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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군정청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940
한자 三八軍政廳
영어의미역 38 Military Government Office
이칭/별칭 동부군정청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인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설연도/일시 1946년 1월연표보기
폐지연도/일시 1948년 8월 15일연표보기
상위관서 미군정청

[정의]

1946년부터 1948년까지 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었던 정선·명주·양양·삼척·울진 관할 군사 기관.

[제정배경 및 목적]

미소간의 한반도 분단점령이 결정된 후 미군 중장 하지의 지휘 하에 미육군 24군단은 9월 8일 인천에 상륙, 서울로 들어와 9월 9일 삼팔선이남 지역에 대한 군정을 포고한 데 이어, 9월 12일 미군 소장 아널드가 군정장관에 취임함으로써 미군정체제가 수립되었다. 그 후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기까지 3년 동안 군사통치가 이루어졌다.

미군정청은 한국이 민주주의 정부를 건설하기까지의 과도기적 기간에 38도선 이남의 한국 지역을 통치, 지도, 지배하는 연합국 총사령관 밑에 미군에 의해 설립된 잠정적 정부로서 설립되었다.

[담당직무]

38군정청의 주요부서는 법무과, 산업과, 관재과, 의무과, 경찰과 등 5개 분야이다. 법무과에서는 사상, 귀속재산을, 산업과에서는 휘발유, 식량, 타이어를, 관재과에서는 시설을, 의무과에서는 강릉도립병원, 약품관리를, 경찰과에서는 무기, 일반범죄, 해안경비를 담당하였다.

[변천]

1945년 11월 말경 미군이 삼척의 시멘트 공장과 유지공장을 경비하기 위해서 강릉을 거쳐 삼척에 먼저 주둔하였는데, 주둔 규모는 7사단 산하의 1개 대대 800명 정도였다. 그 후 1946년 1월에 강릉에 38군정청[동부군정청]을 설치하였다. 1947년 6월 3일 미군정청은 남조선과도정부로 개칭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와 동시에 폐지되었다.

[조직]

강릉에 주둔한 미군은 전투부대 1개 중대로 120명 정도가 강릉비행장에 주둔하였고, 38군정청에는 1개 소대 30여명 정도가 주둔하였다. 조직은 법무과, 산업과, 관재과, 의무과 경찰과 등 5개의 과로 구성되었다. 그 외에 군정청 산하에 사상과 정당들의 정보수집업무를 담당하는 CIC(Counter Intelligence Crops: 첩보부대)가 있었다.

[의의와 평가]

미군정기는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의 과도기적 역할을 한 정부로서 당시의 시민사회를 재편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남한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상황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미군정의 실체에 대해서는 그동안 미군정에 대한 많은 연구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 속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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