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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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관노들이 가면을 쓰고 추는 성황신제 계통의 탈춤을 중심으로 강릉 단오제 때 행하는 민속극. 「강릉 관노 가면극」은 연희자들이 구한말까지 강릉부에 속했던 관노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매년 단오 때마다 관노들이 놀이판에 직접 참가하여 탈놀이를 하였다. 무언극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강릉 관노 가면극」은 조선시대의 다른 가면극처럼 풍자가 혹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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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강릉 지방 재지사족들이 풍속을 준수하기 위한 만든 조항. 조선중기의 강릉 지역에서 지방의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향리의 풍속을 바로잡고 유교적 윤리규범의 확산과 진작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구체적 절목을 명시한 금문(禁文)을 작성하였다. 정경세는 1614년(광해군 6) 강릉부사로 재직하면서 「통유문급절목(通諭文及節目)」을 발표하였다. 강릉부의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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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대천 옆 연화봉의 반석 위에 있는 월화정의 김무월랑과 연화부인에 관련된 전설. 월화정은 신라 명주군왕의 부모인 김무월랑(金無月朗)의 ‘월(月)’자와 박연화부인(朴蓮花夫人)의 ‘화(花)’자를 따서 명명한 정자이다. 이 정자는 1933년 강원도지사 이범익으로부터 하천부지 점용허가를 받아 공사비 3,730원을 모금하고 강릉 임영관 건물 일부를 옮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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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서 마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우리나라에 분포된 아기장수 설화에 등장하는 장소는 ‘용소[용연못]·장수바위·장군묘’ 등으로 나타나는데 강릉지역의 「마정(馬井)」에 나타난 장소는 ‘마정[말우물]’이다. 또 아기가 죽을 때 나타나는 동물로는 용마(龍馬)가 있는데, 강릉지역의 마정에 나타난 동물은 채록에 따라서 ‘용마’로 나타날 때도 있지만, ‘백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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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이 지은 별연사의 고적에 대한 기록. 「별연사 고적기」는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7에 수록되어 있다. 강릉에 있는 별연사에 전승되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여기에는 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의 어머니인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의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허균이 기록한 이 글은 서술 전개상 다섯 개의 문단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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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이 동해용왕신을 기리는 내용을 쓴 비문. 허균이 동해신묘를 양양으로 옮기고 난 후 신라 때부터 강릉 정동진에 있다가 양양으로 옮겨진 경위를 적고, 을사년에 비바람의 재해가 있자 신의 강복을 기리기 위해 쓴 글이다. 1370년(고려 공민왕 19) 사해 가운데 첫 번째로 동해지신의 신호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강릉 정동진에 동해신묘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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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김씨의 족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계보를 정리하여 간행한 족보. 조선시대 족보의 유형은 크게 족도(族圖)·대동보(大同譜)·파보(派譜)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족도는 족보의 초기 형태로 일반 족보처럼 정간(井間)을 지어 기록하지 않고 단지 계보만을 알 수 있도록 붉은 선으로 연결시켜 가계를 기록한 것이다. 대동보가 전국적으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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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부에 부임하였던 역대 관원의 성명, 직명, 생년월일, 본적 따위를 기록한 관원 명부. 관원의 진퇴지적(進退之蹟)을 기록하여 권과(權課)의 규범으로 삼고자 관아에서 간행한 것이다. 필사본이며 8행에 각행 20자이다. 크기는 가로 29.7㎝, 세로 41.7㎝이다. 4침(針) 선장(線裝)이다. 신라 이사부(異斯夫)부터 역대 강릉부에 부임한 관원의 부임시기와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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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강릉부에서 편찬한 강릉의 읍지. 정확한 편찬연대는 알 수 없으나 ‘명환(名宦)’조의 내용이 1897년(광무 1)까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1899년 읍지 상송령(上送令)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추측된다. 1991년에 『한국읍지총람』 중 「강원도편」으로, 1997년에는 『규장각자료총서』「지리지편」「강원도읍지」2로 영인된 바 있다. 『강원도 강릉부지』의 구성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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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9월부터 1895년 3월까지 강원 영동지방 각 읍에서 펼쳐진 동학농민군 토벌과 관련된 사항을 정리·기록한 고서. 저자는 미상이며, 필사본이다. 지질은 한지이고, 면수는 254면이다. 소장처는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선교장이다. 『동비토록(東匪討錄)』의 ‘동비’는 관군의 입장에서 동학농민군을 지칭한 표현이다. 상급관청과 하급관청 그리고 각 군진(軍陣)과 주고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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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의 행적을 기록한 문집. 박수량은 1475년(성종 7) 출생하여 1504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연산군 때 단상법(短喪法)에 반대하며 3년상을 치른 것으로 인해 살아서 정려를 받았던 효자이다.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어 용궁현감(龍宮縣監)이 되었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낙향하여 향풍 진작에 기여하다가 1546년(명종 2)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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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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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고려 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 객사란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 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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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다양한 자원들을 토대로 하여 구축된 테마별 문화관광 콘텐츠 및 프로그램의 향유 루트이다. 강릉 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관광지라 할 수 있다. 강릉 지방의 테마 문화 관광은 수려한 자연경관, 유구한 역사와 문화재, 선조들의 숨결과 삶의 지혜와 멋과 맛, 그리고 뛰어난 강릉의 예술성 등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강릉이 지닌 수려한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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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045[명주동 38-1번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강릉 관아와 관련된 건물터. 강릉은 충렬왕 14년 강릉부로 편제된 이래 공양왕 원년 대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이러한 개편 작업이 신왕조의 개창을 위한 성격을 띠는 것이었으므로 그대로 조선조에 이어졌으며, 대도호부로서 읍격은 그 승강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말까지 이어진다. 강릉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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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년부터 1895년까지의 강릉 읍격. 1389년(공양왕 원년), 강원 영동 지방의 행정적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강원 영동의 거진(巨鎭)의 의미로 강릉대도호부로 읍격을 정하였다. 조선 개국 후 군현제 개편 시에도 강릉 대도호부의 읍격을 유지하였다. 특히 여말 선초의 전환기에 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김광을(金光乙), 함전림(咸傳霖) 등의 출사와 고려 초에 왕씨 성을 사성받았던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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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 내의 최고 관장(官長). 강릉은 하슬라(何瑟羅), 하서량(河西良) 등으로 불리다가 신라 선덕왕(善德王)이 소경(小京)을 설치하였으며, 경덕왕(景德王) 16년에 명주(溟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태조 19년에는 동원경(東原京)으로 편제되었으며, 성종(成宗) 2년에 하서부(何西府), 동왕 5년에 명주 도독부(溟州都督府), 동왕 11년에 명주목(溟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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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설치되어 조선 말에 폐지된 강릉 지역의 지방 관청. 1308년(충렬왕 34)에 설치되어 1896년(고종 33)에 강릉군으로 개편되었다. 『강릉부읍지(江陵府邑誌)』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 관련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명주(溟州), 명주목(溟州牧), 창해명주도,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 강릉도(江陵道)가 차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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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 있는 석탑. 강원도 강릉시 산계리 절터에 무너진 석탑재를 모아 놓은 3층 석탑 1기가 있다. 강릉의 읍지인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사찰조에 ‘산계암은 강릉부에서 남쪽으로 80리 떨어진 산계령에 있다[山溪菴在府南八十里山溪嶺下]’라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이후에 간행된 『강원도지』,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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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위치한 영동 지방의 중심 도시. 강릉시는 강원도 백두대간의 동쪽 영동 지역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가 있고, 서쪽으로는 평창군·정선군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해시와, 북쪽으로는 양양군과 각각 인접해 있다. [표1] 강릉시의 위치[출처:시정백서(강릉시, 2016)]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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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내동·명주동·용강동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 강릉부의 행정성(行政城). 읍성(邑城)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치소지(治所地)에 축조한 성곽으로 조선 전기에는 대략 120여 곳이 유지되었다. 상비군에 의한 충분한 조치가 어려웠던 당시 불시에 발생하는 외침으로부터 주민의 생명은 물론, 지방 관아의 각종 행정 자료와 물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읍성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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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읍성은 근대 이전 고려와 조선시대에 강릉 지역의 치소(治所)가 위치했던 행정중심지에 조성되었던 성곽을 말하며, 관아 유적은 강릉읍성 내에 존재했던 치민을 위한 시설물을 일컫는다. -읍성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 강릉읍성과 관아 유적 강릉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부의 동해안에 위치하며, 서·남·북으로 고도 약300~1,0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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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소규모의 교량. 연장 56m, 폭 11m, 경간장 16m, 설계하중 24DB의 T빔형 소교량이다. ‘강문(江門)’은 ‘강이 흐르는 입구’라는 뜻으로 ‘경포대를 품고 있는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을 의미한다. 현재의 강문교(江門橋)는 경포천을 통과하는 8개의 소교량 중 하나이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의하면 원래 강문교는 나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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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의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 ‘강문(江門)’은 ‘강이 흐르는 입구’라는 뜻으로 ‘경포대를 품고 있는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을 의미한다.강릉부 동북쪽 10리 되는 북일리면에 있으며, 경포호수의 동쪽 출구이다. 해안이 우뚝 솟은 봉우리는 견조도와 서로 마주 바라보고 섰으며, 읍을 호위하고 있는 관문으로 위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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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강릉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 1260년(원종 1)에 설치되어 1263년에 강릉도(江陵道)로 개칭되었다. 고려 고종 때 당시 무인집정자 최의(崔竩)를 죽임으로써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공을 세운 낭장(郞將) 김홍취(金洪就)의 공을 포상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강릉의 읍호를 승격시켰다. 1258년(고종 45) 김홍취는 유경(柳璥)·김준(金俊)·박송비(朴松庇)·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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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연대가 오래되고, 지도 제작의 기술사적인 면에서 현대 지도와 구별되는 지도.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지도, 천하지도, 전국지도, 지방지도, 군현지도[읍지도], 관방지도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들 중에서도 전국지도와 군현지도에 한정시켜 다룰 것이다. 전국지도는 한 장의 종이에 넓은 지역이 취급되어 있기 때문에 군현지도에 비해서 생활공간의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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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 부담했던 인삼과 관련한 부세(賦稅). 조선 후기 인삼의 징수나 납부 방법은 임토지공(任土之貢)의 명분에 따른 공물납, 포·미·전 등에 의한 대납(代納), 삼공인에게 청부하여 납부하게 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또한 징수형태도 백성들로 하여금 채취 납부하게 하는 것과 대동법에 의한 포전곡의 징수, 무삼(貿蔘)이라는 이름으로 시가의 절반 이하 정도의 비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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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괘방산 능선에 남북으로 축조된 석성(石城). 괘방산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98년 강릉원주대학교박물관에서 이 성의 동남쪽 3.2㎞에 있는 고려성지(高麗城址)에 대한 지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괘방산성은 강동면 안인리 본동에서 동해안과 7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괘방산까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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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행정리. 강릉시 주문진읍의 중심부에 있는 행정리로서 주문진읍의 교통 중심지이며 공공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다리 옆에 마을이 형성되어 다리목집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지산이라 하며 명주의 속영으로 하였고, 1018년(현종 9) 지방 관제의 개정에 의해 연곡면에 소속된 마을이었다. 1734년(영조 10)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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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김시습(金時習)의 후손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제한(金濟漢)의 아들이다. 1814년(순조 14) 식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찰방에 이르렀으며,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참의(參議)로 승진되었다. 성품이 순후하고 정직하였으며, 문명(文名)을 세상에 떨쳐 당시의 선비들이 모두 따랐다. 김종호(金宗虎)의 증조할아버지인 신와(愼窩) 김수붕(金壽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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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에 있는 산봉우리. 능정봉은 대관령의 능선 아래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능정봉은 대관령 남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능정봉[소우음산]은 백두대간 줄기가 지나가는데 북쪽에는 대관령, 곤신봉이 있고, 남쪽에는 고루포기산이 있다. 능정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낮은 산들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닭목재에서 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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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력 4월 15일 대관령에서 강릉 단오제의 주신격인 국사성황을 모시는 제의. 대관령 국사성황사에서 제사를 마치고 신장부와 무당 등이 인근 산정에 올라가 국사성황신이 강림한 단풍나무 신목을 모시는 의례이다. 신장부가 신목을 잡으면 무당과 악사들이 서낭을 모시기 위한 성황굿 한판을 벌인 뒤 신목을 모시고 성황사로 내려온다. 『증수 임영지(增修 臨瀛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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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매년 음력 4월 15일 성황신인 범일 국사를 모시고 지내는 제의. 대관령 국사성황사에서 지내는 제사로 국사성황신은 강릉 출신의 승려 범일 국사이다. 대관령 국사성황제는 통일 신라 때 국사로 추앙된 범일 국사가 사후에 대관령을 지키는 성황신이 되었다는 신화에 의거한 명칭이다.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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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보광 1리, 보광 2리로 구성된 농산촌 테마 관광 마을. 대굴령마을 운영 단체는 영농 조합 법인 대관령 어울림 마을이다. 대관령에 인접한 태백 준령 기슭에 위치해 있는 어흘리, 보광 1리, 보광 2리의 3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산촌 테마 관광 종합 타운 대굴령마을’로 소개되고 있다. 대굴령마을은 보물로 지정된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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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에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 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동학은 심화되고 있던 봉건 체제의 모순과 열강의 침략 위기 속에서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시되었다. 동학은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내세워 평민, 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지배층은 동학을 사교(邪敎)로 지목하고 1864년 교조인 최제우(崔濟愚)[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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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해안의 동해신을 모신 곳. 동해신묘의 창설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명나라 태조가 고려 공민왕(恭愍王) 19년(1370)에 고려에 사절을 보내서 국내산천에 제사를 행하고 임금이 목욕재계하여 친히 축문을 고하였다 한다. 조선왕조가 세워지면서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명나라 법전에 따라 동해묘를 중건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사해(四海)가운데 첫 번째로 동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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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괘방산 중턱에 위치한 해수관음도량의 조계종 사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강릉부 동쪽 30리에 절이 있다고 하였는데, 등명사라 한 것은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볼 때 이 절은 강릉도호부 내에서는 암실(暗室)의 등화(燈火)와 같은 위치에 있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학도(修學徒)가 3경(三更)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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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의 괘방산 중턱에 있는 등명사의 옛터. 등명사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풍수지리에서 입각하여 볼 때 사찰이 강릉대도호부 중 암실(暗室)의 등화(燈火)와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일설에는 이곳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이 삼경(三更)에 산에 올라 붉을 밝히고 기도하면 급제가 빠르다고 하여 붙여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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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김씨 후손들이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의 능소에서 시조 군왕의 얼을 기리고 선양하는 행사. 신라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시중 겸 병부령인 김주원(金周元)은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쟁탈전에 패하여 785년 어머니의 고향인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영동 지방의 9주를 다스리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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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강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복재(復齋), 또 다른 이름으로 진호(晉鎬)라고도 하였다. 민용호(閔龍鎬)는 1869년(고종 6)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경기도 여주에서 거병하였다. 병력을 이끌고 원주·평창·진부를 거쳐 1896년(고종 33) 1월 강릉에 진출한 민용호는 영동 일대 의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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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6년(현종 7)에 강릉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박옥지(朴玉只)의 아버지 박귀남(朴貴男)이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병에 걸리자, 박옥지의 남편 어말남(於末男)이 산골짜기에다 초막(草幕)을 짓고 그곳에 박귀남을 데려다 두었다. 그러나 그 병이 집안에 전염될까 두려워 한 박귀남의 처 난개(難介)가 박옥지와 어말남 및 박옥지의 아들 어둔금(於屯金)과 모의하여 박귀남을 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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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특정한 공물을 생산하던 곳.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 지역을 구성한다.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지소(紙所)·자기소(磁器所)·염소(鹽所)·묵소(墨所) 등이 있었다. 소는 향·부곡이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것과는 달리, 고려시대에 들어와 특정 공물을 확보하기 위해 설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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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조선 초기 권사균(權士均)이 별당으로 지은 건물. 권사균의 자는 공보(公父), 호는 보진당(葆眞堂)이다. 권사균은 1484년(성종 15)에 태어났으며, 시조는 권행(權幸)이다. 권사균은 학문과 문장이 사림들 가운데 뛰어나 중종반정 다음 해인 1506년(중종 1)에 사마양시에 합격하였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문장과 덕행으로 추중(推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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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강릉은 인심이 후하고 선현들의 얼이 지속적으로 이어 온 전통적인 문향·예향의 도시이다. 1955년 강릉읍과 경포면, 성덕면을 합해 시로 승격된 강릉은 2011년 9월 말 현재 1,040㎢의 면적에 인구 220,121명에 이르는 영동의 교육·문화·교통·행정의 중심지이면서 동해권의 중추적 도시로 발전하였다. 강릉은 백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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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삼교리는 주문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장덕리, 남쪽으로는 연곡면 퇴곡리, 서쪽으로는 연곡면 삼산리와 양양군 현북면, 북쪽으로는 양양군 현북면과 현남면에 접하고 있다. 세 갈래 길이 있다는 의미의 ‘세거리[三街洞]’와 물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는 의미의 ‘물다리[水橋洞]’라는 이름이 합쳐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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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와 목계리를 잇는 고개. 삽당령은 산 정상의 생김새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생겨 이름이 붙여졌다. 강릉시와 정선군 임계면을 오가기 위한 길로 만들어졌다. 삽당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강릉부의 서쪽 60리에 있는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하였고, 『증보문헌비고』에는 삽당령(揷當嶺)이라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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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서낭신에 기원하는 굿이나 제의(祭儀). 서낭굿은 동제(洞祭)의 일종으로, 제(祭)와 굿이 혼합되어 치러진다. 명칭상 ‘제(祭)’는 비의적(秘儀的) 성격을 띠고 있으며 직접적 참여자는 제관(祭官)이다. 제의(祭儀)의 진행 과정이나 제장(祭場)은 다른 성원들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반면, 굿은 오신행사(娛神行事)로서 사제자(司祭者)가 중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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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면(面). 강릉시의 중서부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구정면,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남쪽으로는 왕산면, 북쪽으로는 사천면과 접해 있다. 고속 도로와 국도가 통과하고 대관령이 있는 강릉시의 관문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보현산성이 있어서 ‘성산’이라 하였다. 성산면은 1894년 행정 구역으로 획정되었으며, 1895년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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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강릉에 거주 해 온 성씨와 관련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를 통해 그 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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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여행객이 잠을 잘 수 있는 시설. 숙박시설은 건축법 또는 관광 진흥법에 의거하여 설치된 건물로 여행객 등 소수 또는 다수의 이용자가 숙소로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숙박시설은 건축법 및 건축법 시행령에 의해 건축 용도에 따라 수련 시설, 숙박시설, 생활 숙박시설 등 3가지로 구분된다. 또한 관광 진흥법에의한 관광 숙박업은 “호텔업”과 “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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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강릉부 북쪽의 사화면(沙火面)[지금의 사천면]에 있었던 제방. 제언이란 바닷물이나 강물을 막아서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그 일부를 가로질러 막은 돌이나 흙으로 쌓은 둑을 말한다. 조선 시대의 토목 건설 공사는 대부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담수하거나 수재 예방을 위한 제방을 쌓는 일이나 염전에 바닷물을 가두기 위하여 둑을 쌓는 일이다. 그 밖에도 영동 지역은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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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남쪽을 흐르는 신리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조선시대 강릉 지방의 계곡이나 하천의 다리는 대부분 징검다리였으며, 비교적 사람의 왕래가 많고 하천에 흐르는 물이 많은 곳에는 교량이 있었다. 신리교는 강릉부 북쪽 50리 지점에 있었으며, 1929년에는 철교로 개설하였다. 신리교는 강릉에서 주문진을 잇는 7번국도에 위치한 중요한 교량이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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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계흠(季欽), 호는 송정(松亭). 고려 때의 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증조는 문희공(文僖公) 신개(申槩), 할아버지는 신자승(申自繩), 아버지는 신숙권(申叔權),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부인은 이사온(李思溫)의 딸 용인이씨이다. 아들이 없고 딸만 다섯을 두었는데 첫째는 장인우(張仁友)의 부인, 둘째는 이원수(李元秀)의 부인인 신사임당(申師任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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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명화(申命和)의 묘소 앞에 세운 비석. 신명화는 중종 대 정계에 진출한 신진사류로,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죽었다. 외손인 율곡 이이와 오죽헌(烏竹軒) 권처균(權處均)이 신명화의 묘를 강릉부 북쪽 두왕동(豆旺洞), 지금의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조산리로 이장한 이래 외손들이 봉사(奉祀)한다. 1885년(고종 22) 외손인 권인식(權麟植) 등이 신명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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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진이라는 이름은 ‘강릉부 동쪽 나룻가에 있는 고을’을 뜻한다. 안인진 1리 마을 전체를 송촌(松村)이라 부르는데, 예전에 마을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지역에서 삼거리라고 하면 군선교 부근에 안인리, 모전리로 갈라지는 길을 가리킨다. 삼거리 부근의 안장재는 강릉 승마장이 있는 일대를 이른다. 말허리처럼 생긴 곳에 안장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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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줄기가 강동면 해안 쪽으로 내려오면서 화비령, 괘방산을 만들고 이 줄기가 다시 마을로 내려오면서 바닷가에 이르는데 그 끝에 해령산이 우뚝 솟아 있다. 해령산은 화비령 북쪽 줄기의 끝이며, 군선강 하구에 맞닿았다. 이곳은 강동 9경의 하나인 '봉도어선(烽島漁船)'에 해당되는 곳이다. 예전에는 강릉김씨들의 정자가 있었다. 괘방산은 정동진리와 안인진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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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강원도 강릉시의 역사. 강릉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선사 유적지를 통해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선사 유적지는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송림리, 사천면 가둔리·판교리, 강동면 안인리·하시동리, 강릉시 토성지와 지변동·교동·안현동, 옥계면 금진리 등 대부분 바닷가 호수변이나 하천 유역의 낮은 구릉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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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최명익(崔命翼) 등 정묘생(丁卯生) 동갑계원이 지은 정자. 이 정자는 조선조 강릉부의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던 객사(客舍)의 재목과 기와를 옮겨 지은 것이다. 당시 일제는 식민지교육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객사 터에 강릉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이를 위해 객사의 건물을 해체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갑계원들이 객사의 재목과 기와를 일부 매입하여 오성정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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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던 사우. 정경세의 호를 따서 우복사(愚伏祠)라고 하였고, 일명 도동사(道東祠) 또는 퇴곡서원(退谷書院)이라고도 한다. 정경세는 1613년(광해군 5) 강릉대도호부사에 부임한 후 양몽재(養蒙齋)를 설치하고 강릉향교에 흥학비(興學碑)를 세우고 3년 재임 기간 동안 교화를 크게 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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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승지 유태명(柳泰明)의 손자이며, 유무(柳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한중희(韓重熙)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생원이 되고 현감을 지낸 뒤, 176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5년에 정언(正言)·사서(司書)·수찬·교리를 역임하고 1775년(영조 51) 집의(執義)로서 영남어사(嶺南御史)가 되었다. 1776년 왕세손의 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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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위급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군(民軍). 한말 영국 기자인 매캔지(Frederic Arthur Mckenzie)의 「Korea’s Fright For Freedom」에서는 의병을 ‘Righteous Army(정의의 군대)’라고 하였다. 독립운동가인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의병을 “義兵者 民軍也 國家有急 直以義起 不待朝令徵之發 以從軍敵愾者也(의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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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강 처 강릉최씨의 이름·생일·죽은 날·자손 등을 적어 무덤 앞에 묻은 판석. 이무강 처 강릉최씨의 아버지는 최수당(崔壽塘)이고 어머니는 비인현감(比仁縣監)을 지낸 신수(辛守)의 딸이다. 조부는 통훈대부금구현령(通訓大夫金溝縣令)을 지낸 최세충(崔世忠)이고, 증조는 가선대부형조참판(嘉善大夫刑曹參判)을 지낸 최응현(崔應賢)이다. 이무강은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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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의 주신인 범일국사를 모신 대관령 국사성황당. 명주장군 김순식은 936년(태조 19)에 부하 장병을 이끌고 신검을 토벌하기 위해 강릉을 출발하여 대현(大峴)[대관령]에 이르러 이상한 중을 모신 사당인 이승사(異僧祠)에 제사를 지내고 후백제와의 마지막 격전지로 향하였는데, 이곳이 현재 범일국사를 모신 ‘대관령 국사성황사’라 여겨진다. 이승사는 행정구획상 평창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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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 속에서 자연과 인간과 역사의 관련성을 토대로 인간이 만든 문물 등에 관련된 일 등을 설명하는 분야. 인문지리학의 연구 분야는 여러 기초과학[인문과학, 사회과학]의 다른 많은 학문 분야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인문 현상 중에서 무엇을 그 연구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경제지리학, 교통지리학, 관광지리학, 도시지리학, 문화지리학, 사회지리학, 역사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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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 때 행하는 강릉관노가면극의 등장인물. 「강릉관노가면극」은 과거 강릉부에 속했던 관노들이 탈을 쓰고 춤을 춘 무언극으로 양반광대·소매각시·시시딱딱이·장자마리가 등장인물로 나온다. 이 가운데 장자마리는 ‘장자말’·‘장자말이’·‘장재말이’ 등으로도 불리는데 가면은 쓰지 않고 머리에 계화를 쓰며 전신에 검게 물들인 삼베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보쓴놈’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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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앞바다에 위치한 육계도. 『관동읍지』,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에 ‘이 섬은 강릉부 동해 상에 있고 주위가 5리 정도이며 섬은 높지 않고 지금은 파도가 깎아 평탄지가 되다시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 강릉 근처 동해성 섬은 견조도(堅造島)와 죽도(竹島)만 표시되어 있고 이 섬들은 지금은 모두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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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의 면 이름.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방리조(坊里條)에 의하면, 정동면(丁洞面)은 유천리(楡川里)·사전리(沙田里)·조산리(助山里)의 3개 리로 구성되었다. 인구현황을 보면, 유천리는 호수 69호, 인구수 271명(남 137명, 여 134명), 사전리는 호수 77호, 인구수 280명(남 136명, 여 144명), 조산리는 호수 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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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릉 정동면 지역에서 향약을 시행하기 위해 조직된 모임. 상호 부조와 신분간의 분수를 강조하는 면 단위의 사회 질서 확립을 위해 조직되었다. 지방 장관인 수령 유후조가 절목을 작성하여 시행을 권장하였다. 향약의 4대 덕목을 앞세우고 각 덕목마다 시행 세칙을 마련하였으나, 이 세칙은 매년 열리는 총회에서 수정될 수 있었다. 도약정 1인, 부약정 1인, 직월 1인을 두고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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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릉부에서 산삼의 남획을 막고 궁궐에 공납하기 위해 세운 민간인 산삼 채취 및 출입 금지 표석. 1992년 강릉영림서에서 가리왕산 국유림도 개설공사 중 정선 강릉부 삼산 봉표가 발견되었다. 봉표는 금표(禁標)라고도 하며 산림에 출입을 금하거나 일정한 공간을 막아서 특정한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다. 황장목의 보호를 위해서 황장금표를 세우고 산삼의 공출을 위해 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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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읍. 원래 강릉군 신리면 지역으로 ‘주문(注文)’이라 하다가, 나루터가 있으므로 ‘주문진(注文津)’이라 하였다. 주문진읍은 고구려 때에는 지산현(支山縣)이었으며 일명 양곡이라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이르러 지산이라 하며 명주의 속영으로 하였고,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방 관제의 개정에 의해 연곡면에 소속되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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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관노가면극」 기예능보유자. 「강릉관노가면극」의 연희자로 1967년 1월 16일 국가지정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부친은 차인실(車仁實) 모친 배씨의 아들로 강릉시 성남동 132번지에 거주하였다. 1967년 강릉단오제가 국가지정무형문화재 13호로 지정되어 「강릉관노가면극」의 전승기반이 마련되었으나 차형원은 1968년 부산으로 이주한 관계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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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최운우(崔雲遇)는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강릉.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교수 최담(崔澹)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晋州姜氏) 참봉 강준지(姜俊智)의 딸이다. 진사 최호(崔浩)에게 입양되었다. 김광진(金光軫)에게서 수학한 최운우는 1552년(명종 7) 생원에 급제하였고,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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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1763년(영조 39) 생원에 올랐다. 5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지자 예를 갖추어 상을 치렀다. 장례를 마치고 바로 아버지의 묘 옆에다 묘막을 짓고 3년 동안 죽만 먹었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묘소에 나아가 절을 하고는 꿇어앉아 슬피 울었다. 이웃 사람들이 이를 듣고 모두 감복하였으며, 강릉부사 유의양(柳義養)이 자주 찾아 위로하였다. 강원감사 이형규(李亨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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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지역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지방 자치 단체의 행정 작용. 치안은 경찰과는 그 역사적 내용에서 다른 용어이다. 전통시대에는 오늘날 경찰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으나 경찰이란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 따라서 치안은 근대 이후에야 등장하는 경찰보다 광범위한 개념으로, 전통시대의 포도청, 일제강점기의 경무청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1389년 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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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취락을 배경으로 하천과 강릉 지방의 동해 바다가 만나는 곳. 동해안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형성된 포구(浦口)는 교통수단과 물산 유통의 요충지이다. 포구는 바다로 통하는 출입구로서 포구 주위에는 마을 내지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강릉 동해안 지역 포구의 지리적 특성은 서쪽에서 동해로 흐르는 하천이 동해 바다와 맞닿은 곳에 발달하였다. 강릉의 군선강, 남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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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바탕삼아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風)은 기후와 풍토를, 물(水)은 물에 관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풍수의 기본 원리는 땅속에 살아 꿈틀대는 정기가 있어, 몸속의 피처럼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기를 타고난 사람은 복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또 정기가 뭉친 곳(穴)에 집을 지으면 가운이 뻗쳐서 대대로 번창하며, 도읍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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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3리에 있는 호수. 풍호(楓湖)는 호수 주위에 단풍나무가 많이 우거져서 생긴 이름이다. 경포호, 향호, 뒷개, 순개와 더불어 강릉의 5호 가운데 하나이다. 풍호의 원래 둘레는 상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풍호는 구정면 덕현리 덕고개에서 흐르는 와천이 강동면 상시동리를 거쳐 흘러들어 와 형성된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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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부사를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심원(深源). 한영삭(韓永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유(韓愈), 아버지는 한충례(韓忠禮)이다. 1503년(연산군 9) 별시문과에 삼등과로 급제하였다. 장령을 거쳐 1510년(중종 5)에 강릉 부사로 재직하던 중 관물(官物)인 면포(綿布) 1백 50필로 양곡을 산 일이 발각되어 장오죄(贓汚罪)로 파출당하고, 추문(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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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 분배와 관련된 정부의 제반활동과 상호작용. 강릉시는 예로부터 예맥족이 살던 곳으로, 기원전 129년에는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다. 기원전 128년에는 예맥의 군장인 남려가 한나라에 귀속, 창해군의 일부가 되었다.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는 고구려 세력에 합쳐져서 하서랑 또는 하슬라라고 불렸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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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행정 기관 권한이 미치는 일정 구역. 강릉 지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해안 한가운데 위치하여 오랫동안 영동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선사 시대부터 영동의 중심지로서 경상북도 동해안의 울진·평해와 평창군 봉평면·용평면·진부면·대관령면, 정선군 임계면 등의 광역 생활권의 행정·군사 중심지였다. 좁지만 남북으로 길게 들을 이루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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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향리직의 우두머리. 나말여초 지방의 지배층인 호족의 전신이다. 신라 말에 이들은 중앙의 상대등(上大等) 이하의 관제를 본떠 당대등(堂大等)·창정(倉正)·병정(兵正) 등의 직제를 구성했다. 고려 건국 후에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향리제도도 점차 정비하여 983년(성종 2) 당대등을 호장으로 개칭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의 토호적(土豪的) 존재로서 상당한 세력을 가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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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임곡리와 모전리, 산성우리 사이에 있는 큰 고개. 『동국여지승람』에 ‘강릉부 남쪽 35리에 있으며 영의 흙이 검어서 붉게 탄 것 같은 까닭에 화비령(火飛嶺)이라 했다’고 한다. 과거 영동고속도로 개통 당시 영동2터널로 관통되었던 곳으로 영동의 중부와 남부를 잇는 주요 교통로상의 고개이다. 『대동여지도』에도 강릉에서 삼척을 잇는 영동로 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