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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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淸洞戰鬪 |
영어음역 | Sucheong-dong Jeontu |
영어의미역 | Sucheongdong Battl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심산3리 수청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인용 |
성격 | 공비토벌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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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52년 1월 3일 |
종결연도/일시 | 1952년 1월 3일 |
발생(시작)장소 | 수청동 일대 |
발생(시작)장소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3리 수청동 |
관련인물/단체 | 대남공작대|전경 제8대대 |
[정의]
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역사적 배경]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1951년 7월 7일부터 시작되자 노동당은 남한 지역에서 제2전선 역할을 수행하던 빨치산 유격대 체제를 지구당 체제로 개편할 것을 지시했다. 강원도 지역의 제2지구로 설정되어 있던 빨치산들은 남한의 지속적인 토벌로 인해 그 세력들이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이에 북한은 1952년부터 남한의 빨치산을 지원하기 위해 금강정치학원 출신들을 비롯한 무장부대들을 대거 내려 보냈다.
[목적]
강릉 지역에 남파된 대남정치공작대 소속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한 전투이다.
[발단]
1952년 1월 3일 주문진경찰서 관할 삼산지서 관내의 청학동·수청동 일대에 북한 대남정치공작대 제6지대 소속 공비 34명이 식량과 의류 등을 약취하기 위하여 침투하였다.
[경과]
대남정치공작대 제6지대 소속 공비들이 연곡면 삼산3리 청학동에 거주하고 있는 민간인 주택에 침입하여 식량과 의류를 훔쳐서 도주하였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전경 제8대대 3중대 병력 30명이 공비들을 추격하여 집중사격과 백병전을 통해 섬멸하였다.
[결과]
수청동 전투에서 경찰관의 피해는 전혀 없었으며 적 13명을 사살하였다. 노획물로서 소총 13정, 수류탄 20발, 양곡 16말, 중요지령문건 1건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강릉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비들에 대한 지속적인 토벌로 이들의 추가적인 만행을 방지할 수 있었고 강릉 지역을 포함한 남한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비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