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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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靑年團江陵團部 |
영어의미역 | Daehan Youth Corps, Gangneung Branch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남현 |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었던 정치 단체 대한청년단 소속 지부.
[개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정치적인 지지 기반이 매우 취약하였다. 지지세력은 지주 및 보수 우익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한민당, 친일 경력이 있는 관료들, 친미지식인, 농촌지주층을 중심으로 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우익청년단체 등이었다. 그러나 한민당이 이승만의 각료 선임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고, 1948년 10월 19일의 여순사건 등 좌익 세력들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국회의 시국대책건의안을 위시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통합 단일화 명령에 따라 1948년 12월 19일 대동청년단을 중심으로 청년조선총동맹, 국민회청년단, 대한독립청년단, 서북청년회 등 전국 20여 개의 청년단체를 흡수 통합하여 대한청년단을 결성하였다.
1950년 1월 최고위원회제를 폐지하고 단장제로 바꾸었으며, 신성모가 초대 단장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청년방위대를 조직하였고, 1950년 12월에는 국민방위군 설치령에 따라 국민방위군으로 개편되었다. 1951년 1월에는 국민방위군사건으로 방위군이 해산되고 5명의 주요간부가 처형되면서 활동이 침체되었다. 그 후 1952년 8월 제2대 대통령선거 이후 내분이 심화되자, 이승만에 의해 1953년 9월 10일 해체되어 민병단에 편입되었다.
[설립목적]
반공, 남북통일, 국군형성, 대한민국 청년의 신체와 정신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설립경위]
대한청년단은 이승만 정권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지방의 읍·면·동·리까지 전국적으로 그 조직이 확대 강화되었다. 초창기에는 10개 도단부(道團部), 9개 구단부(區團部), 17개 지역 및 직장특별단부, 180개 도시단부(都市團部), 4230여 개 면동단부(面洞團部)의 조직이 있었다. 강릉 지역에는 강릉단부가 있었고, 1949년 4월 6일에 주문진 대한청년단 특별단부가 주문진 공설운동장에서 결성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문화운동, 사상계몽사업, 이승만 지원 활동을 주로 하였다.
[활동사항]
청년단체로서의 역할보다는 주로 이승만을 지원하는 정치활동에 치우쳤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청년방위대[훗날 국민방위군으로 개편]를 조직하여 청년단원을 향토방위에 투입하기도 하였다.
[조직]
대한청년단 강릉단부는 강원도단부 아래 소속되었다. 당시 강원도단부의 단장에는 박승하(朴勝夏), 부단장에는 박덕영(朴德永)·심상의(沈相儀)·김우종(金宇鍾)·엄각종(嚴覺鍾)이 있었고, 대한청년단 강릉단부에는 조건묵(趙健黙)·김진백(金振伯)·신만선(辛萬善) 등이 청년단장으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