이란 뜻에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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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에 있는 노암동 천주교회 관할의 공소. 금광리 공소 현판에는 1887년 창립으로 적혀 있어 19세기 말에 벌써 신자들이 이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광리 공소 신자들이 1921년 가을 판공 때 최문식 양양본당 주임신부에게 보좌신부인 이철연 신부를 금광리로 파견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당시 신자 수가 149명이고 공소 강당과 신부가 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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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서 박월동에 이르는 도로. 도로가 구정면 어단리와 금광리에 있는 넓은 들을 지나는 길이라 하여 금평로라고 이름하였다. 금평로는 구정면 학산리에서 시작하여 어단리와 금광리를 지나 박월동까지 원활한 교통을 위하여 예부터 있던 도로를 넓혀 자동차가 다니도록 하였다. 길이 8,159m, 폭 12~40m의 2~7차선 도로이다.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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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강릉 시내에서 남동쪽에 있으며, 구정면에서도 가장 남쪽 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상시동리와 모전리, 서쪽으로는 금광리, 남쪽으로는 언별리·어단리, 북쪽으로는 금광리와 상시동리에 접해 있다. 마을 위쪽에 덕고개가 있어 생긴 이름이다. 또한 옛날에는 부자가 많이 살았는데 부자들이 마을 고개에서 덕을 받도록 산신령에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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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 2리에 있는 저수지. 동막저수지는 어단 2리 동막골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며 동막저수지에 모인 물은 어단리와 금광리의 넓은 들로 흘러간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동막저수지는 관개 개선 및 지목의 변환을 목적으로 쌓았다. 1952년 11월 5일에 착공하여 1961년 11월 30일에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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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에서 학산리에 이르는 도로. 신라 후기 구정면 학산리에서 태어난 선승인 범일 국사(梵日國師)를 기리기 위하여 범일로라 이름하였다. 범일 국사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 의해 학산리 뒷산 학바위에 버려졌으나, 학이 보호하여 목숨을 유지하였다. 이런 모습을 본 어머니가 다시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길렀다고 전한다. 성장하여 서라벌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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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에 있는 마을. 부쳉이[富昌]라는 마을이름은 예전에 이 지역에 부자들이 많이 모여 살아서 마을이 융성하게 부를 이뤘다고 하여 생긴 것이다. 덕고개에서 내려온 줄기가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와천이 흐르고 있다. 부쳉이 앞을 흐르는 와천을 따라 서쪽으로 들어가면 덕고개가 있고, 와천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뉘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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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에 있는 거리. 비석거리에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으며 금광천이 흐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에 경상북도 의성에서 올라온 의성김씨들이 비석거리에 살면서 입안지로 사용한 땅을 수십 년이 지난 다음 그의 후손들이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여 금광리 주민들과 송사가 생겼다. 이 때 금광리에 사는 정량댁에서 주민들의 땅이라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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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쪽의 유산동과 신석동 사이를 흐르는 하천. 섬석천은 구정면과 왕산면의 경계가 되는 칠성대[953.6m]를 최고봉으로 하는 일련의 산줄기로부터 북사면으로 흐르는 작은 계곡의 물들이 경사급변점에 설치된 칠성저수지와 동막저수지에 저장되고, 이 저수지로부터 흘러나온 물들이 구정면 장현저수지의 물과 합하여 동해로 흘러나가는 하천이다. 칠성저수지와 동막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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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교회 의식이 행하여지는 건물. 한국천주교는 정조 8년(1784년) 이승훈이 중국 북경에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그람몽(Grammont)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과 권일신에게 세례를 준 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조선 사회는 유학 그 중에서도 주자학이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전반에 뿌리를 내린 시기였기 때문에 유학과는 근본적인 면에서 서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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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일대에서 행해지는 민속놀이. 학산리는 강릉시에서 서남쪽으로 6㎞ 떨어진 역사문화마을로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범일국사가 탄생한 유서 깊은 곳이고, 「학산오독떼기」 농요가 전한다. 이 농촌마을에서는 산나물과 약초가 많이 생산되어 고비, 고사리를 봄철에 뜯어서 즐겨 먹었다. 신령산 괴비 고사리꺾기놀이도 나무하던 아이들이 산에 산나물을 뜯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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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고려가 이성계에 의해 멸망하자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최문한, 김충한, 이장밀, 김경 등이 이곳에 와 고려 우왕의 위패를 모신 어단을 쌓아 놓고 고려 사직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불사이군의 선비 정신이 나타난 곳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설과, ‘고기를 잡는 큰 못의 모습’처럼 되어 있는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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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섬석천의 지류 중 하나. 어단천(於丹川)의 ‘어단’은 마을이름인 어단리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단리는 고려 말 강릉주현의 제유인 벼슬아치들이 낙향하여 인근인 금광리에 은거하면서 이곳에 제단을 만들고 임금을 향해 망제를 올렸다하여 ‘어단리(於丹里)’로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단천은 길이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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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속한 법정리. 언별리(彦別里)는 마을에 있는 송담 서원에 공부하러 왔던 유생들이 서원이 불에 타 공부할 장소가 없어지자 아름다운 선비들이 떠났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본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언별이라 했는데 1916년 가둔지·단경골·장재기와 모전리 일부를 합해 언별리라 하고, 하구정면[구정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에 강동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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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총선거를 저지하기 위하여 강릉 지역에서 좌익세력들이 벌인 각종 습격, 방화, 요인암살 등의 활동. 해방 후 한반도에 통일국가를 수립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미국은 미·소 공동위원회의 결렬로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게 되고, 유엔은 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하여 한반도에서 선거를 통하여 조속히 통일된 정부를 수립토록 결의한다. 그러나 소련은 유엔의 제안에 대해 반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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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평로에서 강동면 상시동리 상시동 교차로에 이르는 도로. 와천로는 구정면 금광리·덕현리, 강동면 상시동리 등 3개 리의 야산과 전답 지대를 지나간다. 옛날 구정면 덕현리에 가마터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구운 기와를 마을 앞으로 흐르는 와천(瓦川)을 통해 배로 운반하였다고 하여 와천로라고 이름 붙였다. 구정면에서 구정면과 강동면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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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금광리 본당의 첫 신부. 1905년 서울 원전 천주교 예과에 입학, 1911년 본과에 재학하였다. 1921년 6월 12일에 사제서품을 받은 뒤 1921년 금광리 본당, 1923년 주문진 본당, 1928년 용소막 본당에 부임하였다. 1936년 옥천, 1942년 안성, 1943년 연암, 1944년 익산 등에서 지내다가 1962년 7월 9일에 은퇴하고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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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에서 내곡동에 이르는 도로. 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정등골[정동골]이라 정등로라고 이름하였다. 길이 1,755m, 폭 8m의 2차선 도로이다. 정등로는 제비 2리 사거리에서 내곡동 구정 프라자 약국 삼거리에 이르는 길이다. 회산, 제비리 지역에서 내곡동, 구정 방면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도로 인근의 농민들과 지역 주민이 주로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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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위치한 천주교 교회. 1921년 12월 2일 금광리 본당을 설립한 후 이철연 신부는 1922년 초부터 신자들은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거주하기에 적당하지 않은데다가 발전 가능성이 적어 양양이나 주문진 강릉 지역으로 본당 중심지를 옮기려는 생각을 가졌다. 그 결과 1922년 8월 초에 적당한 장소를 주문진에서 발견하고 이듬해 초에 이를 매입하여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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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을 세계 교회의 최고 지배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파. 천주교는 조선시대의 지속적인 박해로 말미암아 학문적인 연구를 통해 천주신앙에 입문했던 지식계층의 지도자들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교세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서민층으로 점차 확대되었는데, 이에 따라 천주교의 신앙도 윤리 중심적 신앙에서, 일반 민중의 복음적인 신앙으로 변모해갔고 신앙의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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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서 노암동에 이르는 도로. 칠성로는 강릉시 구정면의 어단리·금광리·학산리와 박월동·유산동의 평야 지대를 통과하여 노암동 강원 영동 병무 지청에 이르는 도로이다. 이 도로는 구정면 어단리 남강릉 나들목과 동해 대로 간 약 4.9㎞ 구간이 4차선으로 개통되면서 기존의 도로와 연결되었다. 이 도로 개설로 강릉 도심 지역 교통량 분산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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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마을의 민속놀이는 어린이들의 놀이와 어른들의 놀이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어린이들의 민속놀이로는 ‘고비고사리꺾기놀이’가 있다. 고비고사리 꺾기는 학산리, 여찬리, 금광리 일대의 산간 지역에서 옛날 초동들이 불렀던 동요이며 놀이였다. 놀이가 수반된 동요로서 산간지역 아이들의 민속놀이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민속놀이다. 산간 지역에 사는 아이들에게 산이나 들에 있는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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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은 굴산사가 있어 옛날에는 굴산(崛山)이라 했는데, 그 후 마을 뒷산 우거진 노송에 학들이 서식해 부락의 자연경치가 절경을 이루었고 이를 가리켜 ‘학산(鶴山)’이라 하였다. 이 지역의 독특한 지명들의 유래를 살펴보면서 먼저 마을과 골의 이름부터 알아보자. 왕고개에서 마을로 오면서 오른쪽으로 옛길너머에 있는 골이 가랑골이다. 이곳에 옛날에 곶집이 있었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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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마을은 영동지역 중심부인 강릉시 구정면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강릉시청에서 남쪽으로 6km, 구정면사무소에서 1km 지점에 있는 농촌 마을이다. 동쪽으로 장현동, 서쪽으로 구정리, 남쪽으로 금광리, 북쪽으로 여찬리와 이웃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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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7개 법정리[여찬리, 학산리, 금광리, 어단리, 덕현리, 구정리, 제비리] 가운데 하나로 학산 1리, 학산 2리, 학산 3리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 뒤에 있는 학바위 때문에 학산(鶴山)이라 했고, 또 굴산사가 있어 굴산(掘山)이라 불린다. 1896년 강릉군 구정면 학산리로 지정된 후, 195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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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발생한 강릉 지역에서의 좌, 우익 간의 이념 갈등. -사상이 낳은 정치적 혼란- 해방 직후 강릉 지역 좌우익의 갈등-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왔으나 강릉 지역의 일본군은 계속 무장한 채로 주둔하고 있었다. 2주일이 지나도록 미군은 오지 않았고, 하루 바삐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시민들은 38선 이북 양양에 이미 주둔해 있던 소련군에게 일본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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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학필(權學弼)[1894~196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각. 권학필은 안동권씨이다.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맏형수의 손에서 자랐다. 그는 4형제의 막내로 성장하면서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리 돈독하였다. 11세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애통해 함이 남달랐으며, 형들의 가르침에 따라 상례를 치렀다. 이후 가세가 빈약하여 맏형을 따라 왕산면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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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억추(朴億秋)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각 박억추는 충렬(忠烈) 박제상(朴堤上)의 후손으로 훈도(訓導) 박윤량(朴允良)의 아들이며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의 조카이다. 이 가문에서는 박수량과 사휴(四休) 박공달(朴公達)과 같은 효자들이 배출되었으며 박억추 또한 그들의 영향을 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삼강행실』에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