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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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靈鄕校所藏文籍 |
영어의미역 | Old Books of Goryeong Hyanggy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608[향교길 29-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성격 | 전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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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제작지역 | 고령 |
소장처 | 고령향교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608[향교길 29-18]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 전적.
[개설]
고령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과 서적은 향교의 인적 구성과 교육 및 재정운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형태]
고령향교에는 현재 필사본 16건, 책판 1종 266장, 그리고 서적이 28종이 남아 있다. 고문서와 필사본으로는 『유안(儒案)』, 『향안(鄕案)』, 『고령향약안(高靈鄕約案)』, 『고령향약임원록(高靈鄕約任員錄)』, 『모성계안(慕聖契案)』 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분실하였고, 『고령향약(高靈鄕約)』, 『고령면향약원명부(高靈面鄕約員名簿)』 등이 남아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것들이다.
고령향교 소장 책판은 『주례(周禮)』를 새긴 판목으로 1685(숙종 10)년에 현감 구문유가 사비로 각판을 제작한 뒤 관청에 진열하여 사람들이 관람하도록 하였는데, 경상감영에서 이를 수거해 갔다. 이에 고령 유생들이 경상감영에 항의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올 수 있었지만, 이미 판목 중 일부가 분실된 상태였다. 이후부터 완질의 책판이 전해지지 않다가 1873(고종 28)년에 이르러 현감 장덕진이 낙질 판목을 보충한 후 『주례(周禮)』책판 완질본이 현재까지 고령향교에 보관되어 왔다. 고서는 28종 115책으로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맹자집주대전(孟子集註大全)』, 『여문정선(儷文程選)』, 『소미가숙점교부음통감절요(少微家塾點校附音通鑑節要)』, 『한강선생문집(寒岡先生文集)』 등이 있다.
[구성/내용]
고령향교에 보관되어 있는 문적들을 통해 향교의 인적 구성과 재산 운영을 유추할 수 있다. 인적 구성과 관련된 자료로는 『고령향안(高靈鄕案)』, 『노유안(老儒案)』 등이 남아 있어 참고가 된다. 『노유안』의 경우, 1989년 조사 당시에는 갑진년, 정미년, 계해년에 작성된 3책이 있었지만, 2005년에는 갑진년에 작성된 것만이 남아 있다.
갑진년에 작성된 명단에 나타난 성씨는 김(金) 4명, 최(崔) 3명, 신(申) 3명, 이(李) 2명, 박(朴) 2명, 송(宋) 2명, 허(許) 2명, 유(柳) 2명, 전(全) 1명, 정(鄭) 1명, 여(呂) 1명, 노(魯) 1명이 있고, 성씨를 알 수 없는 인물 2명을 포함하여 26명이 등재되어 있다. 이와 같은 『노유안』의 인적 구성은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중반까지 기록된 『고령향안』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고령향안』은 1602년(선조 35)부터 1769년(영조 45)까지 55회에 걸쳐 기록한 것으로, 성씨는 홍(洪), 이(李), 박(朴), 윤(尹), 손(孫), 전(全), 김(金), 설(薛), 최(崔), 한(韓), 배(裵), 송(宋), 우(禹), 성(成), 정(鄭), 곽(郭), 노(盧), 오(吳), 도(都), 유(劉), 안(安) 등 22개 성씨 603명이다. 이들 명단을 분석해 보면 시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씨 159명, 박씨 111명, 김씨 109명, 최씨 57명, 정씨 44명, 전씨 40명, 곽씨 28명 등이 이 지역을 주도하였다고 볼 수 있다. 기록의 간격은 1년 2회 정도이며, 1년에서 10년에 이르기까지 일정하지는 않다.
등재된 인물들은 1602년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라는 점에서 장기간 정상적인 향안의 작성이 어려웠던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1665년(현종 6)까지는 극소수의 인원이 보충되었다가, 1669년(현종 10)부터 등재자 수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경상도 지역 선비들의 사환(仕宦)이 어려워지면서 향촌에서나마 신분을 유지하고 재지사족의 기반을 견고히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향안에 등재되는 것에 집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 160여 년이 지난 1928년에 작성된 『고령향약』은 본관별로 구분,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각 면별로 특징은 있지만, 고령 지역에서 비교적 많은 성씨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은 성산이씨(星山李氏), 의성김씨(義城金氏), 고령신씨(高靈申氏), 인동장씨(仁同張氏), 김해김씨(金海金氏) 등이다. 동별로는 1개 동에 향안 등재자가 1명~4명이 보통이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20여 명이 등재되었다.
이 시기에는 동족부락이 전형적으로 발달했다고 볼 수 있지만, 1개~4개의 유력한 성씨 집단이 동리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자료는 내용이 일부 탈락되어 있어서 자료로서 한계성이 있지만 고령 지역의 주된 세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
또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19세기 이래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전답안』과 『방채기』,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향교재산소작인보증서』 등을 통하여 향교 재산의 규모와 재정 운영의 단면을 알 수 있다. 고서는 28종 115책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로는 17세기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가례(家禮)』, 『논어언해(論語諺解)』,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분류두공부시(分類杜工部詩)』, 『분류보주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신편고금사문류취(新編古今事文類聚)』, 『여문정선(儷文程選)』, 『오선생례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 『충렬공유고(忠烈公遺稿)』와 18세기 초에 간행된 『한강선생문집(寒岡先生文集)』이 있다. 이외에도 진덕수가 찬한 『진서산독서기을집상대학연의(眞西山讀書記乙集上大學衍義)』는 현재 9책만 남은 영본(零本)으로, 15세기 세종대왕 당시의 활자인 초주갑인자로 찍은 책을 다시 번각하여 간행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고령향교 관계 자료는 전란 등으로 소실되거나, 인수인계 과정에서 망실되어 현존하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현존하는 필사본 16건과 28종의 서적, 책판 등을 통하여 고령 지역 유력 세력의 동향 등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