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7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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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濱京 |
영어음역 | Bukbingy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김덕원 |
[정의]
강릉 지역의 옛 명칭.
[형성]
신라의 국가 발전과정에서 동북방면으로 진출하여, 지금의 강릉 지역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512년(지증왕 13)에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하였으며, 639년(선덕여왕 8)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다가, 658년(태종무열왕 5)에 에는 소경을 폐지하고 다시 주를 설치하였다.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전국을 9주로 편제하면서 하서주(河西州)가 설치되었는데, 757년(경덕왕 16)에는 명주(溟州)로 이름을 고치고 9군 25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변천]
북빈경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936년(태조 19)에는 명주를 동원경(東原京)이라 하였으나, 940년(태조 23) 다시 명주로 불렀다. 그 뒤 983년(성종 2)에 하서부(河西府)로 칭하다가, 다시 986년(성종 5)에는 명주도독부로 고쳤다.
[관련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4 강릉대도호부 「누정(樓亭)」조 실려 있는 조선 중기의 문인 박시형(朴時亨)의 기문(記文)에 의하면 “임영(臨瀛)은 예국(濊國)의 터로서 예전 명도(溟都)이며, 삼한 때에는 북빈경(北濱京)이며, 전 왕조(고려)에서는 동원경(東原京)이라 불렀다. 대개 신라 태종의 5세손 주원공(周元公)이 도읍하여서 여러 대를 살았던 까닭에 이름한 것이다.”고 하였다.
한편 『증보문헌비고』에는 연안김씨(延安金氏)의 유래에 대해 “신라시대 왕자 형제가 직간(直諫)하다가 임금의 뜻에 거슬려 먼 지방으로 귀양을 갔는데, 형은 북빈경(北濱京)인 지금의 강릉(江陵)에 살고, 동생은 시염성(豉鹽城)인 지금의 연안(延安)에 살았으므로, 자손들이 이로 인하여 관향(貫鄕)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