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6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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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方言資料辭典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연수 |
간행 시기/일시 | 2022년 2월 22일 - 『강릉 방언 자료 사전』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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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처 | 신구문화사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광명로 377[금광동 2685] |
성격 | 사전 |
저자 | 이익섭 |
표제 | 강릉 방언 자료 사전 |
[정의]
강릉 출신 국어학자 이익섭이 저술하여 2022년 간행한 강릉 방언 자료 사전.
[편찬/간행 경위]
1938년 강릉에서 태어난 강릉 출신의 국어학자이자,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의 원장[재직 1997~1999]을 역임했던 이익섭은 서울대학교 교수 정년 퇴임 이후에 강릉방언 조사에 나섰다. 사전 집필을 위해 2011년부터 강릉 현장을 다니면서 생활 속의 방언 채록에 나섰다. 일주일에 3~4일간은 현장에서 조사하고 녹음하며 노트에 받아 적었다. 이렇게 현장에서 수집 채록한 자료를 컴퓨터로 옮긴 후, 어원을 함께 찾으며 표준어에 맞추어 강릉방언의 단어 단위로 정리했다. 『강릉 방언 자료 사전』은 신구문화사에서 2022년 2월 22일 간행되었다.
이익섭은 『강릉 방언 자료 사전』 서문에서 “예문의 길이는 어휘적 특징을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통사론, 나아가서는 화용론적인 특징을 보이기 위해서도 길어졌다. 책 제목에 ‘자료’를 넣은 것은 이런 자료적 가치를 부각시키고자 함이었다.”라고 밝힌 것처럼 사라져 가는 강릉방언을 지키기 위한 자료적 가치를 위해 발간했다.
[서지적 상황]
『강릉 방언 자료 사전』의 상권은 머리말과 일러두기에 이어 ㄱ부터 시작하는데 쪽수를 보면 ㄱ0001, ㄴ0385, ㄷ0571, ㄹ0855, ㅁ0873, ㅂ1089, ㅅ1335쪽으로 구성됐다. 하권은 ㅇ1641, ㅈ2099, ㅊ2447, ㅋ2551, ㅌ2585, ㅍ2627, ㅎ2685쪽에 배치했으며, 마지막으로 색인이 2833쪽에 등장한다.
[형태]
양장본 신국판으로 세로 232㎝, 가로 162㎝ 크기이다. 상하 총 2권으로 구성했다. 표제어 약 2만 개를 상권에서는 ㄱ~ㅅ까지, 하권에서는 ㅇ~ㅎ까지 수록하여 총 3004쪽에 달한다.
[구성/내용]
강릉방언을 ㄱ~ㅎ 순으로 구성하면서 어휘마다 성조를 ‘′, ㅇ, ㅎ, :’ 등으로 표기했다. 강릉방언에 대한 어휘 설명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활용 예문을 성조를 반영하여 함께 수록했다. 본문 구성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가래다¹ (동) ➀ 음식을 까다롭게 골라 먹다. 가리다. ¶ 우리 아버지 요짐에는 ′음식으 마ㅇ:이 ′가래 먹아. ′함부루 못: 디레. ➁ 금기 사항을 지키다. 가리다. ¶ ′그래 귀:한 ′아들은 백일′ㅅ 전에 문ㅅ지방 안: ′넹기잔가.─ ′가래지 말:구 막 ′키워야 ′대:. / 베틀으 ′낼: 놓는대. ′손 읎:는 날이라구─ 그집이 또 금:산서 왔는데, 부모덜 머 교:육으 잘 ′받어 그렇는지, ′그런 그 잘 ′가래요.─ 벨루두 ′가래는 사:람있아. / [*장을 섣달과 2월에는 담지 않는다는 금기를] 우리덜은 ′가래는데, 인저는 ′가래잖:구 이:월에두 막 하는 사:람두 있더라구요.
가래다³ (동) 빚을 갚다.¶ ′머이 한두 푼이래지. 그그 다: ′가래자문 인재 ′혼이 나야지 머.
[의의와 평가]
저자 이익섭은 『강릉 방언 자료 사전』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강릉방언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누대로 내려온 우리 논밭과 가산이 있는 농촌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익히 듣던 말이요, 강릉시내로 전학을 온 후로나 나중 고등학교 2학년부터 서울 생활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강릉방언은 늘 고향 산천과도 같이, 고향의 숨결과도 같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처럼 강릉의 방언을 실생활 속에서 알고 있던 강릉 출신 한국어 전공학자가 10년 동안 직접 현장을 탐방하면서 채록하여 만들었다. 『강릉 방언 자료 사전』은 강릉방언 사전의 가치와 강릉방언 자료의 가치를 함께 지니고 있다. 뜻풀이에다가 표준어를 제시한 후에 길고 짧은 음장의 발음과 높낮이 성조를 밝혔다.
‘감재떡’의 원료인 가루를 만들기 위해 감자를 썩히는 과정도 인고(忍苦)의 길고 긴 과정이 있었고, ‘큰떡’은 언제 누구에게 보내기 위해, 무슨 떡들을 어떤 크기, 어떤 배열로 담는지, 할머니들이 흔히 하는 말이 “옛날엔 법이 많었어요. 시방 머 법이 있소”였는데 그야말로 엄격한 법이 있었다.[이익섭, 『강릉 방언 자료 사전』 서문]
이익섭이 밝힌 것처럼,『강릉 방언 자료 사전』에는 민속과 관련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 강릉지역민의 생활 특성도 드러나도록 했다. 특히 현장성을 살린 예문은 강릉방언의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다양한 문화콘텐츠 활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