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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583
한자 崔迤
영어음역 Choe I
이칭/별칭 최원(崔遠),유명(惟明),희경(僖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최유련(崔有璉)
출신지 강릉
성별
생년 1356년(공민왕 5)연표보기
몰년 1426년(세종 8)연표보기
본관 강릉
초명 최원(崔遠)
대표관직 호조판서

[정의]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 자는 유명(惟明), 호는 희경(僖景), 초명(初名)은 최원(崔遠). 강릉군(江陵君) 최유련(崔有璉)의 아들이다.

[생애]

처음 벼슬로 도평의사사지인(都評議使司知印)을 지냈고, 1390년(공양왕 2)에는 사헌집의(司憲執義)가 되었다. 조선 개국 후 중추원우부승지를 거쳐 좌승지가 되었다. 1394년(태조 3)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승진하고, 1400년(정종 2)에는 좌군총제(左軍摠制)로 대사헌을 겸직하였다.

1405년에는 공조판서, 1412년에는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1413년에는 공조판서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개성부 유수·호조판서를 지냈으며, 1424년에는 진향사(進香使)로 재임명되어 명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활동사항]

삼사우윤(三司右尹)으로 있을 때 삼사좌윤으로 있던 이방원(李方遠)과 친교를 맺어 조선 개국에 기여하였다. 1405년(태종 5)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이듬해 왜구가 침범해오자, 형조의 소청으로 상중에도 불구하고 충청도병마사 겸 수군도절제사에 보직되어 왜구 소탕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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