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란반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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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반월회 모임의 모습을 담은 그림. 금란반월회는 1466년(세조 12년) 강릉에서 15명의 지역 문인들이 최응현을 스승으로 모시고 조직되었으며 춘추 가절에 한 차례씩 계회를 열었다. 「금란반월회 계회도」는 당시 계회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주변에 숲이 우거진 기와지붕의 누정이 화폭의 중심을 이루었고, 누정에는 세 개의 반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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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저동 소재 금란정(金蘭亭) 건립 내력을 적은 기문. 금란정은 금란반월회(金蘭半月會)의 계회 모임 장소로 활용되는 정자로 경포대 북쪽 호숫가에 있다. 「금란정실기(金蘭亭實記)」는 계원 심철한(沈哲漢)이 작성한 것으로 이 정자의 매입과 중수 내용을 한문으로 적어 정자에 걸어놓았다. 크기는 가로 77㎝. 세로 31㎝이고 나무로 만든 현판이다. 옛날 백연당(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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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반월회의 후손들이 선조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편찬한 문적. 금란반월회는 1466년(세조 12)에 조직되었다. 강릉 지역의 젊은 선비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과거에 응시하여 출사하려는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필사본으로 『금란세첩(金蘭世帖)』, 『금란반월회세계도(金蘭半月會世系圖)』, 『삼오제기(三五儕記)』, 『금란반월회시첩(金蘭半月會詩帖)』 등이 별책으로 전승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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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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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민간 협동체 문화. 강릉 지역의 사회 조직으로서 계 문화는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현전하는 미타계(彌陀契) 자료는 불교의 신도회로서 이미 고대사회에서 조직 운영되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초기의 금란반월회(金蘭半月會), 죽장회(竹杖會)와 조선 중기의 약국계(藥局契), 사후계(射侯契), 향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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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친족, 혈연, 지연, 학연, 촌락, 동문수학, 나이(동갑) 등을 매개로 결성되는 결사체. -‘계(契)’를 아십니까 - 강릉 지역의 전통적인 계문화 계라고 하면 ‘아줌마들’이 식당에서 벌이는 회식 자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계모임, 계가 깨졌다, 패가망신… 이런 말부터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목돈을 모으는 위험하고 원시적인 방식이 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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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 지역 유학자들의 계회(契會). 조선 초기의 재지사족들은 중앙의 숭유억불 정책에 힘입어 성리학을 수용하여 정착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강릉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리학을 수용한 재지사족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을 교양으로 하여 입신출사를 지향하였으며, 나아가 성리학적 향촌질서를 추구하였다. 강릉 지역 금란반월회의 성향도 이와 같았다. 한편, 조선 초기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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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금란반월회의 모임 장소로 활용되었던 정자. 금란정은 1889년경에 금란반월회원들에 의해 이건된 것으로 춘하추동 네 번 시행되는 금란반월회의 모임장소로 활용되었다. 원래 매학정(梅鶴亭)이었던 이 정자의 명칭은 계명(契名)에 따라 금란정이라 고쳐졌다. 금란정은 금란반월회 참여 인사들의 우의 돈독을 나타내는 의미로 금란지교(金蘭之交)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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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덕수(德叟), 호는 괴당(槐堂).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부친은 김여명(金汝明)이고, 모친은 김지(金輊)의 딸이다.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6년(성종 7)에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사록(司祿), 전적(典籍), 주부(主簿), 경상도사(慶尙都事)를 거쳐 전중감찰(殿中監察)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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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인 김윤신(金潤身)의 묘비. 김윤신(金潤身)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강릉 출신이다. 호는 괴당(槐堂), 자는 덕수(德叟)이다. 금란반월회를 창계했던 인물 중에 한사람이다. 김윤신 사후에 후손인 판서(判書) 김상익(金尙翼), 김형진(金衡鎭) 등이 주도하여 비를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저동 강릉김씨 옥가파 종산(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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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인 김윤신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 김윤신의 호는 괴당(槐堂)이다. 금란반월회를 창계했던 인물 중에 한사람이다. 만년에 낙향하여 향약(鄕約)을 저술하였다. 1766년(영조 42) 김윤신의 후손 김형진(金衡鎭)이 찬하고 판서 김상익(金尙翼)이 서한 의정부사인구비(議政府舍人舊碑)가 있었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글자가 마모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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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선비인 김형진(金衡鎭)이 경포대 북쪽 증봉(甑峰)[시루봉] 아래에 지었던 정자. 김형진의 개인 정자였던 매학정은 19세기 초반 경에 금란반월회(金蘭半月會) 계인들에 의해 매입되었다. 후에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371번길 57[저동 15-1], 지금의 금란정(金蘭亭) 자리로 옮겨졌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정범조(丁範祖)가 쓴 「매학정기(梅鶴亭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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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소(子昭). 강릉박씨 양주파(襄州派)의 파조이다. 고조는 박연(朴演)으로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였고, 증조 박지계(朴之桂)는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냈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으로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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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으로 강릉박씨 양주파(襄州派)의 파조인 박시문(朴始文)의 묘비. 박시문의 자는 자소(子昭)이다. 1486년(성종 17)에 문과에 합격하여 전적(典籍), 평해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박시문은 만년에 낙향하여 금란반월회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1995년 후손들이 선조의 행적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증봉 아래, 즉 경포호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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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강릉 12향현의 한 사람인 최수(崔洙)의 행적을 적은 묘비. 최수의 자는 도원(道源), 호는 춘헌(春軒)이며, 강릉 출신으로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유명하다. 통훈대부진잠현감(通訓大夫鎭岑縣監)을 지냈으며, 금란반월회 설립에 참여하였다.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으로 향현사에 배향되었다. 후손 최시복(崔始復)과 최주학(崔柱鶴)이 잘 전해지지 않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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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자는 경열(景說). 강릉군(江陵君) 최유련(崔有漣)의 5대손이고 고조는 좌찬성(左贊成)인 최이(崔迤)이며, 목사 최경지(崔景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최계원(崔季元)이고 아버지는 문장령 최홍(崔泓)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현감인 김정(金精)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두루 경사(經史)를 섭렵하였다. 실학(實學)에 뜻을 두고 성명(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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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최기원(崔起元)은 금란반월회(金蘭半月會) 사석(師席)이었으며 강릉 향현사에 배향된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부모를 정성스럽게 섬겼다. 최기원이 8살 때 부친의 병이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소생케 하고, 이러한 효행이 나라에 알려져 1608년(선조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