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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B030201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용

김병만[1944년생] 씨는 개실마을에서 2남 3녀의 큰아들로 태어나서 전형적인 개실마을 토박이다. 개실마을 영농조합법인 대표이자 개실마을발전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한 김병만 씨는 개실마을을 농촌 체험 마을로 가꾸어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틀을 닦은 주역이기도 하다. 개실마을은 2006년과 2007년에 농촌 체험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농촌지역가꾸기대회에서 장려상과 대상을 차례로 받아 각각 3000만 원과 1억 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개실마을에 딸기 농사를 들여오다]

김병만 씨는 고령군 쌍림농업협동조합에 들어가 37세까지 10년 가량 근무했다. 당시 그는 쌍림 하거리에 정착하여 딸기 농사를 짓고 있던 충청남도 논산 사람으로부터 재배 방법을 전수받아 개실마을에 전파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재배자로부터 종자를 구하고 농업협동조합으로부터는 농사 자금을 지원 받아 개실마을의 딸기 농사 기틀을 마련했다. 1970년대 당시에는 가구당 600평[1983.47㎡] 정도 규모로 하우스를 지었는데, 철근이 나오지 않아 대나무로 재배 시설을 만들었다. 그래서 폭풍우나 폭설 등으로 딸기 시설이 파괴되어 상당한 불편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개실마을 딸기의 품질이 우수하고 판로도 좋아 대부분이 서울 가락동시장 등지로 출하됐는데, 시간이 지나자 수확철만 되면 서울 상인들이 앞 다투어 개실마을로 내려와 딸기를 사갔다.

딸기 농사가 소득 작물로 호평을 받자, 1980년대 들어서는 마을 전체로 확대됐다. 재배 면적도 가구당 보통 1000평[3305.79㎡]에서 많게는 3000평[9917.36㎡]까지 짓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후 종자 개량과 기술 개발로 인해 재배 면적당 수확량도 배가되고 출하 시기도 훨씬 앞당길 수 있었는데, 이러한 변화를 일컬어 김병만 씨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한다. 특히 딸기 시설 내부를 지하수로 난방하는 ‘수막(水幕) 재배’ 방법이 개발되어 하우스 내 온도를 한겨울에도 5℃ 이상으로 유지시킴으로써 10월 말부터 다음 해 5월까지 지속적으로 딸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딸기 농사보다 농촌 체험 마을 사업이 주 소득원이 되다]

김병만 씨도 3000평[9917.36㎡]의 논농사 외에 600여 평[1983.47㎡]의 밭에서 딸기 농사를 계속해서 지어 왔다. 하지만 일이 힘에 부쳐 2009년부터는 30년 넘게 해 온 딸기 농사를 그만두었다. 딸기 농사를 짓던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농사를 그만두고 이제는 김종수 씨와 이재율 씨, 김상율 씨 등 단 세 가구만 계속 짓고 있다.

사실 개실마을 딸기는 대가야체험축제 및 전통 체험 마을 방문객의 딸기 수확 체험 행사를 통해서도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으나. 2005년부터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전통 체험 마을 사업이 주 소득 사업으로서 기존의 딸기 농사를 대체하고 있다. 김병만 씨를 중심으로 스무 명의 마을 사람들은 개실마을 영농조합법인을 구성하여 마을을 찾는 국내외 방문객을 맞이하느라 여념이 없다.

전통 체험 마을 사업을 꾸려 나가는 구성원 중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다. 남성 회원들은 재료 준비와 구내 청소를 중심으로 연 제작과 날리기, 등 만들기, 계란꾸러미 제작, 고구마·딸기 체험 등을 담당하고, 여성 회원들은 식사 준비를 비롯해 엿·한과 만들기와 떡·국수 만들기 등의 체험 활동을 지도하고 있다.

개실마을은 2001년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 시범마을로 선정되어 20억 원의 정부 예산을 지원 받았고, 이를 토대로 마을 경관 조성 및 체험 시설을 조성하면서 농촌 체험 마을 사업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초기 2~3년간은 마을 사람들이 봉사하는 생각으로 방문객 안내와 식사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개실마을이 2005년 농촌 체험 마을로 선정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음식을 제공하고 민박을 비롯해 다양한 농촌 체험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민박은 스무 명의 회원 중 열여섯 가구에서 행한다.

[전국의 대표 마을로 위상이 높아진 개실마을]

농촌 체험 마을 사업은 2005년부터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이로부터 나오는 수익도 상당하다. 김병만 씨에 따르면, 개실마을을 방문하는 체험 관광객이 연 5~6만 명에 이르고, 연 소득도 4~5억 원에 달해서, 회원 스무 명에게도 월 평균 100만 원의 벌이가 보장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경제적인 수입 외에도 대외적으로 마을이 많이 알려져서 전국의 대표 마을로 위상이 높아졌다. 동시에 마을 사람들 간의 화합과 단결력이 높아지면서 마을 분위기가 많이 밝아져 활기가 넘친다고. 동시에 ‘점필재 선생 마을’로 홍보됨으로써 조상 선양 효과도 크단다.

이렇듯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개실마을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는 김병만 씨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곧 칠순을 바라보는 인자한 그의 미소 속에 개실마을의 희망과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엿보였다.

[정보제공]

  • •  김병만(남, 1944년생, 쌍림면 합가리 주민, 개실마을 영농조합법인 대표 겸 개실마을발전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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