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B03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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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용 |
[조상 현창은 자손 된 도리로 하는 것]
점필재 선생의 16세손인 만년 문학소년 송학(松鶴) 김시종(1941년생) 씨는 칠순에 접어든 지금도 글쓰기를 놓지 않는다. 공식적인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시와 수필, 꽁트, 기행문, 논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글재주는 자타가 공인한다. 김시종 씨는 주로 다음(Daum) 인터넷 카페 자유 게시판에 글을 기고하며 다수와의 소통을 지향하고 있다. 때로는 선산김씨[일선김씨] 대종회나 퇴직 경찰 모임인 경우회,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글을 남긴다.
김시종 씨는 특히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행적과 인품, 학덕, 충절을 널리 알리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동시에 묘역 중창과 고유제 등 선생을 현창하는 일과 후손들의 세거지인 개실마을을 알리는 글도 쓴다. 「성리학의 태두 문충공 점필재 선생」, 「문충공 점필재 선생 고유제」, 「문충공 김종직의 생애와 사상」, 「사림파의 고향을 찾아서」 등은 그가 소개해 온 글의 주요 제목들이다. “자손 된 도리로서 하는 거지요.”라는 말처럼, 이는 조상의 참 모습을 바로 알고 선양하며 그 정신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기 위함이다.
[조상의 문재(文才)는 자손으로 이어지고]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거두로서 특히 영남 사림(士林)의 리더로 통한다. 선생은 시문이 뛰어나 주옥같은 문장을 많이 남겼는데, 16세 때 과거 시험에서 남긴 시문인 「백룡부(白龍賦)」와 관련한 일화도 유명하다. 흥학육재(興學育才)에도 남달라 관직 수행 중에는 유호인, 정여창, 김굉필, 조위, 김일손, 남효온 등 기라성 같은 나라의 동량들을 길러 냈다.
이와 같은 점필재 선생의 피를 물러 받아서인지 점필재의 후손들 중에는 현대 한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이도 여럿 있다. 「화랑의 후예」·「무녀도」·「등신불」 등을 남긴 김동리[1913~1995]와 「화랑외사」를 저술한 김정설[1897~1966] 형제가 대표적이다. 김시종 씨의 문학 사랑과 문필벽도 필시 이와 같은 조상의 피를 이어 받았을 것이다.
김시종 씨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중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시종 씨는 대구상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문예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상혼(商魂)』과 『개척』 등의 교내문예지를 만들며 문학의 꿈을 키워 나갔다. 대구시내 남녀 고교 문예반장들의 모임인 ‘달무리클럽’이나 ‘문둥이구라프’도 결성하여 『봄의 지열』이란 문예지도 간행했다.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학생과 문학』이란 월간 문예지를 창간하여 이를 학생 대중의 전문 문예 교양지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열다섯 가지나 되는 일들을 전전하다]
김시종 씨는 체계적인 문학 공부를 위해 청구대학 국문과에 들어갔지만, 18년간 계속된 할머니와 아버지의 병수발로 집안이 어려운 걸 알고 결국 그만두었다. 군 복무를 전후해 제21기 경찰 채용 시험에 응시하기까지 신문 배달과 편집 기자, 책장수 등 무려 열다섯 가지나 되는 일들을 전전했다. 김시종 씨의 평생 직업은 31세부터 58세에 퇴임하기까지 28년 동안 봉직한 경찰이다. 현재 김시종 씨는 현재 대구경우회 이사이자 경우산악회 총장 겸 퇴직 공무원들의 모임인 청마산악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경찰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김시종 씨는 일손을 놓지 않고 줄곧 보험업계에서 종사해 왔다. 중절모를 쓰고 회원 관리용의 첨단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칠순의 나이로 생각되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인다. 다음 글은 김시종 씨가 5년 동안 함양군수로 재직했던 점필재 선생의 체취를 느낀 소회를 「함양찬가」라는 제목으로 읊은 내용이다.
「함양찬가」
백운산 내린 줄기 청청한 함양/ 솔뿌리 울권 단물/ 공(空)으로 흘러가네
개울가 다[茶]밭엔 그 옛날/ 상방(上房) 아가이 수줍은 입술처럼/ 불그레 피던 진상(進上)차 나무꽃
오백 년 흘러간 사연만 남아/ ‘문충공 김종직 선생 관영 차밭 조성 터’라 돌만 우뚝/ 밭가에 쭉쭉 뻗은 느티나무 정자/ 더 높게 더 넓게 하늘로 땅으로
정(庭) 수(樹)에 흐르는 성하(盛夏)의 합창/ 간신과 충신은 누(樓) 안에 잠들어/ 영욕의 세월은 반만년
외로운 시판(詩板)은 갓을 감추고/ 학사루 명성은 예나 이제나/ 길손의 사랑 머물게 하네
절절 끓이다가 쏟아 부은/ 하늘의 불사탕은 온 누리에/ 학사루의 2월은 아득한 추억
태수의 옛 사당[生祠堂]은 전설로 남아/ 용추 고을 인심은 아름다워/ 자연 유적 잘도 가꾼 함양 고을 거창에서 남원 길 쉬어 가라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