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4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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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信五間諜事件 |
영어음역 | Kang Sin-o Gancheop Sageon |
영어의미역 | Kang Sin-o Espionage Incid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인용 |
[정의]
강릉에서 간첩활동을 해온 강신오를 비롯한 간첩 일당을 검거한 사건.
[개설]
강신오는 1948년경 남로당에 입당하였으며, 1950년 7월경 인민군 군관(정치간부)으로 입대하여, 1956년 7월경 상위로 제대하였다. 1957년 2월경 중앙당에 소환되어 5개월간 간첩 밀봉교육을 받은 후 1957년 7월경 강릉, 묵호, 삼척 등지에서 거점 확보 및 인물포섭 지령을 받고 남파되어 군산으로 상륙하였다. 부산에서 2년간 간첩활동을 하다가 1959년 2월경 강릉으로 이주, 오복라사를 경영하며 간첩활동을 하였다.
[역사적 배경]
1960년대는 남북한 관계가 직접적인 대화는 전혀 없이 냉각되어 있던 시기였다. 북한은 일방적인 대남선전과 산간벽지 지역을 중심으로 비정규전 도발을 자행하였다.
[목적]
남한 내에서 간첩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세력들에 대한 토벌이다.
[발단]
남파 간첩 강신오는 1957년 7월경부터 부산에서 활동하다가 1959년 2월경 강릉으로 이주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강신오는 1961년 3월경 오복라사에서 북한 안내원을 접선하여 난수표 2권, 암호문 1권, 암호 수령 및 공작금으로 미화 1,000불, 임무변경 지령을 받아 활동하였다. 1963년 12월 13일에는 주문진항 선박으로 월북하여, 밀봉교육을 받은 후 한화 70만 원을 소지하고 다시 강릉에 잠입하였다. 1964년 10월 15일까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향호리 소재 공동묘지에 무인포스트를 설치하고 수차에 걸쳐 보고문서 매몰 및 지령문을 인수하였다. 1965년 2월 27일부터 2월 28일까지 북한 중앙당으로부터 "이○○을 대동하고 삼척에서 선박으로 1965년 3월 5에서 3월 6일에 월북하라, 만약 위험 신호가 있을 때에는 연기하라"는 지령을 접수하고 월북을 중지하고 있었다.
[경과]
1965년 3월 4일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검거한 간첩 안내원 최○○을 중앙 합동신문조에서 신문 중, 1963년 12월 13일 해상으로 월북, 북한에서 단기 간첩교육을 받은 자를 같은 해 12월 27일경 남한으로 안내하여 침투시킨 바 있는데 강릉에 거주하고 있으며 인상을 알고 있다는 진술로 해군 보안대에서 수사에 착수하였다. 강릉경찰서에 비치된 도민증 대장 및 요시카드 등의 사진을 열람하여, 용의자 21명을 선정하였다. 1965년 4월 1일 20시경부터 군경합동으로 용의자의 동태를 감시하던 중 1965년 4월 2일 11시경 강원도 강릉시 성남동 소재 노상에서 검거한 간첩 안내원 최흥섭으로부터 침투시킨 인물과 거의 동일한 인물을 발견하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1965년 4월 2일 17시경 강릉경찰서 정보계 경사 나○○ 외 형사 2명과 해군 정보대원 2명이 합동으로 강신오를 미행하는 한편 호적을 열람하였다. 열람 결과 원적지가 없음에도 강릉지방법원의 호적부에 등재된 점 등 용의점이 있어 1965년 4월 3일 10시 30분경 강신오가 경영하는 오복라사 부근에서 순경 이○○이 임의 동행하였다.
[결과]
강신오에 대한 1차 심문 중 간첩임이 확인되었으며, 추가로 일당 12명을 검거하였다.
[의의와 평가]
휴전 이후부터 남한 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해 온 강신오를 비롯한 일당들을 검거함으로써 이들에 의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정보의 누출과 남한 내 인사의 포섭활동 등을 방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