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6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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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池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 1138-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연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5년 - 「용지」 『강릉의 역사와 문화 유적』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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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6년 - 「용지」 『강릉시사』상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72년 - 「용지」 『영동 민속지』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0년 - 「용지」 『강릉에만 있는 얘기』에 수록 |
관련 지명 | 용지 -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 1138-8 |
성격 | 설화|지명 유래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최문한|말 |
모티프 유형 | 동물 변신담|용의 승천 |
[정의]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서 용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용지(龍池)」는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의 용지(龍池) 유래와 용지각(龍池閣)의 배경 설화이다. 최문한(崔文漢)과 관련한 전설이 전하는 용지는 작은 연못으로, 중앙에는 용지각이라는 비각이 세워져 있다. ‘고려 부마도위 최공문한 유적비(高麗駙馬都尉崔公文漢遺蹟碑)’라는 글자처럼, 이 비각은 강릉 최씨의 시조 최문한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용지각은 1973년에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용지」에 관한 전설은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강릉의 역사와 문화 유적』[1995]은 ‘송정에서 말을 타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였고, 『강릉시사』상[1996]에서는 “송경에서 준마를 타고 달려 하루가 채 못되어 이곳 강릉집에 내려와”라고 하였고, 『영동 민속지』[1972]는 “송경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용지의 버들가지에 고삐를 매고 말을 씻더니”로 기술했다. 『강릉의 역사와 문화 유적』은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고 기록하고, 『강릉시사』상에서는 “숨을 몰아 쉬더니 장차 위아래로 움직이며 하늘로 올라가는 시늉을 하였다”고 기록했다. 『강릉에만 있는 얘기』[2000]에서는 “말의 말굽을 갈아 주려고 말을 연못 옆”으로 데리고 갔다고 기술하는가 하면, 다른 전설과 달리 용마가 승천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쑥뎅이·발락고개·비름돌·코풀재·북바위·죽일·묘뒤의 지명이 용마와 관련 있다고 기술한다. 『강릉의 설화』[2003]에서는 말을 씻겨 주던 중이 아니라 “용지각 있는 데서 말을 놨더니 그 말이 거참 그 못에 빠져서 하늘로 올라갔단 말이지” 식으로 다른 기록처럼 ‘뛰어든’ 것이 아니라 ‘빠져서’ 생긴 일로 기술하고 있다.
[내용]
고려 충숙왕의 부마인 최문한은 고려의 국운이 다하여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의를 다하기 위하여 71명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 충렬을 지키다가 강화도를 경유하여 강릉으로 피신하였다. 선덕 공주와 함께 낙향한 최문한은 준마를 타고 송경(松京)으로 왕래하며 국사를 걱정하였다. 최문한이 혼자서 말을 타고 지나던 길에 연못가[현 강릉여자고등학교 옆, 동쪽]의 버드나무에다 말을 매어 놓고 씻겨 주고 있었다. 이때 말이 갑자기 연못 가운데로 뛰어들더니 몸이 용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때 버드나무 위에서는 구름과 안개가 해와 달을 오래도록 가려서 하늘이 캄캄해지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말은 운무(雲霧)를 타고 용으로 변하여 사라졌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겼으며, 그리하여 이 연못을 용지(龍池)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고려 말의 부마가 시대의 몰락과 함께 낙향하여 지내던 중에 그의 말이 용이 되는 이야기이다. 말이 용으로 변하는 동물 변신 모티프와 용의 승천 모티프가 기본이 되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일부 설화에서는 승천하려는 용마가 승천한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과정에 죽는 경로를 적고 있다. 「용지」 설화와 강릉지역의 마을 지명[쑥뎅이·발락고개·비름돌·코풀재·북바위 등]이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어 하나의 서사적 설화의 양상을 볼 수 있다. 『강릉에만 있는 얘기』에는 「용지」 설화와 관련하여 강릉지역의 장소명에 얽힌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용마가 쑥뎅이[강원도 강릉시 용강동 서부시장 일대로 옛날 언덕진 이곳에 쑥이 많이 자랐다]에 와서 쑥을 뜯어 먹고 취했다. 쑥에 취한 용마가 몸을 비틀거리며 서쪽에 있는 발락고개[강릉초등학교 서쪽 언덕]를 숨을 발락발락거리며 겨우 넘어가서 비름돌[신터미널 앞 교차로 일대]에 가서 비름풀을 뜯어 먹고 원기를 회복하여 코풀재[관동중학교 앞]에 가서 코를 풀고, 북바위[신터미널에서 교동 택지로 가는 길 옆 바위 두 개가 포개져 있는데 북처럼 생겼다]에 가서 꼬리로 북을 친 다음 죽일[유천동과 홍제동 사이에 있는 마을]에 가서 죽으니 묘뒤[강일여자고등학교 앞]에다 묘를 썼다고 한다.”
조선 초 전설로 보아 용지의 역사는 600여 년이며, 용지각 또한 역사적 기념물의 가치가 있다. 강릉대학교 박물관이 1995년 『강릉의 역사와 문화 유적』을 발간하면서 용지각을 두고 “주변에 석축하고 중앙에 정자를 건설하는 등의 개축으로 자연 생태학적 측면에서 자연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여 애석”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