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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528
한자 崔世節
영어음역 Choe Sejeol
이칭/별칭 개지(介之),매창(梅窓)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최응현(崔應賢)
최세충(崔世忠)|최세효(崔世孝)
출신지 강릉
성별
몰년 1535년(중종 30)연표보기
본관 강릉
대표관직 호조판서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 자(字)는 개지(介之), 호는 매창(梅窓).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며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셋째 아들이다.

[활동사항]

1498년(연산군 4) 소과에 입격하고, 1504년(연산군 10) 별시문과에 장원급제를 하였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다. 1506년(중종 1)에 왕에게 상소하여 성균관 전적에 올랐고, 이어 사간원 정언·홍문관 수찬 등을 지냈다. 사헌부 지평으로 있으면서 호당(湖堂: 독서당. 젊고 재주 있는 문신으로서 임금의 특명을 받은 사람들이 공부하던 곳)에 뽑혔다.

이조정랑·의정부 검상(議政府檢詳)을 거쳐 1520년(중종 15)에는 동부승지를 지냈다. 1527년(중종 22)에는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황해도관찰사로 발탁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0년에는 경상도관찰사, 이어 형조참판·대사헌·한성부 우윤·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533년(중종 28)에는 호조판서에 올랐으나 주위의 모함을 받자 1534년에 호조판서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강릉에서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1535년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미금면 도농리 중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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